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 백운동 별서, 같이 가볼까

[김천령의 한국 정원 이야기⑦] 백운동 별서 정원(하)

등록 2018.04.13 09:09수정 2018.04.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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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 정원 정선대에서 본 백운동 별서 전경 ⓒ 김종길


백운동에 처음 오면 누구나 은밀한 동백 숲을 지나서 흐르는 계류에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런 다음 창하벽을 물끄러미 올려봤다가 대문을 들어서서 곧장 정선대에 오르게 된다. 동선이 자연스레 정선대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정선대에 오르면 백운동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선대에서 다산의 '백운동 12경'을 읊조리며 초의선사의 그림을 펼쳐놓고 정원 전체를 가늠해 보면 백운동 별서 풍경이 빠짐없이 들어온다.

백운동은 담장 안쪽의 '내원(內園)'과 담장 바깥의 '외원(外園)'으로 나눌 수 있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조영된 내원은 다시 본채와 사랑채가 있는 '상단', 3단의 화계로 이루어진 '중단', 상하 두 개의 연못이 있는 '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원에는 동백 숲이 우거진 진입 공간, 담장을 따라 흐르는 계류 공간, 정원 아래쪽 담장 밖에 높이 솟은 정선대 공간, 본채 왼쪽 담장 밖의 대숲 운당원 공간, 본채 담장 뒤편의 후원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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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경 백운동은 봄이면 붉은 동백 천지이다. ⓒ 김종길


'백운동 12경'의 운치

자, 그럼 본격적으로 백운동 별서를 구경해보자. 발길은 자연스럽게 별서를 둘러싼 외원으로 먼저 옮겨진다. 백운동 원림은 별서로 들어가는 동백(산다) 숲의 작은 길을 뜻하는 제2경 산다경(山茶徑)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봄이면 백운동은 붉은 동백 천지이다.

동백 숲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해 '길 가득 온통 그늘(滿路陰)'이다. 순서대로 보자면 제1경이 먼저 와야 하지만 제2경부터 시작이다. 제1경인 옥판봉이 제11경 정선대에 올라야 보이기 때문이다.

터널 같은 동백 숲을 들어서면 계류가 흐르고 상록수 아래 약간 비껴선 지점에 백운동(白雲洞)이라고 새겨진 큼직한 바위가 있다. 이 글씨는 백운동에 처음 들어온 이담로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자가 후진을 양성했던 여산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여 백운동이라고 이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백운(白雲)은 백운재공곡(白雲在空谷)의 뜻으로 흰 구름(白雲)은 은자(隱者)를, 빈 골짜기(空谷)는 은거하는 곳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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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의 가을 백운동은 소요자적 하는 은자의 거처이다. ⓒ 김종길


중국 남조시대 양나라 때 산중재상이라 불리던 도사 도홍경(452~536)이 있었다. 그가 산속에서 나오지 않자 황제가 그에게 산속에 무슨 즐거움이 있느냐고 물었다.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산 위에 흰 구름이 많아서라고 답하지요. 구름은 저 혼자 즐길 수 있을 뿐 임금님께 가져다 드리지는 못하지요"라고 답했다. 자연 속에서 소요자적 하는 은자의 삶을 예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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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하벽 제6경. 계곡 다리를 건너자마자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벽으로 예전엔 붉은색의 글자가 있었던 푸른빛 절벽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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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대 제11경. 담장 밖 언덕에 있다. ⓒ 김종길


제4경 홍옥폭(紅玉瀑)은 담장 옆을 흐르는 계류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곳이다. 가을날 단풍이 붉어지면 폭포의 빛이 붉은 옥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 물이 풍부할 때에는 물레방아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계곡 다리를 건너자마자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붉은색의 글자가 있었던 푸른빛 절벽 제6경 창하벽(蒼霞壁)이다. 이 절벽은 백운동의 모습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창하벽 위 높다란 곳에 제11경 정선대(停仙臺)가 있다. 정선대에서는 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인다. 대문 안쪽에서 보면 담장 밖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붉은 소나무가 무리 지어 있는데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정유)가 있는 언덕이라 하여 제7경 정유강(貞蕤岡)이라 한다. 창하벽 위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심겨진 단은 제10경 풍단(楓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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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강 제7경. 용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정유)가 있는 언덕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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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대와 풍단 제11경과 제10경. 풍단은 창하벽 위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심겨진 단이다. ⓒ 김종길


정선대에선 백운동 별서만의 독특한 공간 연출을 볼 수 있다. 차경(借景)이다. 흔히 차경이라 할 때 주위 풍경을 자연스럽게 정원의 한 구성요소로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백운동은 사방이 담장으로 차단되어 있고 그 너머로 온통 숲이 둘러싸고 있어 정원 안에서는 정작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오히려 담장 밖 정선대에 올라야 월출산 서남쪽의 빼어난 봉우리인 제1경 옥판봉(玉版峰)과 정원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정선대조차 처음에는 곧장 시야에 나타나지 않고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겨우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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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판봉 제1경. 담장 밖 정선대에 오르면 월출산 서남쪽의 빼어난 봉우리인 옥판봉과 별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 김종길


백운옥판차

대문 맞은편 담장 밖으로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이 제12경 운당원(篔簹園)이다. 이 대밭에 자생하는 차나무에서 생산된 것이 그 유명한 백운옥판차이다. 백운옥판차는 백운동 옥판봉에서 나는 차라는 뜻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에서 해배된 이후에도 이곳의 차를 구해 마셨다. 다산은 백운동 주인이던 제자 이시헌에게 삼증삼쇄의 떡차 만드는 법을 일러주어 대밭에서 차를 채취했다. 이시헌에서 비롯된 이곳의 차는 향명이나 작설차의 이름으로 계속 나오면서 강진 차 문화의 산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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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당원 제12경. 대문 맞은편 담장 밖으로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 ⓒ 김종길


일제강점기에 이담로의 8세손인 이한영이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그 맥을 이었다. 이한영은 다산과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차 역사의 맥을 이어온 다인이다. 지금도 백운동 정원 주위에는 태평양 설록다원 등 드넓은 차밭이 펼쳐져 있어 그 옛날 차 생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설록차라고 부르는 차가 여기서 생산된다.

백운동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차 만드는 방법에 대한 편지와 차 문화의 중요 문헌인 <동다기>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혜장선사와 초의선사 등에게 제다법을 가르칠 정도로 차에 대한 조예가 깊어 우리 차 문화사의 중흥조라 여겨진다.

본채로 올라가면 그 주변 언덕은 100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다는 제3경 백매오(百梅塢)이다. 그 옛날에는 바위 절벽의 푸른빛을 상쇄하려고 100그루의 홍매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취미선방 담장과 왼편 담장 아래에 두어 그루의 매화나무가 초봄에 희미하게 꽃을 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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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매오 제3경. 예전에는 100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두어 그루만 있을 뿐이다. ⓒ 김종길


백운동 별서에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사방으로 둘러쳐진 담장이다. 원래 별서 정원의 담장은 보기 흉한 것을 가리기 위한 것일 뿐 안팎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담로가 처음 이곳에 백운동 별서를 꾸렸을 때에는 대문과 담장이 없었는데, 그가 죽은 후 손자 이언길이 가족을 이끌고 들어와 살림집이 되면서 담장과 대문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별장형 별서였다가 나중에 생활형 별서로 되면서 일어난 변화가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 별서 안의 내원을 살펴보자. 내원은 원래 산비탈의 경사면을 따라 장방형으로 조성됐다. 가장 위쪽에 본채와 앞마당이 있고, 그 아래 경사면에 축대를 쌓아 3단의 화계를 조성했는데 이것이 제8경 모란체(牡丹砌)이다. 모란이 심겨 있는 돌층계 화단인 셈인데, 모란뿐만 아니라 영산홍과 국화 등의 여러 화초를 가꾸었다.

흔히 연못가나 정자 주변에 화초를 심는데 이곳에선 3단의 화계를 별도로 조성하여 심은 것이 특이하다. 본채 아래 계곡 쪽으론 운치 있는 제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이 있다. 산허리에 있는 고즈넉하니 꾸밈없는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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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체 제8경. 본채 아래 경사면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3단의 화계에는모란이 피어 있다. ⓒ 김종길


유상곡수연

화계를 내려서면 대문으로 이어지는 넓은 마당이 나온다. 이곳에 잔(觴)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제5경 유상곡수(流觴曲水)가 있다. 유상곡수연은 진나라 때 왕희지가 삼월삼짇날 난정에서 열었던 연회에서 비롯됐다.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자기가 있는 곳에 술잔이 오면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던 잔치였다.

백운동은 정원 옆을 흐르는 계류가 있는데도 별도로 집 안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이 물길은 계곡에서 두 번, 내원에서 다섯 번, 외원에서 두 번을 굽어 흘러 구곡(九曲)을 이룬다. 계류가 자연스레 흐르는 동적인 물이라면 집 안으로 끌어들인 유상곡수는 정적인 물이 된다. 그 정적인 곳에 간소한 초정이 하나 있어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유상곡수는 경주 포석정이나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대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지만 민간 정원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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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곡수 제5경. 백운동에는 포석정, 창덕궁 후원 등에서 볼 수 있는 유상곡수가 있다. ⓒ 김종길


여기까지가 백운동 12경의 개략적인 풍경이다. 백운동 별서 정원은 이담로 당대부터 널리 알려져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초의선사 의순, 소치 허련, 치원 황상, 삼연 김창흡, 포음 김창집, 담헌 이하곤, 창계 임영, 적안 신명규, 인계 송익휘, 해석 김재찬, 귤은 김유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찾고 시를 남겼다. 그 기록과 자료들도 우리 원림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풍부하게 남아 있다.

백운동 별서 정원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황폐했다가 최근에 다산 정약용의 <백운첩>에 근거해서 복원됐다.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이른바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백운동 별서 정원은 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안운 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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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12경 <백운첩> 실린 백운동 12경(강진군 문화재 안내문) ⓒ 김종길


#백운동 별서 #백운옥판차 #백운첩 #이담로 #백운동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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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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