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들을 대조해 보면, 기요틴이 설치되었던 곳은 현재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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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물 모두 혁명 전인 1758년에 세워졌는데, 왼쪽 것은 오몽(Aumont)공작의 예술품 수집처로 쓰이다가 뒤에 크리용 호텔(Hôtel de Crillon)이 된 건물이고, 오른쪽은 프랑스 해군성 건물이었다.
그리고 두 건물 사이에 무슨 그리스 신전처럼 보이는 뒤쪽 건물은 마들렌느 교회(Église de la Madeleine)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여러 그림들을 대조해보면 기요틴이 설치되었던 곳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자리로 추정된다고 하자 딸이 물었다.
"왜 기요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너무 참혹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딸이 얼굴을 찡그린다.
"많이 죽었죠?"
그랬다. 어떤 자료엔 1350명, 어떤 자료엔 1만 7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상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2천 5백만 명이었는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는 공포정치 기간 중 반동분자로 붙잡힌 자는 모두 30만 명이었다.
연구자에 따르면 당시 각 지방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혁명위원회 숫자만 모두 4만 4천 군데였다. 그러니 각 위원회에서 반동분자 1명씩만 형장으로 보냈다 해도 처형자가 4만 4천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론 10만 명도 보수적으로 잡은 숫자라는 주장까지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네요."
"상상해봐라. 기요틴에 잘린 10만 개의 사람 머리를! 그 끔찍함을 모두 잊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염원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광장 이름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광장 이름은 콩코르드잖아요?"
"그게 무슨 뜻이냐?"
"화합, 조화?"
나는 딸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왜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의 이름을 붙였을까? 원래 이름은 '루이15세 광장(Place Louis XV)'이었다. 그러다 혁명이 나자 '혁명광장(Place de la Revolution)'이란 이름을 붙였으나 극좌파의 공포정치에 반대해 온건파 시민계급이 제1공화정을 세운 뒤에는 '콩코르드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건 분명 싸우지 말고 화합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좌우대립이 격한 시기에 온건파나 중도세력은 존립이 어려워진다. 마침내 제1공화정을 뒤엎고 등장한 나폴레옹은 광장 이름을 '루이15세 광장'으로 되돌렸고, 루이 18세와 샤를 10세의 왕정복고 시대에는 '루이16세 광장'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필리프(Louis Philippe)는 '샤르트르 광장(Place de la Chartre)'이란 이름을 잠시 붙였다가 다 잊고 화합하자는 뜻에서 제1공화정 시대의 '콩코르드 광장'이란 이름을 다시 복원시켰다.
"그럼 기요틴 자리에 오벨리스크를 세운 데는 어떤 뜻이 있는 건가요?"
좋은 질문이다. 루이 15세의 기마상을 파괴한 자리에 처음엔 '기요틴', 그다음엔 혁명이 만든 '자유의 여신상', 그다음엔 '루이 15세 기마상', 그다음 왕정복고 시대엔 '루이16세 기마상'을 세웠다.
이건 그냥 내 해석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식의 좌우개념으로 접근해선 정치보복과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떠올리게 할 뿐이라는 당대인의 판단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루이필리프는 마침 오스만 튀르크의 이집트 총독이 선물한 이집트 룩소르(Luxor)의 오벨리스크가 파리에 도착하자 그 방첨탑(方尖塔)을 기요틴 자리에 세우고 '콩코르드 광장'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게 아닐까?
딸이 다시 물었다.
"그게 화합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없다. 이집트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테베의 람세스 신전에 세웠던 기념비에 무슨 좌우개념이나 중재를 위한 화합의 개념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좌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떠올리지 않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 역사와 아무 연관도 없는 오벨리스크를 보면 사람들은 기요틴 대신에 3천 년 전의 이집트 문명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해석을 듣고 난 딸이 한마디 했다.
"속임수네요."
아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본질적으로 현실이 비합리적인데 선악을 구별 짓는 당대의 규범이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긴 시각에서 본다면 프랑스 역사뿐 아니라 사사건건 거대담론을 갈라치는 한국 사회의 진영논리나 이념은 구원이 될 수 없다. 모든 기준은 변한다. 동양 철학을 빌리면 만물은 역(易)이고,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빌리면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걸으시겠어요?"
딸이 바람 속으로 쭉 뻗은 대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걸어야지. 여기서부터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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