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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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 뒤까지 활동한 친일 역사학자다. 일제 때는 한국사 왜곡을 담당하는 조선사편수회(총독부 직속)에 참여했고, 해방 뒤에는 식민사관을 그대로 지켜내는 데에 큰 '공로'를 세웠다. 신석호 역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조선사편수회에 가담한 역사학자다.
독립유공자 심사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역사학자의 발언권이 높을 수밖에 없다.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거물급 역사학자들이 포진했으니, 심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962년에만 이랬던 게 아니다. 친일파들의 활약은 계속 이어진다. 정운현 기자의 글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들이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다. 그런데 심사위원 22명 중 이때도 고재욱, 신석호, 유광렬, 이갑성 등 4명의 친일 인사가 끼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역시 위원 21명 중 고재욱, 백낙준, 신석호, 유광렬, 이병도, 이선근, 홍종인 등 7명의 친일 인사가 들어 있다."
"1977년도에는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11명 중 친일파 출신으로는 다시 유광렬·이은상 등 2명이 들어 있다."
친일파들이 독립유공자 후보를 심사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민족에 대한 기본 애정도 없는 그들이 성의 있고 진지하게 심사를 할 수 있었을까? 적당한 선에서 얼른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까? 친일청산 분위기가 고조되면 인생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그들이, 대중적 스타가 될 만한 독립유공자를 세상에 드러내려 했을까? 친일청산 분위기에 불을 붙일 만한 독립운동가를 심사할 때는, 훨씬 까다롭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웬만하면 심사 탈락을 유도하지 않았을까?
이런 가능성들에 더해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친일파 출신 심사위원이 심사 대상자가 친일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독립유공자로 선정해주는 사례가 실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서춘(1894~1944년)의 사례가 그러하다. 서춘은 1919년 2·8 독립선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주필과 경성배영동지회(영국 배척 친일단체) 평의원 및 조선임전보국단(전쟁 지원 친일단체)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열심히 응원한 인물이다. 이를 위해 전국 순회강연을 하기도 했던 열혈 친일파다.
그가 서훈을 받은 1963년에는 네 명의 친일파인 고재욱·신석호·유광렬·이갑성이 심사위원회에 들어갔다. 이중에서 고재욱과 유광렬은 서춘의 친일 행적을 모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운현 기자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전체 위원 22명 중에서 4명의 친일파(고재욱·신석호·유광렬·이갑성)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중 특히 고재욱과 유광렬이 서춘의 친일행위를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고재욱은 서춘이 평의원으로 참가한 경성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또 유광렬은 서춘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에서 평의원을 지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서춘의 친일 행적을 덮어주었던 것이다."
친일파가 동료 친일파의 자손들을 챙겨줄 목적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제도를 악용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위한 제도가 이처럼 친일파 상호간의 '의리'를 위한 제도로 악용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들을 심사했으니, 진짜가 탈락하고 가짜가 선정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친일파 4명뿐 아니라 나머지 18명도 문제가 있다. 이들은 다들 교양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불과 20년 전에 친일 언론활동을 맹렬히 했던 서춘을 몰랐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서춘이 총독부 기관지 주필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전국을 돌며 친일 순회강연까지 했는데도, 그 18명 중 단 1명도 서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친일파 심사위원뿐 아니라 '멀쩡한' 심사위원들도 엉터리 심사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정희는 왜 '독립유공자 서훈'을 시작했을까

▲ 5·16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은 다른 사진.
김종성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들을 심사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1962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친일파 출신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내던 시절이었다. 독립군 잡으러 다니던 친일파가 최고회의 의장이 되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이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다른 아닌 박정희였다.
박정희가 정말로 독립투사들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벌인 일이 아니라는 점은, 정말로 친일청산을 위해 벌인 일이 아니라는 점은 그의 이후 행적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한일협정을 졸속으로 추진하면서, 일본의 침략범죄에 면죄부를 주려 했다. 또 그의 정권에서는 일본과의 불화 가능성을 막기 위해 독도를 폭파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일본의 침략전쟁이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가, 역사청산보다는 한일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그가, 친일청산 분위기가 확산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가, 정말로 진심을 갖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했을 리는 없다. 쿠데타로 인한 정통성 부족을 감추고자, 마음에도 없는 민족애를 겉으로라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일파 정권이 진심 없이 벌인 일인데다가 심사위원회 안에까지 친일파들이 들어갔으니, 유공자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가짜 유공자도 당연히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 문제는 친일 보수정권, 친일파 출신 심사위원, 친일파 출신 신청자의 삼위일체적 협력 속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랬으니 지난 수십 년간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행세를 하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고 현충원 묘역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그동안 선정된 유공자 전체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다행히 16일 오늘 국감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기 위해 '유공자 공적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수십 년간 잘못 지급된 연금도 회수하고 가짜들이 누리던 온갖 영예도 걷어내야 한다. 우리 민족이 더 이상 모욕을 받지 않고 우리 역사가 더 이상 왜곡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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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sisahistory.com(오늘의주요뉴스 정리).제15회 임종국상.저서:제도밖의 권력, 영부인 리스크.아무도 몰랐던 독립운동 이야기,친일파의 굴욕,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문제인가,조선상고사,역사추리조선사,당쟁의한국사,왜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한국중국일본 그들의교과서가 가르치지않는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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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독립유공자 만들어낸 삼위일체... 그 시작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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