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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니... 냉전 시대 사랑의 비극

[리뷰] 영화 <콜드 워> 가슴 아픈 역사와 사랑의 가치 담아내

19.01.28 10:43최종업데이트19.01.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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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드 워> 포스터 ⓒ 아이 엠


2015년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한 여성의 가족사를 통해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담아낸 영화 <이다>로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60여 개 상을 휩쓸었다. 안제이 바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이후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폴란드 영화계에 쾌거를 이뤄낸 것. 그는 이번 작품 <콜드 워>를 통해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건 물론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다. <콜드 워>는 왜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을 주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콜드 워>는 제목이 의미하듯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49년 독일 나치에게서 해방된 폴란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을 이루는 냉전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주의 체제 하의 폴란드는 국가 주도 하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건 물론 전 분야에 걸쳐 간섭했다.

마주르카 악단을 운영 중인 빅토르는 폴란드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전통 민요를 부를 줄 아는 젊은이들을 모은다. 그는 전쟁의 아픔을 겪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을 주기 위해 악단을 꾸린다. 이 악단에 도시 빈민가 출신의 '줄라'라는 여인이 들어온다. 동료는 줄라가 시골 출신도 아니고 전과가 있으니 내보내자고 말하지만 빅토르는 "줄라에게는 무언가 있다"며 거절한다. 그 무언가는 그가 줄라에게 품은 사랑이었다.
 
줄라와 빅토르는 격렬하게 사랑에 빠지지만 조국 폴란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집권당은 마주르카 악단에게 전통 민요를 통해 당의 사상을 선전할 것을 요구한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만큼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원하는 빅토르는 당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불편을 겪는다. 여기에 줄라가 당의 명령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빅토르는 폴란드에서는 이 불 같은 사랑을 태울 수 없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줄라에게 함께 파리에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영원을 약속한 줄라가 나타나지 않고 빅토르는 혼자 파리로 떠난다. 이 이별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콜드 워> 스틸컷 ⓒ 아이 엠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 본인 부모님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첫 번째는 <이다>에서도 보여주었던 흑백과 4: 3의 화면비다. 감독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된 당시 폴란드 국민들의 모습을 흑백에 담았다고 말했다. 불분명한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뚜렷한 색깔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흑백은 흑과 백으로 화면이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냉전 시대 당시에는 사상을 이유로 인간을 두 분류로 나누었다. 자유주의자가 아니면 공산주의자였고 나를 비롯한 우리를 백(아군)이라 여겼고 너희 혹은 저들을 흑(적군)이라 생각했다.
 
4: 3의 화면비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 다큐멘터리 감독 시절부터 사용하던 화면 구성으로 당시에는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 선택은 그의 예술 세계를 한층 높이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4: 3의 화면비는 고전적인 느낌을 살려준다. 이는 <콜드 워>가 지닌 클래식한 음악의 깊이를 화면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동시에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이 4: 3의 화면비를 통해 힘을 얻게 된다. 감독은 인물을 카메라 앞에 세우기보다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을 추적한다.
  

<콜드 워> 스틸컷 ⓒ 아이 엠

 
멜로/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과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해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거나 두 주인공이 돋보이는 앵글을 잡아 화면에 위치시킨다. 카메라 앞에 세워 멋있고 애절한 감정을 보여주게 만드는 게 로맨스 영화이다.

반면 <콜드 워>는 화면의 앵글에서 인물을 중점에 두지 않는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주인공을 추적하듯 카메라는 멀리서 관조한다. 이런 시점은 4: 3의 화면비에 맞춰 색다른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장면이 줄라가 공연 중 빅토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이때 화면은 단 한 순간도 줄라를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단원들 틈에서 슬픈 표정의 줄라만을 비출 뿐이다.
 
4: 3의 작은 화면비는 화면 전체에 인물을 집어넣지 않으면서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게 만든다. 이 시선이 중요한 이유는 <콜드 워>가 지니는 전개 때문이다. 감독은 사건이나 대사가 중심이 된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 아닌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서로를 향한 영원한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대사와 사건은 단편적이고 시간과 장소의 이동이 빈번하다. 그 빈 자리는 감각적인 화면과 청각을 밝히는 노래들이 대신한다. 사소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정을 만드는 구조가 아니기에 넓은 관점을 지니고 작품을 바라봐야 된다. 감독은 독특한 화면 구성과 인물을 향하는 카메라의 시선, 여기에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기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들과는 다른 그만의 애절하고 위대한 사랑을 그려낸다.
 
<콜드 워>는 전형적이고 통속적일 수 있는 시대의 아픔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신선하면서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클래식한 소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법과 표현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조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가슴 아픈 시선과 사랑의 위대한 가치라는 본질을 균형 있게 담아낸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카메라는 황홀한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콜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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