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2015년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 사과·복숭아·단감·인삼·감귤 등 대부분의 농작물 주산지가 기후변화로 인해 북상했다.
통계청
기후변화로 농작물 생육에 변화가 생기면서 농민들이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창남(59) 한국정보화농업인연합회 중앙회장은 최근 경남 남해군 남면 다랭이마을 인근 400평 규모 농지에 제주도에서 자라던 야자수 300여 그루를 심어 새로운 소득 작물로 키우려 했으나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문화재청과 남해군이 경사진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개간해 만든 다랑논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3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문화재청은 야자수가 외래종이고, 다랑논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식재를 허가할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과수 중 외래종이 아닌 게 얼마나 되느냐"라며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인데, 정부에서 농가소득 보장을 위해 새로운 소득 작물 보급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원 교수 역시 "농작물의 아열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데 수십 년씩 같은 작물을 키워온 농민 입장에서 스스로 기후변화에 적응하긴 힘들다"라며 "국가에서 중장기적으로 아열대 작물을 연구하고 기후변화 상황을 상시 점검해 농민 적응을 도와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활발히 번식하는 외래 해충이나 잡초가 국내 생태계에 끼치는 피해도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 국내에서 처음 관측된 해충 '미국선녀벌레'는 올해 이상고온으로 지난해보다 보름 정도 빨리 나타나 나무와 농작물을 고사시키고 있다. 영·호남은 물론 경기·강원 등 북부 지역에서도 피해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농작물 성장을 해치는 외래 잡초 역시 지난 10년 새 66% 증가했고, 이로 인한 농가 피해 면적은 5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기후변화로 생태환경이 변하면서 과거와 다른 전염병도 확산하고 있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확진 환자가 보고된 진드기 매개 감염병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 수는 2013년 발생 첫해 36명에서 이듬해 55명, 2016년 165명, 2017년 272명으로 늘었다. 사망자 수 역시 5년 전부터 16~21명 선을 유지하다 지난해 54명으로 급증했다.
'살인진드기'라 불리는 SFTS 매개체 참진드기 전문가인 채준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지난 6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에서 "온난화로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진드기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 매개체는 앞으로 계속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평균보다 온난화 1.5배 빠른 한국
한국의 온난화 속도는 세계 평균에 비해 빠른 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0년부터 30년간 전 세계 평균 기온상승 폭은 0.84℃인데 비해 한국은 1.22℃로 1.5배가량이었다.
이는 해수면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1989~2016년 해수면 변동 추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 해수면은 연평균 2.96mm 상승했다.
특히 제주시 앞바다는 지난 28년간 연평균 6.16mm, 총 17.3cm나 해수면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인천·여수 등 해안 지역은 지금도 여름철마다 바닷물 부피가 팽창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질 때 침수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지난 11일 전남 여수시 국동항 인근 도로에서는 해수면이 올라 바닷물이 흘러드는 일이 발생했다. 폭염과 조수간만 차가 평소보다 커지는 그믐 때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해수면 상승이 계속되면 바닷가에 생업의 근거가 있거나 집이 있는 사람들의 삶이 직접 위협을 받게 된다.
함유근(37)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난 6월 2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태평양 서쪽을 따라 흐르는 구로시오 해류 영향권에 있다"라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적도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구로시오 해류가 점점 더 많은 열을 지닌 채 북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연안 해수면은 다른 지역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 1986~2016년 우리나라 연안 해수면 연평균 상승치. 제주 부근 바다 해수면이 가장 많이 높아졌고, 동해, 남해, 서해가 뒤를 이었다. 특히 제주시 앞바다는 연평균 6mm 이상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해양조사원
높아진 바다 온도는 해양 생물의 서식을 위협하기도 한다. 올여름 폭염으로 경북 포항, 경주, 영덕 등 동해 연안에서는 이상 고온으로 양식장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이달 들어 경북 도내 양식장 26곳에서 폐사한 어패류는 42만7000마리로, 이로 인한 재산피해는 3억7000여만 원에 달한다. 지난 9일부터 경북 영덕부터 전남 고흥 거금도 해역, 충남 보령 원산도부터 전남 영광 안마도 해역에는 고수온 경보가 발령됐다. 고수온 경보는 해당 해역의 수온이 3일 연속 28℃를 넘을 때 발령된다.
온실가스 배출 계속 증가, 에너지효율화 뒷전
이처럼 온난화가 뚜렷해지고 사회경제적 피해가 커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고,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도 국가 차원의 참여가 소극적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손민우(32)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지난 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이며, 2016년에는 영국 기후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으로부터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오명까지 얻은 나라"라며 "세계 11위 경제 규모에 걸맞게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CAT는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한국을 '세계 4대 기후 악당'으로 지목하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으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속도가 가파르다고 비판했다.

▲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전력소비량 증가 추이. 전력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도 비슷한 추세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국제에너지기구(IEA)
환경운동연합 이지언(38) 에너지국장은 지난 13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로 '정부의 의지 부족'을 꼽았다.
이 국장은 "파리기후협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유럽 선진국에도 에너지 집약 산업은 다 존재한다"라며 여전히 산업계의 눈치를 보며 재생에너지 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할당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한반도 지표 온도 상승 폭이 이미 지구 평균보다 빠르고, 올여름 폭염에서도 확인했듯 한국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에 속한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라며 신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발전·산업·건물·수송 등 온실가스 감축 대상 전 부문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화'라는 두 가지 정책 신호를 분명히 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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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폭염'에 시달린 여름... "사계절 한국? 이젠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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