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이 문 연, 한반도 평화의 교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한라까지 학교이야기

등록 2018.05.02 11:44수정 2018.05.0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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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9시 반 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이 만났다. 양 정상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밝혔다. 한반도가 평화의 바람으로 뒤덮였던 그 순간, 전국의 초·중·고 교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판문점에서 백두까지의 이야기는 담지 못하는 지금, 평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한라까지의 학교이야기'를 담아보았다.

a 남북정상회담 시청 중 4월 27일 오전 9시 반 넘어, 의정부여중 학생들이 텔레비젼에서 펼쳐지는 남북정상회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시청 중 4월 27일 오전 9시 반 넘어, 의정부여중 학생들이 텔레비젼에서 펼쳐지는 남북정상회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 김형배


교실 가득 울려 퍼진 세 번의 환호성

의정부여중 1학년 교실, 31명의 학생들이 숨죽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하자마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른다. 9시 30분 경 판문각 1층 문이 열리고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나오는 순간, 또다시 학생들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며 두번째 환호성을 지른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마주보고 악수를 하는 순간, 문대통령이 북으로 10초간 넘어갔다가 오는 순간, 세 번째 환호성이 박수소리와 함께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이 잘생겼다. 김 위원장이 귀엽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된 중학생들의 두 정상에 대한 외모품평이다. '판문점에 가고 싶다'는 학생의 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제안된 이 분단된 땅이 이제야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에 영상을 함께 보던 김형배 교사의 가슴도 내내 떨렸다.

운동장 위에 만든 한반도 지도

27일은 인천 동수초 4학년 체험활동이 있는 날. 신현주 교사와 학생들은 이른 아침 운동장 위에 커다란 한반도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그림 선을 따라 자신의 소원을 적은 한반도기를 꽂아놓았다. 그리고 그 지도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체험학습을 갔다. 다녀와서 보니 어느새 한반 전체가 들어가고도 남을만큼 커다란 한반도 지도 위에 깃발이 가득 찼다.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 곳에 각자 자신의 소원이 담긴 깃발을 지도 위에 꽂아 놓은 것이다. 생활부장 교사는 운동장위에서 장관처럼 펼쳐진 깃발 펄럭이는 한반도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물론 주인공은 한 개 한 개 깃발을 꽂은 학생들이다. "통일되면 부자 되는 거예요? 눈물짓는 할아버지는 이제 북한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엄마에게'라는 이산가족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보고 나서 나오는 이야기다. 4학년 학생들은 뒤늦게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함께 보면서 "이제 우리도 북한에 갈 수 있는 거죠?, 군대 안가도 돼죠?"라며 기쁨이 가득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엇보다도 모두들 판문점을 통해 쉽게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고 큰 벽"이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깜짝 놀랬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a 인천 동수초 운동장에 들어선 한반도 지도  4월 27일 인천 동수초 학생들은 운동장에다 300여개의 깃발을 꽂아 커다란 한반도 지도모형을 만들었다. 깃발 하나하나에는 학생들의 소원이 글귀로 담겨있다.

인천 동수초 운동장에 들어선 한반도 지도 4월 27일 인천 동수초 학생들은 운동장에다 300여개의 깃발을 꽂아 커다란 한반도 지도모형을 만들었다. 깃발 하나하나에는 학생들의 소원이 글귀로 담겨있다. ⓒ 신현주


초등학생들의 세금 걱정, 이제 뚝!


김수지 부산 구포초 교사는 남북정상회담으로 확 바뀐 교실의 모습을 전했다. 회담 전날 6학년 학생들은 걱정이 앞섰다. "우리가 세금도 많이 내야 하는데, 북한은 못 사니까" 그러다가 북한 모습을 사진으로 본 학생들은 "스마트폰도 쓰네요? 고층 건물도 많구요" 북한의 모습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회담 당일, 장면을 함께 본 학생들은 "바로 통일하는 거 아니냐"며 "당장 6월 수학여행코스를 바꾸자"는 제안에 진지하게 "지금은 힘들고 중·고등학생 때라고 수학여행 가자"고 한다. sns 친구를 맺고 싶고, 가족이랑 기차타고 북한을 지나 유럽까지 가고 싶단다. 무엇보다도 한 학생의 말에 남학생들이 한꺼번에 탄성을 내지른다. "통일되면 군대 안가도 되는 거죠?" 세금 걱정을 하던 학생들은 하루 새 '이후에 교과서에도 나올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라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못다 한 이야기가 펼쳐질 교실


경남 간디고는 학생들의 더 적극적인 제안으로 결국 거의 모든 수업 시간에 생방송 시청을 했다.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그 어떤 수업에서도 볼수 없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최보경 교사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그 어떤 수업보다 좋았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최 교사는 당일 못다한 이야기를 앞으로 나눌려고 한다. 앞으로 각계 각층의 교류사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어떻게 하면 이런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을지, 평화정착, 통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볼 참이다.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인 남북정상회담. 세계사를 가르치는 최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 펼칠 이야기다.

a 북한 친구들 만나고 싶어요 전남 광양 마로초 2학년 학생이 그린 그림이다. 이 학생은 북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북한 친구들 만나고 싶어요 전남 광양 마로초 2학년 학생이 그린 그림이다. 이 학생은 북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 강성윤


그야말로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어? 저기 넘어가도 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는 순간, 부산 덕성초 4학년 교실, 박용환 교사와 학생들은 모두들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곳을 넘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정상들이 남과 북을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이렇게 돌아왔나? 북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남한 땅을 왔고 북한으로 갔다. 저기 아무 선도 없는데 그냥 지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박 교사와 학생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분개선이 없네'하고 다시 한번 입을 모았다. "이렇게 쉽게 되는 건데 정말 신기해요" 학생들은 수업 내내 신기해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거이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말처럼.

"그런데 왜 저게 중요한가요?"

수원 칠보고는 27일 1교시에 모든 학급에서 남북정상회담 생중계를 시청했다. 아침부터 언론도, 학교도,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들썩였다.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학생들이 임이랑 교사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저게 중요한가요? 김정은은 뭐타고 와요? 전쟁나면 어떻게 해요?" 임 교사는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다'고 설명하며 '8.15 광복부터 6.15선언, 10.4 선언 이후 이번이 세 번째'라고 쭉 현대사를 펼쳐 놨다.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어느새 열심히 회담장면을 시청하고 있다. 한 학생은 "야, 우리 이제 군대 안가도 되겠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어떤 학생은 "평양냉면 먹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임 교사는 마침 시험기간인데도 이렇게 한 곳에 함께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새롭다.

a 제주흥산초 학생들의 소원 제주 흥산초 4학년 학생들이 한반도 지도에 새겨넣은 소망.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주흥산초 학생들의 소원 제주 흥산초 4학년 학생들이 한반도 지도에 새겨넣은 소망.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 신진수


한라산 오르 듯, 백두산에도 오르길

제주 흥산초 4학년 교실, 한 학생이 "북한말을 배워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제주어처럼 북한말이 특이한 방언이라 여겨져서 나오는 질문이다. 제주 어린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쓰는 제주어를 잘 몰라서 배우기도 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함께 화면을 지켜보던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판문점이 뭐예요?', "북한 대통령은 몇 년 동안 해요?" 신진수 교사도 학생들에게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가고, 무엇보다도 백두산에 가보고 싶은 소망들이 어느새 전지에 출력된 한반도기 그림 위를 가득 덮었다. 신 교사는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 친구들과 같이 수학여행으로 북한을 가고 한라산 등반하듯 백두산도 등반하고 싶다"고.

"여름방학 때, 꼭 판문점에 가봐야겠어요"

"북한에도 3천명 넘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평상 시에 교류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늘 불안한 휴전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정상들이 만나서 종전협정을 어떻게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런 길목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가 우리나라가 평화로 가기 위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났다.

9시 30분이 되자, 3학년 학생들은 남북정상회담장면을 시청했다. 감탄사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판문점의 위치를 묻는 한 학생은 "여름방학 때 가족들과 함께 꼭 가보고 싶다"고 한다. 정 교사는 '통일'이라고 하면 소요비용문제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이 있었는데 이번 회담으로 '북한과 통일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겠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회담광경을 지켜보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나서다. 학생들은 앞으로 전개될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손을 모았다. 88년 대학생이 되어 통일을 염원하며 시위에 나가 구호도 외치고 했던 정교사에게 가슴뭉클한 수업시간이 됐다.

a 활동지에 담긴 통찰력 서울 마곡중 학생들이 활동지에 적어낸 대답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활동지에 담긴 통찰력 서울 마곡중 학생들이 활동지에 적어낸 대답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 최주연


"2004년생, 만 14세가 가진 통찰력"

최주연 서울 마곡중 교사가 미리 준비한 활동지에 2학년 학생들이 쓴 글을 sns에 공유했다.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명록 내용과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옮겨 쓴 학생, 정상회담 이후로 생길 것 같은 좋은 일에 '군대 안가는 것'을 쓴 '현실감'과 느낀 점에 '개꾸울~'이라는 위트까지 보내는 서울 마곡중 2학년 학생들. 학생들은 회담 이후 한반도에 생기면 좋은 일로 '휴전선이 없어지는 것, 통일, 평화정착'을, 그리고 '평양냉면, 군대면제,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빼놓지 않았다. 최 교사는 2004년생들의 빼어난 통찰력이 담긴 답변을 보고, '만 14세까지 참정권을 부여해도 될 듯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 4월, 만 18세 참정권 보장도 반대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최 교사의 살아있는 학교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 교육희망(http://news.eduhope.net)에도 송고되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에서 한라까지 #평화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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