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석태 박사가 2018년 11월 28일에 열린 한중 국제 과실주 교류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와인생산협회
그의 '언젠가 써먹을 수 있다'는 막연한 예상은 들어맞았다. 2006년 2월, 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예상하지 못한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포도연구센터였다(당시 포도연구센터는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소속이었다. 후에 원예연구소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포도 안토시아닌 색소를 연구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포도연구센터에서는 적임자가 왔다고 무척이나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그가 일본에 갈 때만 해도 포도연구센터는 없었다. 2005년에 신설된 포도연구센터는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정 박사를 그쪽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포도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정 박사에게 일본에서 받았던 양조 교육을 활용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 때는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2006년은 한국와인산업이 슬슬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수 생산 농민들이 하나씩 둘씩 와인 양조에 관심을 갖고 방안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FTA 등으로 수입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와인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충북 영동이나 경북 영천이 와인산업을 시작한 것도 2008년이다.
이들 지역에서 처음 와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와인은 안 된다, 반드시 실패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그래도 시작했고, 지금은 누구도 "한국에서 와인은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이런 흐름 때문이었을까. 전문 양조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현실을 반영해서 2007년부터 농촌진흥청은 전문 양조교육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포도연구센터의 정석태 박사가 있었다. 그에게 전문양조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 전문양조 교육과정을 곡주 양조와 와인 양조 두 부문으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그가 그 두 가지를 다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곡주든 와인이든 그가 할 수 없는 분야는 없지만, 두 분야를 담당하는 기관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원예원 소속이니까 과실주는 할 수 있는데, 곡주는 국립농업과학원이 담당이죠. 내가 둘 다 하면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게 돼서 과실주만 맡겠다고 한 거죠."
정 박사는 이렇게 시작된 '농민주 제조 심화과정'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양조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교육기간은 3월부터 12월로 장기 교육이었다. 교육기간을 길게 잡은 것은 묘목 재배, 원료 수확, 양조, 발효, 청징뿐만 아니라 와인 병 라벨 제작, 마케팅 등의 전 분야를 포함하는 양조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농민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와이너리를 창업했으니,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 박사는 교육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하면 달려가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홍천 나드리 와이너리의 임광수 대표가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하면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정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정 박사는 전주에서 홍천까지 달려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임 대표는 정 박사가 없었다면 더 많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 양조 전문교육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정 박사와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나눠 진행했던 교육을 2009년부터는 정 박사가 전담하게 된다. 정 박사가 국립농업과학원으로 특별채용돼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 정석태 박사
유혜준
정 박사가 이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승진'이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휴직을 하고 일본유학을 선택한 정 박사에게 이 기간은 자기계발을 하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직장에서 그 기간은 공백이 되어 승진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하나씩 둘씩 연구관으로 승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구관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포도연구센터에서 와인용 포도품종 선발에 앞장서면서 한국와인산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열정과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정 박사는 "2001년, 가공과가 공중분해 돼 채소과로 발령이 났을 때처럼 새로운 선택을 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으로 옮기려는 생각을 하던 참에 국립농업과학원에서 특별채용을 한다는 공고가 났어요. 처음에는 응모하지 않았어요. 내가 있던 원예원이 농촌진흥청 관련 기관이라 자격이 안 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된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응모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응모를 했고, 채용이 됐죠."
2009년, 우여곡절 끝에 그는 국립농업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농민주 양조 심화과정'을 통합해서 담당하게 된다. 포도연구센터에서 와인용 포도품종 연구와 와인 신제품 개발을 하고,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발효가공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그의 전문 분야를 확장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정석태 박사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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