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는 몇 해 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다.
이용선 제공
천년왕국 신라, 여왕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통치자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은 우리에게 어떻게 알려져 있을까.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진 군주로 기록된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진평왕의 딸이다. 그녀가 정치력을 행사한 15년의 기간 동안 신라는 남성 왕이 지배하던 시절 이상으로 국가의 힘을 키웠다.
인품이 자애롭고 미모 또한 빼어났다고 전해지는 선덕여왕은 중국과의 정치적 불화 속에서도 현명하게 처신해 신라를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화랑세기>는 선덕여왕이 "2명의 남자와 3번에 걸쳐 결혼생활을 했으나 아이가 없었다"고 기록했다.
선덕여왕의 사촌인 진덕여왕은 '비담(毗曇)의 난' 와중에 선덕여왕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신라의 통치권자가 된다. 재위기간은 647년부터 654년까지. 진덕여왕의 이름이 '승만(勝曼)'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의 아버지는 진평왕의 동생인 진안갈문왕이고, 어머니는 월명부인 박씨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드라마와는 판이한 모습으로 진덕여왕의 외모를 묘사한다. 어찌 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
"여왕의 자태는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나 키가 7척이나 되었고, 늘어뜨리면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팔이 길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 여행객들이 선덕여왕릉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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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로 회자되는 진성여왕과 원화…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몇몇 사료들을 살필 때 큰 지탄과 오해 속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으니 바로 '진성여왕'과 '원화'다. 먼저 진성여왕을 설명하는 책의 한 대목을 보자. 다음은 경상북도가 간행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연구총서에 등장하는 진성여왕에 대한 서술이다.
"결국 신라는 9세기 말 진성여왕 시기에 터진 지방사회에서의 농민 반란을 계기로 각 지역의 유력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립하면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표현은 여왕의 무지와 무기력이 왕조의 숨통을 끊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진성여왕은 "정치적으로 무능력했던 동시에 음란하기까지 했다"는 학계의 공격 또한 받고 있다.
<화랑세기>에 그 원형을 드러내는 원화도 그렇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원화를 이끌던 '준정'과 '남모'라는 신라 여성을 향해 "질투심과 시기가 이 조직을 붕괴시켰다"고 힐난한다.
그런데 정말로 진흥왕 3년(576년) 효도·우애·충성·신의를 모토로 만들어진 원화가 단순히 여성이 주도했다는 사실만으로 무너졌을까? 여기서 '역사적 호기심'은 새끼를 치며 이어진다.
멕시코에서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였던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당대 최고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1864~194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 속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저평가 받았던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1871~1919)를 떠올려보면 신라 여성들에 관한 평가 역시 지나치게 인색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이 남성이 주도해온 것이건,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것이건 역사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작지 않다. '신라 여성에 관한 평가'가 온당한 것이었는지를 살피는 작업 역시 이런 차원에서 중요한 게 아닐까?
▲ 1천 년 신라 역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여인인 동시에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미실.
삽화 이찬욱
'미스터리한 삶'을 살아간 미실도 저평가...
앞서 말한 신라 여성들만이 아니다. '성 행위'를 무기로 왕조를 농락한 여성, 아름다움 하나로 수십 명의 왕족과 귀족을 쥐락펴락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 악녀)로 알려진 미실(美室) 역시 덧씌워진 혐의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화랑세기>라는 고서(古書) 한 권, 혹은 방송국이 만들어낸 드라마 한 편으로는 '존재했던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는 게 정한 이치. 오늘을 사는 누구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었던 미실의 굴곡 도드라졌던 삶과 죽음이라면 더 그렇다.
이미 1천500년 전 유사 페미니즘(Feminism)을 삶의 안팎에서 구현한 특이하고 돌올했던 여성 미실. 미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가 미진했던 것은 단순히 왕조 중심의 사관(史觀)과 '남성'을 향한 과도한 주목 탓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그녀가 주목할 만한 시대사적 가치를 가지지 못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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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여성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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