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성균관대학교 구 중앙도서관 신축 모습 성균관대학교는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 1959년 4월 10일 중앙도서관을 개관했다. Y자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지은 구 중앙도서관은 신종식이 설계했다. 중앙도서관 신축과 함께 존경각은 장서와 기능을 넘기고 건물만 남았다.
국가기록원
조선 시대 도서관의 흔적은 집현전, 홍문관, 규장각 같은 궁궐 안 국가 도서관을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궁궐 밖에서는 성균관과 서원, 향교의 책을 모아둔 공간에서 도서관의 명맥을 찾을 수 있다. 성균관 존경각은 최고 교육기관에 존재했던 유일한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다.
성균관은 이탈리아 볼로냐대(1088년), 영국 옥스퍼드대(1096년), 프랑스 소르본대(115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120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1386년), 독일 쾰른대(1388년)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갖는 대학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국권을 잃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 최고 교육기관과 도서관의 전통은 이어지지 않고 끊긴다.
해방 후 미군정은 일제 통치기구를 그대로 존속시킨 것처럼 교육 분야도 '현상 유지' 정책을 취했다. 국립대학 역시 성균관의 부활이 아닌 일제가 만든 경성제국대학의 유지와 개조를 택했다. 미군정의 대학 정책도 영향을 미쳤지만,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그 중심에 성균관 인재가 있었다면, 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과정에서 유림과 성균관 인재가 전면에 나섰다면 성균관과 존경각의 위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유림이 단 한 명도 없음을 알고 심산 김창숙은 통곡했다고 했던가. 심산은 망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유림이 독립운동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더럽고 썩은 유림'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음을 통탄했다. 한일 강제 병합 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상당수 또한 유림이자 양반이었다.
유교 지배이념 유지와 양반계급 인재 재생산 기관인 성균관에게 그 질서를 부수고 변화를 선도하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한 기대였을까. 옥스퍼드 보들리언(Bodleian) 도서관, 케임브리지 렌(Wren) 도서관, 하버드 와이드너(Widener) 도서관 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도서관을 우리가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존경각 책이 흩어져 사라진 것처럼, 조선 왕조를 지탱하던 제도와 기반도 붕괴했다. 그리고 고려 국자감 때부터 이어온 성균관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도 여기서 그쳤다. 성균관과 존경각, 그 이름은 이어졌지만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한때 조선을 지탱하는 인재의 산실 성균관과 인재 양성을 뒷받침한 존경각은 그래서 더 쓸쓸해 보인다.
[성균관 존경각]
-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31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 이용시간 : 하절기 09:00 - 17:30 동절기 09:00 - 16:30
- 휴관일 : 연중 무휴.
- 이용자격 : 자격 제한 없음.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skk.or.kr
- 전화 : 02-760-1472
- 운영기관 :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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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으로 출간)에 이어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을 썼습니다. bookhunter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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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분실하면..." 정조가 성균관 도서관에 내린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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