SO-SO한 이야기(18) 콩 한 개도 나눠먹어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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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희(handabal0625)등록 2018.04.02 18:10
SO-SO한 이야기(18)
사드뽑고 평화심는 길에 발자국을 포개는 평화장터
 
M복어식당 주방 안은 장사준비로 분주하다. M사장과 주방장은 손놀림이 바쁘다. 물건만 살짝 두고 나오려다 나와 눈을 마주친 사장이 나를 급하게 부른다. 잠시 밖으로 나와 내게 귓속말로 속삭이듯 부탁한다.
"물건 맡겨놓고 찾아가는 건 괜찮은데 오후3시부터 6시 사이는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다.

324광화문 평화촛불, 소성리 민들레합창단 @청년사진가 ⓒ 손소희



나는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식당이라서 바쁜 점심, 저녁 식사시간대는 피해서 찾아가달라고 이용자들에게 안내했는데요." 하며 의아스럽게 되물었다. M사장은
"우리 식당은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는 직원들을 무조건 쉬게 해요. 직원들 휴식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그 시간에 사람들이 물건을 찾으러 오니까, 직원들이 쉴 수가 없어요. 어제도 살짝 들어와서 물건만 찾아가면 되는데, 문을 두드리고, 계세요? 계세요? 하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낮잠 자는 우리직원이 깨어나서 나가야 하니까 내가 눈치가 보여서 안되겠어요." 한다.
"아아.. 네에.. 당연히 직원 휴식시간은 보장해 드려야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잘 안내해서 그 시간대는 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우,, 이렇게 훌륭한 사장님 처음봐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M사장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아이고,, 그건 당연하지요. 여기 하루종일 주방일에 서빙하면 사람이 얼마나 피곤한데 낮에 한숨 못자면 못 견뎌요..직원들 다 도망가면 나는 문 닫아야 해"
놀라울 정도로 직원들보다 더 건강한 노동을 챙기는 M사장에게 두 번째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민들레합창단 @청년사진가 ⓒ 손소희



소성리평화장터를 시작하고 매주 수요일 오후2시 소성리집회와 매주 토요일 밤7시 촛불문화제에서 장사를 했다. 사드를 반대해온 성주주민들, 김천시민들, 원불교와 천주교, 기독교의 종교인들 그리고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연대자들이 평화장터의 물품을 이용했지만, 지속적이기 어려웠다.
평화장터가 나름 활로를 찾았던 것 중의 하나가 '성주의 안전한 먹거리 직거래장터' 밴드였다. 성주주민들이 주로 생산하고 판매하면서 안전한 농산물정보와 교류를 하는 온라인 공간이다. 먹거리밴드에서 소성리평화장터를 선전하고 홍보했다. 처음 주춤하던 성주주민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좋은 물건은 주문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문을 받아서 좋을 수만 없었다. 하나하나 배달해야 하는 고단한 일이 발생했다. 용기를 내어 먹거리밴드로 들어가서 "사드뽑고 평화심을 때까지 발자국 포개는 평화장터"라며 '판매수익금 전액을 사드뽑는 투쟁기금'으로 사용하겠다고 홍보를 했지만, 집집마다 배달해야 할 상황은 내게 반가울리 없었다.
어떻게 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꾀를 내야 했다.
매주 토요일 밤 소성리 평화마당에서 '미국사드는 미국으로, 평화는 이 땅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촛불을 밝혀왔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성주읍에서 M복어식당을 운영하는 M사장은 영업을 마치자마자 식당을 정리하는 둥 마는 둥 소성리로 달려왔다. M사장은 소성리주민들에게 늘 감동이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식당일을 마치고는 늦게라도 소성리를 찾아주는 고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 고마운 M사장께 나는 과감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평화장터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M복어식당에 물품을 임시보관해도 괜찮을지 물었다. 그는 고민할 시간도 두지 않고 "그러세요"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소성리 평화장터의 매출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성주읍내에 물품 임시보관소가 생겨서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성주사람들에게 위풍당당하게 소성리 평화장터를 소개했다. 홍보하면서 주문을 받았고, 주문받은 물품은 M복어식당에서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성주사람들은 조금더 소성리평화장터로 가까워지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M복어식당의 사장님은 직원들의 휴식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내게 한거다. 나는 성주의 '안전한 먹거리 밴드'에 이 사실을 안내했다. 성주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면서도 M복어식당의 직원휴식시간을 존중하였다. 그 시간대에 식당 앞에 갔다가도 되돌아오는 사람이 생겼다.
"평화장터지요.. 제가 물건을 찾으러 갔더니, 마침 직원 휴식시간이라서 못 들어갔어요. 죄송한데 내일 찾아가고 송금해드릴께요" 하면서 마음씨 고운 연락이 온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또 다른 성주주민은 내게
"M복어식당 직원들이 불편하면 우리아버님이 오토바이상가하는데 거기서 물건을 찾아가실 수 있도록 해도 괜찮아요. 오토바이상가는 하루종일 문열려있고, 아무 때나 오시면 되거든요.. 우리 아버님도 좋은 일 하시는데, 그렇게 하라고 허락해주셨어요"
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소성리평화장터는 소성리를 벗어나 성주읍내에 거점이 두 곳이나 생기게 되었다. 매출이 올라가는 기쁨뿐 아니라, 성주사람들에게 잊혀질 뻔 한 소성리가 다시 회자될 수 있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가능성이 있다는 믿었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화장터의 경이로움을 글로 쓰고 싶었다. 오마이뉴스에 소성리평화장터로부터 받는 감동을 실었다. 주제는 '호두나무 도마'의 이야기였다. 놀랍게도 나의 미숙한 글쓰기는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로 채택했다. 글쓰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기사 채택까지 되어 나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날부터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호두나무 도마를 찾았던 사람들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 온거다.
기사를 보고 의미있는 곳에 물건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다. 나는 소성리 평화장터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했다. 사드를 뽑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소성리 주민들의 상황을 알렸다. 평화장터의 수익금은 온전히 사드뽑는 투쟁에 쓰여진다고 이야기했다. 동의할 때 주문을 받고 싶었다. 기사를 보고 연락 온 사람들은 소성리 소식에 마음 아파했고,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했다.
갑작스럽게 호두나무 도마 주문이 밀려온 게 마냥 기쁠 일은 아니었다. 정작 작업을 해야 할 경산의 '나무야' 목수는 가구제작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호두나무 도마까지 일이 밀려오자 목수는 평화장터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무야' 목수는 내게 싫은 내색을 하지 못했다. 소성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는 거절하지 못한 채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느덧 소성리 평화장터의 수익금은 처음에 목표했던 1000만원을 달성했다.
처음 수익금이 생기자마자 위기를 맞은 소성리에 100만원의 투쟁기금을 보냈다. 사드가 추가배치 완료되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사드뽑을 때까지 싸우자고 결의했다. 소성리 뿐 아니라 성주전역의 사드반대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던 날에 첫 투쟁기금 100만원을 종잣돈으로 보냈던 거다. 그리고 다섯 번에 걸쳐 500만원이 소성리 투쟁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여섯 번째부터는 소성리에서 함께 사드반대투쟁해 온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에 투쟁기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소성리를 돌봐온 '원불교 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와 천주교, 기독교인 종교단위와 평화회의 소성리종합상황실까지 아홉 번에 걸쳐 900만원의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소성리평화장터가 애초에 사드반대투쟁을 위해 수익금 전액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사드반대투쟁은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의 연대를 받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나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고, 굴뚝에 올라있다.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있다. 노동자가 쫓겨나지 않는 세상이 평화라는 가치를 소성리의 사드반대투쟁이 잊어서는 안되었다. 콩하나도 나눠먹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소성리 평화장터의 가장 위대한 정신이고 싶었다.
절규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작은 소소한 실천으로 장연대를 시작했다. 투쟁하는 농성장에 소성리부녀회장님 담근 된장과 간장, 그리고 원불교의 식품인 고추장을 보내드렸다. 집에서 맛보던 장맛을 느끼길 바랐다.
연대로서 소성리를 알리고 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제 열 번째 투쟁기금을 보냈다. 봄을 부르는 꽃분홍 후드집업을 입고, 등판에는 "그래도 뚜벅뚜벅"을 새겨서 3월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평화촛불 무대에 오른 민들레합창단에 투쟁기금 100만원을 드렀다. 소성리평화장터가 일궈낸 소중한 열 번째 투쟁기금을 보냈다.
광화문 무대에 오른 민들레 합창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오늘이 사드뽑기 좋은 날' 두 곡을 흥겹게 불렀다.
나이 60에서 80의 소성리엄니들로 구성된 민들레합창단, 두 번에 걸쳐 엄청난 국가공권력에 짓밟히면서 삶의 터전을 사드배치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절망했던 우리 엄니들은 노래를 불렀다. 매일 소성리 마을을 지키는 길목에서 야간시위를 했었다. 매일 촛불을 밝히는 김천으로, 서울광화문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곁으로, 사드를 뽑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다니겠다던 우리 엄니들은 어느새 투사가 되어있었다. 이 땅의 들풀같은 민중이다.
자신의 아픔이 큰 만큼 다른 이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힘도 커졌다. 사드 때문에 시작한 투쟁으로 세상을 둘러보면서 어루만져주는 우리 엄니들에게 소성리평화장터는 기쁨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소성리엄니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사드반대투쟁의 선구자이자,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이니까. 사랑합니다. 소성리엄니들
민들레합창단 여러분. 노래로 평화를 이야기하고, 이 땅 고난의 길을 걷는 이들과 손맞잡고 함께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2018년3월30일

324광화문 평화촛불 민들레합창단 @청년사진가 ⓒ 손소희


324광화문 평화촛불 민들레합창단 @청년사진가 ⓒ 손소희


민들레합창단 공연 @청년사진가 ⓒ 손소희


소성리평화장터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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