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검토 완료

손소희(handabal0625)등록 2018.08.27 13:25
체포
「열매의 글쓰기 2018년8월24일」
나는 체포되었다.
내가 사는 칠산마을 구판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들은 내게 체포영장을 보여주었다. 나와 함께 있던 남편은 경찰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지난 날에 내가 형사들과 통화한 내용을 다 들었던거다. 남편은 약속을 어긴 형사들에게 항의했다. 형사들은 내 남편과 시비를 붙으려고 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남편을 말렸다. 걱정하지 말라. 볼 일 잘 보고 와라. 나 때문에 흥분하지 말라.고 했다. 8월11일 토요일 오후1시30분 경이었다.

제주에서 성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체포영장이었다. 체포되기 이틀 전 고령경찰서의 형사는 내게 전화했다. 마을 앞에 있으니 잠깐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집이 아닌 멀리 가 있었다. 토요일 소성리 진밭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니 형사는 토요일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쯤 진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하면서 한가지 부탁을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오지 말아달라고 했다. 내가 어떤 중죄를 지었다고 해도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형사가 드나드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입소문 덕분에 내가 여러모로 곤란해지지 않겠냐고 말이다. 형사도 내 말을 알아듣고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내가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은 없지만, 마을에 불미스런 소문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형사도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었던 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던 거다.

예고된 일이라서 놀랍지는 않았다. 제주로 출발하기 전에는 걱정을 했었다. 제주로 출발도 못하고 체포되면 어떻게 하나?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경비만 아깝게 되면 어떻게 하나? 사실 그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렇게 된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었다.
여성경찰들 사이에 앉아서 고령경찰서까지 안전하게 연행되어갔다. 경찰은 수갑을 채우거나 포승줄을 묶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고 최대한 내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경들은 나의 신변을 걱정해서인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화장실 안까지도 들어오려고 해서 불편하다고 하니 밖에서 내가 볼 일을 다 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여형사가 나를 조사하였다. 나를 체포한 이유는 단순했다.
성주경찰서의 김광섭경비교통과장이 나에게 팔꿈치로 가슴을 가격당해서 공무를 집행하는 데 방해를 받았다고 고소했다. 폭행치사 공무집행방해가 죄목이다.
성주경찰서 관할이지만 고소인이 성주경찰서 당사자여서 사건은 고령경찰서로 접수가 되었다. 고령경찰서에서 내게 출석요구서를 세 차례 보냈다. 담당형사가 내게 여러 차례 전화해서 출석을 요청했고 조사를 받자고 했었다.
나는 출석을 거부했다. 체포당하면 당했지, 내 발로 경찰서로 가지는 않겠다고 했었다.
왜냐면 나는 피해자였다.
나는 어느 한 남성경찰의 팔꿈치로 가슴을 가격당했던 피해자였다. 피해자인 나를 성주경찰서 김광섭 경비교통과장이 가해자로 둔갑시켰다.
여형사는 사건과 관계없을 법한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성주경찰서의 경비과장은 내가 나이도 어린데 반말을 한 것을 지적했는데 맞냐고 물었다. 이건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어 의아했다. 여형사는 고소인이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이라고 밝힌다. 반말은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되나요?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반말을 쓴 적이 없다.
경비과장이 내게 팔꿈치로 가격을 당해서 호흡이 힘들고, 가슴통증에 시달렸으며, 흉부염좌로 전치2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진단서는 사건 당일인 2018년5월7일 날 병원에서 끊었다고 전한다.
전치2주의 진단서로 고소가 가능한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형사는 폭행당하면 전치 몇 주와는 상관없이 고소는 다 된다고 조언한다.
어떤 공무를 집행하던 중에 방해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2018년 5월7일.
소성리는 사드가 배치된 롯데골프장 부지로 장병들의 시설 보강과 중측을 위한 공사를 하기 위해서 공사인부들과 장비들이 출퇴근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매일 평화행동을 해왔다.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공사인부들과 차량이 모두 들어가게 한 후 경찰들이 철수할 시점이었다.
나는 공사인부들이 들어가기 전에 여경 네 명에게 둘러싸여 갓 길로 밀려나왔다. 수 백명의 경찰들에게 둘러싸여서 비좁고 복잡은 틈 속에 여경들은 내 뒤쪽으로 있었다. 내 앞으로는 모두 남성경찰들이 빽빽했었다. 공사차량이 들어가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남성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갇혀있었다. 그러던 중에 뒤로 물러나라는 경찰들의 신호가 있으면서 내 앞의 한 남성경찰이 팔꿈치로 내 가슴을 가격해서 나를 더 갓 쪽으로 밀어내어버렸다.
순간 가격당한 것에 놀랐고, 그의 눈빛이 살벌함에 폭행당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남성경찰의 팔뚝을 두 손으로 꼭 쥐고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내가 폭행당했음을 알렸다. 내 뒤에 여성경찰들에게도 이야기했고, 내 머리위로 수 대의 채증카메라를 향해서도 내 가슴을 이 경찰이 팔꿈치로 가격했다고 알렸지만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 없었다. 공사인부들과 차량이 다 들어간 후 경찰들은 철수할 준비를 했다. 내가 악착같이 폭행가해자의 팔뚝을 잡고 소리치고 있을 때 그의 동료경찰이 양손으로 내 두 팔을 비틀어 잡고는 치켜세웠다. 그를 빼돌렸다. 나는 그 안에서 2차 가해를 당했다.

내 두 팔을 치켜세워 잡았던 그는 내 팔을 뿌리치면서 다급하게 뒤로 빠져나갔다. 그들이 다 철수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려야했다.
경비과장, 경비과장을 애타게 찾았다. 경비과장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경찰들 사이에 둘러싸여 누군가로부터 가슴을 가격당했다고 외쳤지만, 경비과장은 내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외면했다. 그는 그럴 리가 없다고 되뇌였다.
나는 아니다. 내가 당했다고 소리쳤다. 내 말을 듣지 않는 그가 답답해서 직접 내가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해줘야 알 거 같았다.
나는 경비과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내 한 쪽 팔꿈치로 경비과장의 가슴을 치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내 팔꿈치는 경비과장의 가슴에 닿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내가 이렇게 가슴을 가격 당했다고 보여 줄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꿈치도 닿지 않은 경비과장은 한쪽으로 치우쳐지면서 내게 화를 냈다.
"감히 나를 쳐? 성주경찰서 경비과장을 폭행해?"
내게 폭행했냐고 따지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내가 당신을 왜 폭행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너무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서
" 그래 폭행했다. 너도 폭행당하니까 화나지? 나 이렇게 폭행당했다고.. 저 안에 경찰들에게 둘러싸여서 폭행당했다고"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자 씩씩거리던 경비과장은 화를 내면서 바쁜 걸음으로 내려갔고, 주변에 서 있는 성주주민대책위원장과 주민들에게
"저렇게 별난 사람이 어디있냐"고 항의하듯이 화를 내면서 내려갔다.
더 황당한 일을 겪은 나는 미친년처럼 뛰어내려갔지만, 주변에서 나를 말렸다. 왜 나를 말리나? 나는 폭행당한 피해자인데, 가해자를 잡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흥분한 나를 말리기 바쁘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건 경비과장 뿐 아니라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였다.

진술은 빨리 마쳤다. 조사를 하면서 그 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나를 쬐려보던 그 남성경찰의 눈빛도 선명했다. 그는 실수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말해주었다. 소성리 사드반대하는 자들 때문에 자신이 매일같이 고생하고 괴롭힘을 당한다는 듯이 나에게 쓴 맛을 보여주겠다는 잔인하고 싸늘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팔꿈치가 내 가슴을 쿡 찔렀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소리칠 때 둘러보아도 내 눈빛을 피하던 여경들도, 나를 찍어대던 채증카메라도, 경찰들도,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내 목소리는 마치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적막함을 형광색 경찰복들 사이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조사를 받던 중에 그날의 폭력이 내 몸이 다 기억하고 있는 듯 나도 모르게 서럽게 울어댔다.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내 몸이 엉엉 울고 있었다.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내 몸이 하는 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기억에서 지워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조사는 많이 힘들었다. 조사 이후에도 그 기억은 떠나가지 않았다. 나를 고소한 경비과장은 비웃으면 그만이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 경찰의 경멸스런 눈빛과 압도적인 많은 수의 집단폭행은 잊혀지지 않을 거 같다.

한바탕 소동을 마치고 나서 소성리로 돌아왔다. 재수 없었으면 못 돌아오고 감금될 뻔도 했겠지만, 다행히 검찰은 석방처분을 했다. 고령경찰서 형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내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마을에서 체포한 것이 미안해서일까? 결과 통보를 집으로 보내지 않고 소성리로 보내주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고령경찰서의 형사는 한때 대학에서 데모도 했던 운동권학생이었다고 한다. 예전 정권보다 지금 정권이 좀 더 진보적인 정권이 아니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진보냐 보수냐의 기준은 공무원노조를 인정하느냐 아니냐 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왕년에 내가 운동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고 중요하지.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지금 내 고향땅, 내가 사는 땅이 미국땅이 되어 미국을 위한 군사무기를 집어넣기 위해서 공사한다고 난리인데, 그 공사를 돕기 위해서 마을 주민 핍박하고 있는 경찰들은 일본순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당신이 보여준 호의는 고마울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을테니 그런 친절은 필요 없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