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계천으로 가는 담장 마주한 두 담장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김종길
독락당은 담으로 연출된 공간이다. 담장으로 이중삼중의 폐쇄공간을 만들었다. 미로 같은 담장은 자계천으로 이어지는 독락당 담장과 공수각 담장 사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주한 두 담장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이곳에는 원래 담장이 아닌데도 담장 역할을 하는 독특한 구조물들이 있다. 살창, 협문, 계정이 그것이다. 담장 안에서는 창도, 문도, 정자도 담장의 일부로만 존재할 뿐이다. 담장 밖에서 봐야 비로소 창이 되고, 문이 되고, 건물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도 담에 붙어 있다. 독락당의 담은 철저하게 폐쇄된 공간에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을 한다. 바로 살창과 협문과 정자가 자연과 통하는 연결구가 된다.

▲독락당 화장실 화장실도 담에 붙어 있는데 마당을 침범하지 않고 계곡으로 돌출되어 있다.
김종길
소통독락당 뒤에는 더 은밀한 공간이 있다. 계정(溪亭)이다. 계정은 밖에서 보면 계곡가의 정자이지만 안에서는 은밀한 내원이다. 독락당이 강학의 공간이자 선택된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계정은 온전히 주인만의 공간이다. 이 계정 옆 담장에 자계천을 드나들 수 있는 협문이 있다. 인간세상과는 철저하게 차단하여 겹겹으로 담을 쌓고 오직 하나의 출입문만 냈지만, 자연과는 단 하나의 담장만 쌓고 문도 내고 창도 내고 마루도 내어 통하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계정 마당에는 사방으로 드나드는 문들이 있다. 사당을 출입하는 협문, 어서각을 출입하는 협문, 독락당으로 나가는 협문, 자계천을 출입하는 협문에다 집 뒤 송림으로 나가는 협문까지 사방 다섯 곳에 문이 있다. 이외에도 사당 안쪽에 있는 두 개의 협문과 안뜰에서 어서각으로 들어가는 협문까지 합치면 모두 여덟 개다. 외부로는 사람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지만, 내부(계정)에선 집 안팎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이다.

▲계정 밖에서 보면 계곡가의 정자이지만 안에서는 은밀한 내원이다.
김종길

▲사당 계정 주위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고, 사당에만 3개의 협문이 있다.
김종길
그 문의 절정은 건물이 통째로 담이면서 커다란 창이기도 한 계정이다. 계정은 안에서는 마치 담장에 뚫어 놓은 대형 창문처럼 트인 담장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계곡 쪽에서 봐야 돌출된 정자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정 마당은 ㅁ자로 건물이 모두 담장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즉 완벽한 네모 형태의 구성을 위해 건물은 마당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하고 담장이 되든지 아니면 담장 밖으로만 존재하여 은둔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간으로만 창출되고 감추어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당의 완결성을 위해 건축이 양보한 설계임을 알 수 있다.

▲계정 계정은 안에서는 마치 담장에 뚫어 놓은 대형 창문처럼 트인 담장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김종길

▲계정 독락당의 핵심 풍경으로 밖으로 돌출된 정자이다.
김종길
침잠독락당은 마룻널을 제외하곤 모두 단청이 되어 있다. 건물은 땅을 향해 아주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다. 기단도 낮아 자신의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깊이 침잠한 건물이다. 안채와는 책방으로만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얼핏 보면 격리되어 있는 듯하다.
이언적이 나중에 지었던 양동마을의 관가정이나 동생을 위해 지었던 향단과는 사뭇 다르다. 양동마을에 있는 두 집은 보란 듯이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듯 호탕하게 서 있는 반면 독락당은 깊숙이 나지막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양동마을의 향단 이언적이 동생을 위해 지었던 향단과 태어난 관가정은 숨어 있는 듯한 독락당과 달리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듯 호탕하게 서 있다.
김종길

▲서백당 독락당의 건물 구조를 보면 본가인 양동의 서백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김종길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 하나, 이언적이 낙향했을 때 본가인 양동마을에 가지 않고 삼십 리나 떨어진 이 외진 옥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대개 사대부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마련이지만 회재는 고향인 양동마을 대신 이곳을 택했다. 아마도 삭탈관직당하고 나니 고향에 갈 면목도 없었거니와 이곳에는 그가 아끼던 소실이 살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락당의 건물 구조를 보면 본가인 양동의 서백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살창 독락당의 살창은 집 안에서 계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구조물이다.
김종길
독락당의 하이라이트, 살창 |
독락당은 정면 4칸, 옆면 2칸의 건물이다. 방은 1칸이고 마루가 3칸이다.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곡 쪽의 마루는 예전에 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계곡 쪽으로 창이 나 있는데 이 창에서 바라보면 계곡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살창이 담장에 설치되어 있다. 독락당에서 가장 극적인 연출이고 독락당의 상징이 된 담장의 형태이다. 회재는 이 살창을 통해 물을 바라보고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고 자신을 수양했을 것이다. 이황이 쓴 옥산정사라는 현판, 남공철이 쓴 옥산정사 기문, 이산해가 쓴 독락당 현판, 한석봉이 썼다는 계정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볼 만하다. 옥산서원의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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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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