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 약칭: 남녀고용평등법 ) 제7조(모집과 채용) ①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ㆍ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ㆍ키ㆍ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무려 30여년 전인 1988년 제정되었다. 수차례 개정된 이 법은 성별에 따른 고용, 근로 환경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그야말로 애를 쓰고 있다. 개정을 통해 추가된 항목들을 살펴보면 성희롱 예방교육과 성희롱 가해자 처벌 등에 관한 내용, 출산과 육아를 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 등이 추가되고 수정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렇게 안간힘을 써도 여전히 노동시장에는 노골적인 성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채용과정에서부터 성별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다는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특히 지난해 4월 국민은행 인사담당자가 남성 지원자에게 서류 가점을 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금융권 채용 성차별의 민낯이 터져 나왔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미리 합격자의 성비를 고정해두고 채용절차를 진행하였고 삼성화재 등 채용과정에서 성별을 차별한 의혹을 받는 몇몇 기업은 아직 보존의무기간이 지나지 않은 지원서를 전량 폐기해버리는 등으로 감독을 빠져나갔다. 심지어 신용협동조합은 여성은 지원불가라고 공고하여 행정지도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명백한 위법행위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지난해 4월,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금융권의 이러한 행태를 '관행'이라 명명하였다.
위와 같은 사례는 명백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채용과정에서는 이러한 노골적인 차별행태만큼이나 숨 쉬듯 만연한, 그래서 적발하기 어려운 형태의 차별들도 굉장히 문제적이다. 지난해 6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여성들이 입사를 꺼리는 질문 1위가 "여자치고는~하네"와 같은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고용노동부에서 2018년 9월부터 4개월간 운영한 고용상 성차별 익명신고센터에 제보된 122건 중 가장 많이 제보된 내용도 채용과정 중 발생한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신고건수를 기록한 것이 면접과정에서 결혼여부와 자녀임신계획 관하여 물은 것이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 7조 2항은 직무수행과 무관한 미혼조건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채용조건에 적지만 않았을 뿐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구직자를 차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면접자의 재량으로 작동하는 채용의 차별은 구직자의 제보가 아니면 적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남녀고용평등법 30년, 여전한 차별의 이유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처벌규정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례와 통계들만 보아도 이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법대로 처벌하였다면 처벌대상이 아닌 기업을 찾는 것이 쉬울 지경이다. 채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의 시정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가볍다고 볼 수 있는 약한 처벌규정이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행의 사례처럼 담당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벌금 이상의 처벌까지 가는 경우도 매우 드물며 벌금은 대체로 1000만원 이하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반드시 법을 준수해야겠다는 위협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위하여 움직인다.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행위가 알려져서 소비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벌금보다도 무서운 처벌이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가 자행되는 것은 기업이 판단하기에 국민들이 '이런 일쯤은' 넘어가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비록 기업이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인 법적제재도 강력하게 작동해야 한다. 거대 은행이 고작 벌금 500만원 수준의 처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또한 은행의 특성상 소비자의 선택이 일반 물건의 구입처럼 단번에 반영되지 않는 편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금융권의 성차별적 행태가 지금껏 이어왔을 것이다. 사회의 수많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한민국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도입되지 아니하였으나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의 강도 높은 법적 처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얼마 전 정부는 채용시 연령에 의한 차별을 금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한 댓글을 살펴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래 나이 그게 뭐라고 차별해왔지!"라고 반응하였다. 채용시 연령 제한을 두는 것이 이유 없는 차별이었음을 사람들도 느껴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땅한 이유 없는, 그래서 부당한 성별에 따른 채용 차별을 국민들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이미 밝혀진 행태에 대하여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기업 규탄하기, 채용차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방법을 모색하기 등 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면접에서 여성 구직자에게만 던지는 질문들을 보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녀양육이 여성 직원들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출산과 양육은 부부 공동의 나아가 사회 전체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출산과 양육이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된다면 기업도, 이 점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도 채용과정의 성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사회의 인식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처벌규정을 도입하여도 그 제도는 활용될 수가 없다. 또한 차별은 어느 한 곳 만의 단독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채용 성차별의 원인이 채용절차 내부의 성차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차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하는 분위기는 사회 전반에 차별의 씨앗을 키운다. 다양한 영역, 수많은 유형으로 행해지는 차별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금하고 있는 내용들이 민망할만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법이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사회에 터져 나온 비명소리를 우리 사회는 얼만큼 시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 개개인이 얼마나 반차별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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