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지 남산 동쪽 기슭에 차분하게 들어앉아 있는 작은 연못이지만, 1500년 이상의 역사와 스토리를 지닌 연못이다.
홍윤호
수수께끼의 편지 봉투가 나온 서출지, 그 여름의 연꽃 산 자체가 야외 박물관이라 부를 정도로 온갖 문화재와 유적이 몰려 있는 경주 남산 동쪽 기슭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연못이 서출지이다. 사적 제 138호.
풍천 임씨 소유인 이요당이라는 제법 오래된 정자 앞에 있는 연못인데, 이요당은 1664년 임적이 세웠다. 지금도 이 일대는 풍천 임씨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정자 앞 좁은 마당에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듯한 연꽃 대좌가 1개 놓여 있다. 이 정자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다.
이 서출지(書出池)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소지마립간 10년(488년) 때였다. 어느 날 왕이 천천정에 이르렀을 때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 울더니 쥐가 말하기를, "까마귀가 가는 곳을 살피라" 하였다. 사람을 시켜 쫓았는데, 피촌이라는 동네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까마귀가 간 곳을 잊어버렸다. 이 때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봉투를 주면서 말하기를,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봉투를 받아든 왕은 "어차피 죽는 거라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한 사람은 바로 왕을 가리키는 말이옵니다. 뜯어보십시오"라는 일관(日官)의 말을 듣고 결국 봉투를 뜯으니, 편지에 '거문고 갑을 쏘아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궁궐에 돌아온 왕이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속에 궁녀와 승려가 들어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사통하여 왕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한다. 두 사람은 곧 사형을 당했다. 이후로 노인이 나타나 서찰을 준 연못을 서출지(書出池, 글이 나온 연못)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직 불교가 공인되지 못하던 시절, 신라에서 이른바 종교 권력을 놓고 불교계와, 일관으로 대표되는 전통 종교 간에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전설이다. 신라에서 불교가 정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 전설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과 현실을 반영하는 전설로 보인다.
결국 소지왕 사후 지증왕을 거쳐 법흥왕 대에 불교가 공인되고 왕실 보호 하에 급속하게 발전하는 걸 보면 불교는 오랜 탄압과 어려움 끝에 성공하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됨을 알 수 있다.

▲이요당과 백일홍 풍천 임씨가 세운 이요당과 이를 배경으로 한 백일홍이 잘 어울린다.
홍윤호
서출지 자체는 여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연못 풍경을 즐기기 좋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을 가볍게 산책하듯이 도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한 바퀴를 모두 도는 데에도 불과 20분도 안 걸릴 정도로 작지만, 호젓한 풍경은 일품이다.
특히, 한여름에는 배롱나무(목백일홍)들에 붉은 꽃이 피고, 연못의 연꽃들이 피어올라 다양한 색채의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주로 백련이 푸른 연잎 사이로 쑥쑥 올라와 청초한 흰 빛을 띠지만, 곳곳에 홍련도 있어 투명해 보이는 붉은 빛과 푸른 연잎의 조화가 잘 어울린다.
소나무들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나무 벤치가 있어 잠시 쉬면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더욱 좋다. 연꽃과 백일홍이 잘 어우러진 풍경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경까지 내내 이어진다.

▲서출지 홍련 서출지에는 홍련보다 백련이 더 많지만, 그 색채 때문에 홍련이 눈에 잘 띈다.
홍윤호

▲서출지 백일홍 서출지 가장자리의 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으면 붉은 빛의 백일홍을 자주 만날 수 있다. 8월까지 백일홍은 연꽃과 함께 서출지의 주인공이 된다.
홍윤호
일설에는 이 서출지가 삼국유사의 서출지가 아니고, 본래는 마을 안쪽의 양피지가 서출지라는 설이 있다. 조용하고 호젓한 이 마을 안쪽 양피지라는 연못에 가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서출지라는 이름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라 이곳 서출지가 맞지 않을까 추측한다. 이요당이라는 건축물 때문에 포인트가 되는 데다 여름날 풍경이 아름다워 특별한 증거가 없다면 이곳을 서출지라고 그대로 인정해도 될 듯하다.
서출지 뒤편에는 풍천 임씨의 집성촌이 있는데, 마을에서 이 서출지를 바라보는 지점에 '서오'라는 한옥 브런치 카페가 있다. 입구 마당에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내부에 들어가면 정면으로 서출지 일대를 내려다보는 창이 넓어 눈맛이 시원하다.
1년 전 처음 찾아갔다가 경주 남산에 갈 때는 단골로 찾는 카페가 됐다. 카페 이지영 사장은 풍천 임씨인 남편의 고향 마을에서 한옥 카페를 차렸는데, 마을의 모든 건물은 기와지붕을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아예 목조로 운치 있게 카페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마을 모든 집들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거나 기와집 모양이다). '서오'라는 이름은 이 동네에 사셨던 시어머니 집의 택호(당호, 집에 붙인 이름)였다고 한다. 분위기 있는 이름이다.

▲한옥 카페 서오 서출지 바로 앞에 있는 브런치 카페. 서출지 온 김에 잠시 쉬어갈 만하다.
홍윤호
여행 정보주소: 경북 경주시 남산1길 17 입장료 없음. 주차는 통일전 주차장에 세운다. 혹은 서출지 주변에 한두 대씩 댈 수 있는 곳들도 있다. 100대 이상 주차 가능 연못을 전망하는 이요당은 개인 소유라 원칙적으로 출입이 안 된다. 하지만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길은 있다. * 가는 법 자가용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경주IC→직진 진행하다가 인왕동 사거리에서 우회전→7번 국도 울산 방향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왕사터 앞에서 우회전, 화랑교를 넘어가거나, 7번 국도로 조금 더 나가 동방역을 지난 후 우회전해 통일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통일전 옆에 서출지가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경주역과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11번 버스(약 20분 간격 운행)를 이용, 통일전 주차장 앞에서 하차한다.

▲서출지 홍련 넓은 연잎들 사이로 불쑬불쑥 솟아오른 홍련이 예쁘고 신비롭다.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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