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그들이 IMF가 만든 괴물? 난 동의하지 않는다

[리뷰] <국가부도의 날> 속 기억에 남는 두 캐릭터 갑수와 정학

18.12.03 19:14최종업데이트18.12.03 19:15
원고료로 응원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최근 개봉한 <국가 부도의 날>은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날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재구성했다. 허구라고는 하나 고통스러운 역사 현실에 기반하고 있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지어낸 얘기려니 하고 툭 털고 나서기가 어렵다.
 
당시 무능한 일부 정치인들을 비롯해 높은 지위에 있던 적지 않은 이들은 교활한 모피아 등에 올라타,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 영화 속 이들의 민낯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 아닐까. <국가부도의 날>은 이미 모든 것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는 현재 국민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있다. 
    
영화 말미에 새겨진 자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금 모으기로 모인 돈은 20억 달러였고 이 돈 대부분은 대기업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고.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를 국가 위기로 가져갔고 언제나처럼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뭘 잘못해 그런 위기가 온 것처럼 조장해 전 국민을 또다시 우민화했다.

'1997년보다 한뼘이라도 나아졌나'란 질문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당시 국민이 금 모으기로 모은 돈이 20억 달러였음에 비춰볼 때, 차라리 국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후 정신 바짝 차리고 차근 차근 대처했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랬다면 약탈적 구제 금융을 받지 않고서도 당시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이 20년 전인 1997년 그날보다 한뼘이라도 나아졌는가'를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는 IMF라는 유령이 만든 전형적인 캐릭터로 '갑수(허준호 분)'와 '정학(유아인 분)'을 세운다. 성실하고 착한 갑수는 IMF 이전까지만 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위기 상황에서 보이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를 끝까지 믿어 준 사람을 배신하는 설정에, 한탄이 나온다.

그는 20년 전 내 선배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 선배는 결국 자기를 믿어주었던 모든 사람을 교활하게 저버린 채 '먹튀'했고, 이후 남은 사람이 감옥에 가거나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임금을 떼이거나 끝내 자살하는 걸로 그 뒷감당을 했다.

갑수의 선택이 결국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불행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해서, 그의 비윤리적 선택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누구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으라'는 적나라한 역설은 결국, 당시는 어쩔 수 없었던 그의 선택이 아무도, 무엇도 구제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약자 중 약자인 외국인 근로자를 험악하게 다루는 사업주로 변신한 '갑수'의 모습은 몹시 쓰라리다. 다른 이의 희생으로 얻은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약자에 대한 연민마저 상실한, 실패한 선택이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약자가 약자와 연대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노련한 악과 맞서겠는가.

외환위기가 만든 또 하나의 소름 끼치는 캐릭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미국은 IMF의 지분 17.5%를 가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라고는 하나 실상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은행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을 빌려주면서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가혹한 요구를 하는지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잘 알게 된다. 

영화는 외환위기가 만든 또 하나의 소름 끼치는 캐릭터로 '윤정학'을 제시한다. 촉이 잘 발달한 일개 금융사 직원이 투자의 귀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정학이 단지 IMF가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그래서 정학의 변신이 무죄라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나라를 IMF에 넘기고 유형이든 무형이든 한 몫씩 챙긴 이들이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은, 굳이 영화가 설명하지 않아도 대다수 국민이 아는 이야기다. 그날은 '국가부도의 날'일 뿐 아니라, 열심히 살았던 국민 대다수의 심신을 얄팍한 어음으로 후려친 '국민부도의 날'이다.  

끝으로 한 가지. 극 중 남성들은 "여자는 감정적이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거나 "계집년 따위가 나댄다"는 따위의 모욕으로 한시현의 선택을 짓밟는다. 분명히 하자. 나라를 말아 드신 이들은 남성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예정
국가 부도의 날 IMF 외환위기 매국노 김혜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