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일가의 족보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일가의 족보. 김정수 본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김낙용, 아버지 김관보, 큰아버지 김병식, 사촌동생 김진성 3대가 서훈을 받았다. 현재 김진성의 딸 김재원은 '소재불명'이고 김정수의 자녀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세걸
김정수 일가의 독립유공자 등재를 누가 주도했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 없다. 김정수는 죽은 지 한참 됐고, 그 후손들 역시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씨는 "김정수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분명 사촌인 김재원의 행방에 대한 단서도 그들은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김씨는 보훈처가 의지만 있으면 김재원의 행방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사람 하나 못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죽었으면 죽었다고 기록이라도 남았을 텐데, 여전히 소재 불명이라고 하니까요. 분명 보훈처 내부에는 기록이 있을 거 같은데..."
아직도 넘어야 할 산 많이 남아
김정수 일가에 대한 서훈 취소가 이뤄졌지만, 김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묘역 파묘', '김정수 일가의 유족들이 받아간 보훈연금과 훈장의 회수', '보훈연금을 부당 수령한 유족들에 대한 법적 처벌', '김정수에 대한 모든 국가기록 삭제', '가짜 김진성의 딸 김재원이 받아간 훈장의 회수', '김정수 일가의 행적에 대한 전면 재조사' 등 후속 조치들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정수 일가에 대한 서훈은 취소됐지만 훈장은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씨는 이들에게 주어진 훈장을 압수수색을 통해서라도 회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보훈처로부터 "그렇게 하긴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도대체 보훈처가 일을 할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보훈처가 김정수의 유족들에게 이장 안내를 했다고는 하지만,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파묘할 법적 권한은 없다고 한다.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이장을 할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인 것이다.
귀화한 그에게 돌아온 건 조국의 멸시와 냉대였다
김씨의 기억 속에 부친 김진성은 자상했지만 늘 병약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젊은 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어린 아들에게 "커서 꼭 의사가 되어라, 그리고 중국에서 사는 게 힘들면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 1960년에 촬영한 김세걸씨의 가족사진. 맨 뒤에 안경을 쓴 이가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이며, 앞줄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가 김세걸씨다.
김세걸
아버지의 바람대로 김씨는 중국에서 인민해방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97년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냉대였다.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제기한 그에게 보훈처 공무원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귀화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느냐'는 식의 태도로 나오는 바람에 심한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그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다. 모친 앞으로 나오는 보훈연금과 자신이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그리고 아내가 남의 집 애를 봐주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택배 상하차 노동까지 했지만, 최근 탈장수술을 받으면서 경제 활동에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조국에서 맛본 심한 무력감과 굴욕감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20년 동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한 신념과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는 공산당이었지만 한국에 와서 예수당이 됐습니다. 내가 다니던 '사랑의교회'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죠. 가짜 김진성 공훈록을 내놓으라고 해도 모르쇠로 버티던 보훈처를 움직인 것도 모두 교회 사람들이 힘써준 덕분이었습니다."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 해결 위해 정부가 나서야
김씨는 보훈처를 여전히 불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보훈처가 20년 만에 서훈 취소라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도 보훈 문제에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 나섰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는 정부가 좀더 의지를 갖고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이상 안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훈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유족들 입장에선 무척 고마운 일인데 기왕이면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올바른 해결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현충원에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진 이들이 66기나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겁니까. 이런 건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합니다."
김씨는 지금도 부친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고생이 상상되어 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김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 곧바로 현충원으로 향했다.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문제의 181번 묘에는 여전히 김정수라는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새겨진 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 부친 김진성 선생의 서대문형무소 수감 당시 사진을 가리키는 김세걸씨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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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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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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