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상부르 공원 반쯤 드러누울 수 있게 만든 정원 앞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리시민들. 오른쪽 뒤에 보이는 건물이 뤽상부르 궁전이다.
강재인
아빠와 나는 반쯤 드러누울 수 있게 만든 정원 앞 의자에 앉아 남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발밑으로 작은 공이 날아들었다. 공을 던져주자 예닐곱 살 난 남자아이가 공을 받으며 답례했다. 귀여웠다. 금발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파리엔 금발보다 검은 머리가 더 많은 듯했다.
미국 작가들이 왜 파리에서 살았을까
"우리가 둘러본 스타인 살롱 말이다. 거기 드나들던 1920년대의 미국 작가들을 뭐라 하는지 아니?"
아빠가 웃으며 물으시기에 여행 전 파리에 대한 자료를 섭렵할 때 어느 책자에서 본 기억이 나서 넘겨짚었다.
"Lost Generation?"
"그래. 그럼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뭔가 길을 잃었나 보죠?"
"길을 잃었던 건 맞지. 이거 봐라."
아빠는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된 헤밍웨이 글의 다음 부분을 보여주셨다.
스타인 여사가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우리 부부가 캐나다에서 돌아와 노트르담데샹로에 살면서 아직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녀가 몰고 다니던 낡은 T형 포드의 점화장치가 고장 나자 수리를 맡았던 정비공은 1차대전에 참전했던 젊은이였는데 솜씨가 없었던지 아니면 접수받은 순서대로 다른 차량부터 수리하느라고 그랬는지 곧바로 수리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스타인 여사가 항의했고 정비소 주인은 성실치 못한 젊은이가 된 그 정비공을 호되게 꾸짖었다.
"자네들은 모두 Génération Perdue야."
그러자 스타인 여사가 말했다.
"맞아, 그게 자네들 모습이야. 그게 자네들 모두의 모습이라구. 자네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에 참가했었지. 자네들은 Lost Generation이야."
'잃어버린 세대'라는 용어가 생기게 된 배경을 그린 글이다. 정비소 주인은 Génération Perdue라는 불어로 말했고, 이 말을 받은 스타인이 Lost Generation이란 영어로 바꿔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헤밍웨이를 비롯한 미국 작가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하는데, 사실 그 용어는 잘된 번역 같지는 않아. 1차대전 중 대량 살상자를 겪으면서 옛 가치관을 잃고 방황하게 된 세대라는 뜻에서 '길 잃은 세대'가 더 본뜻에 가깝지."
"근데 왜 미국 작가들은 파리에 와서 살게 된 거예요? 그것도 떼로."
"좋은 질문이다. 아빠도 늘 궁금해하던 점이다. 1차대전 후 기성도덕이나 가치관을 상실한 미국의 실업사회를 혐오해서 파리로 건너와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살았다는 것인데.그 점을 살펴보려면 우선 시테섬 부근의 고서점부터 가봐야 할 것 같다."
"아빠, 거기 혹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아녜요?"
"어?"
아빠가 놀란 표정을 지으셔서 내가 웃었다.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 보았던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의 후속편인 <비포 선셋(Before Sunset)>. 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9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는 운명적인 무대가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다. 들꽃 향이 날 것 같은 서점 풍경이 애틋한 두 사람의 감정과 어우러져 깊은 잔상을 남겼고, 그것이 바로 내가 고민 없이 파리를 여행지로 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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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부터 마티스까지... 그 시절 파리의 '이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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