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든 어른을 일으켜세운 단추 하나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스티브 라이트 <서로 바꿔요!>

등록 2018.04.11 08:10수정 2018.04.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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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 너무 힘들어 주눅이 들 수 있습니다. 힘든 살림에 주눅이 들 뿐 아니라 웃을 일도 노래할 일도 없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옷마저 낡은 나머지 단추까지 툭 풀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에 '난 뭐든 안 되는구나'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하나도 못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빈털터리일 뿐이요, 이제 어떤 일도 못하겠구나 하고 여길 수 있어요.


낡은 배가 한 척.
슬픈 친구가 한 명. (2∼4쪽)
a  겉그림

겉그림 ⓒ 도미솔


그림책 <서로 바꿔요!>(스티브 라이트/허은미 옮김, 도미솔, 2016)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배가 낡아 더는 바다를 가로지르지 못하겠다고 여기는 쓸쓸한 아저씨가 나오고, 한쪽 다리가 없어 나무를 대고 다니는 아이가 나옵니다.

선장이던 아저씨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여깁니다. 나무다리를 한 아이는 쓸쓸한 아저씨를 북돋아 주고 싶지만 뾰족한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아저씨 옷에서 단추가 하나 떨어지고, 아저씨는 단추마저 잃을까 봐 허둥지둥입니다.

아저씨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주운 아이는 뭔가 한 가지를 새롭게 생각해 냅니다. 이 단추를 바꾸어 보자고 생각하지요. 우리 손에는 낡아서 주저앉으려는 배 한 척만 있다지만, 이 단추를 바라는 이웃한테 주면서, 우리도 무언가 받아 보자고, "서로 바꾸기"를 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단추 한 개가…….
좋은 생각이 하나.
서로 바꿔요! (5∼6쪽)


단추 하나로 낡은 잔을 바꾸기로 합니다. 낡은 잔으로 밧줄을 바꿉니다. 밧줄로 노를 바꿉니다. 노로 또 다른 살림을 바꾸고... 이렇게 바꾸고 또 바꾸면서 어느새 낡은 배를 손질할 만한 살림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단추 하나랑 낡은 잔을 셋 바꾸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날까요? 믿거나 말거나일 수 있습니다만, 단추를 바라는데 단추가 없는 사람이라면, 낡은 잔 셋쯤 얼마든지 내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보기에 낡은 잔이어도 '낡았어도 값어치가 있는 잔'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이 낡은 잔으로도 밧줄을 바꿀 수 있을 테고요.

꼭 돈값에 맞추어 바꿀 수 있지는 않다고 느껴요. 바라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쓰임새가 있는 곳에 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주눅이 들지 말아야지 싶습니다. 아무리 낡아빠진 배라 하더라도, 배가 있으면, 어떻게든 이 낡아빠진 배를 손질해서 다시 바다로 나아갈 길을 찾아볼 수 있어요.


a  속그림. 아이 몸짓하고 웃음이 어른을 바꾼다고 느낍니다.

속그림. 아이 몸짓하고 웃음이 어른을 바꾼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그림책 <서로 바꿔요!>는 축 처진 아저씨(어른)를 나무다리 아이가 곁에서 도우며 북돋우는 줄거리로 흐릅니다. 어른이 아이를 돕는 줄거리가 아닌, 아이가 어른을 돕는 줄거리입니다. 아이는 다리 하나가 없어도 씩씩하고,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근심이 없습니다. 씩씩하면서 근심이 없으니 새롭게 생각할 줄 알고, 새롭게 생각할 줄 알기에 다시 일어서는 길을 찾아내는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 집안을 일으키는 힘도 아이한테서 비롯할 만합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에, 기운을 북돋우는 말 한 마디에, 단출한 밥상맡에서도 노래하는 모습에,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뜻이며 길이 나타나지 싶어요.
덧붙이는 글 <서로 바꿔요!>(스티브 라이트 / 허은미 옮김 / 도미솔 / 2016.5.15.)

서로 바꿔요!

스티브 라이트 지음, 허은미 옮김,
도미솔, 2016


#서로 바꿔요! #스티브 라이트 #그림책 #어린이책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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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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