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산도, 사람이 살아가는 집은 물론 물도 까만 물이 흐르던 탄광촌도 이젠 몇 곳을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았다. 탄을 캐기 위해 바위를 뚫고 길을 만들기 위해 캐낸 바위가 산을 이룬 풍경은 지금도 정선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정덕수
술 몇 잔 마시고 형수가 차린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잠시 잠이 들었다. 뭔가 부산한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병반 출근시간이라 준비하는 소리였다. 형이 출근하는 걸 배웅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불이 꺼지지 않은 안방 문을 노크하니 형수가 "삼촌 왜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이 안 와요"라며 형과 마시던 소주를 챙겨줬다. 형의 도시락반찬을 준비하며 미리 남겨뒀다는 소시지부침까지.
물 한 동이를 여다 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니
촌살림 하기는 정말 원통하구나
이밥에 고기반찬은 맛을 몰라 못 먹나
사절치기 강낭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한 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이 내 맛만 같으면
올 같은 흉년에도 농사를 않치
변북이 산등에 이밥취 곤드래 내 연설을 들어라
총각 낭군을 만날라 거든 해 연년이 나거라
물 한 사발로 허기를 때우던, 강낭밥(옥수수밥)으로 때우던 자식들 배를 불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되던 시절이었다. 아니 산나물로 한 밥이나 죽으로 때워도 배만 곯지 않으면 감지덕지했던 날들을 겪었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이 살기위해 언제 위급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탄광촌에 모여 살았다. 만 1년 반 뒤 내가 그 탄광에서 일을 해야 될 운명이란 건 그땐 꿈조차 꾸지 못했다.
혹자는 이제 신체검사를 받는 얘기를 하면서 형과 술을 마신다느니, 형수가 술상을 봐줬다느니 하면 "아무리 술을 마실 줄 안다고 해도 어느 집에서 그렇게 하냐"고 할 수 있다. 가풍이 달라서도, 그렇다고 술이나 담배에 대해 관대한 집안이라 그런 것도 아니다. 14살부터 이미 사회생활을 한 동생이 겪으며 배웠을 세상물정을 알기 때문에 이해했을 뿐이다.
소주 반 병 마시는 동안 막내 여동생 이야길 형수가 들려줬다. 형수의 여동생과 함께 성북동에 친구까지 셋이 가 있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됐다. "휴가 때나 올라는지 모르겠어요. 고모가 안동에 가서 시험을 쳤던 모양인데…" 한동안 말을 못 잇는 형수가 입을 다시 열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술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작은 삼촌이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학비를 못 대줬어요.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도…" 그리고 더 이상 형수는 아무 말 없이 잠 든 조카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밥 한 냄비 달달 볶아서 간난이 아버지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고 자자
배달의 동포야 굶주리지 말고서
힘대 힘대로 일하여 자수성가 합시다
겹쳐진 허리에다 지개 타작 싫거든
떠돌이 한 백년에 빌어서나 먹겠다
금전을 주어도 세월을 못 사나니
아까운 세월을 허송치나 마소
설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 닭을 키우는 촌집이 있는지 수탉이 훼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에서 시계를 확인했다. 얼추 다섯 시 된 거 같다. 자리에서 빠져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공동우물가로 갔다. 흘러넘치는 물이 한쪽으로 빠지는데 거기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그 사이 샛별도 사라지고 하늘빛도 바뀌기 시작했다.
늦게야 잠이 든 형수는 곤히 자는 모양이다. 가방을 챙겨 기차역으로 갔다. 정선행 통근열차는 오래지 않아 출발했다. 정선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가 병사계장이 머문 숙소 근처 식당에 들어가 순대국 한 그릇을 주문해 먹고 느긋하게 여관방문을 두드렸다.
이제 생각하니 병사계장이 아니라 병무계장 아니었던가 싶다. 둘 다 같은 말이긴 하되 요즘 면사무소나 동사무소에서 볼 수 없으니 오류라 하더라도 이해해주길…. 병사계장이 배달시킨 아침을 먹고 나서야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신체검사라 해도 뭐 별 거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정선군청 옆에 마련된 장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뒤 200명이 넘는 또래 장정들이 웅성거리는 그곳에서 "어제 어떻게 됐어? 난 오늘 다시 오라더라고"란 말이 들렸다. 이건 뭔 소리야 싶었다. 어제도 왔는데 하루에 다 못 끝낸단 말인가? 그것도 어제 만났던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 서로 결과를 묻고 있잖은가. 그 의문은 잠시 뒤 풀렸다.
흰 가운을 걸친 군의관들이 도착하고 각자 책상에 앉거나 맡은 구역으로 자리하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보건소에서 나왔음직한 의사로 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간호사도 아닌 가운을 걸친 여자들과 간호장교를 보고 휘파람을 보는 녀석까지 있었다.
복도에 서서 유리창을 통해 안쪽 상황을 살피는데 갑작스럽게 "팬티만 입고 모두 탈의한다. 실시"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에서 옷을 벗어 지시에 따라 벽 쪽으로 밀쳐두고 차렷 자세로 섰다. 군화를 신은 걸로 미뤄 군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누런 봉투를 들고 앞에서 걸어오더니 쓰윽 훑어보며 지나갔다. 잠시 뒤 "거기, 이게 뭐야? 아직도 다 못 밀었어"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어제 어떻게 됐어? 난 오늘 다시 오라더라고" 했던 바로 그들 앞에선 남자가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 인원이 많아 다음날 오라고 한 줄 알았던 그들을 확인한 다른 청년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을 듣고 모두 웃었다. "자들 어제 나보다 한참 앞에 있었는데 옷을 벗으라고 했는데 안 벗더라고. 저 사람이 화를 내니까 벗긴 벗었는데 까만 내복을 입은 줄 알았어. 때를 얼마나 안 밀었는지 새까맸어"란 다소 과장된 말을 듣고, 도대체 얼마나 목욕을 안 했으면 목욕하고 다시 올라고 돌려보냈나 싶어 안쓰럽긴 해도 웃음은 참기 어려웠다. "빤쓰가 아니라 방 닦은 걸렐 입은 줄 알았다니까"란 말엔 군의관으로 보이는 남자도 손에 든 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섰다.
"OOO! 정덕수! XXX"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어 뭔 일인가 싶지만 대답했다. "왜 고향에서 안 받고 여기까지 왔지"란 말에 신체검사를 먼저 시작한 양양군에서 안 받고 맨 마지막으로 하는 정선군까지 왔냐는 질문이란 걸 알았다. 누런 봉투는 각각 다른 고장 병사계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러 정선군으로 온 청년들의 인적사항이 들어 있었단 걸 그때 알았다.
차례로 들어가 정해진 순서대로 군의관이나 보건소 직원 등 담당자 앞에서 온 몸을 재고 살피 킨 뒤였다. 엑스레이촬영을 위해 200명이 넘는 청년들이 팬티만 입고 정선군청에서 1km는 족히 되는 정선군보건소를 왕복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요즘 그렇게 고압적인 분위기로 닦달하며 신체검사를 받게 한다면 과연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까?
'2급. 수/보충역대상'이 내가 받은 신체검사결과다. 신체는 현역대상인데 학력이 없으니 방위병으로 근무해야 될 처지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이가 당시 스무 살이 된 1964년생들이다. 마지막으로 중학교를 가정형편 탓에 못간 아이들도 우리들이었고, 처음으로 중학교입학시험도 사라진 세대였다. 그 뒤로 2년 지나 3주 교육으로 미필보충역이 돼서 병역의무는 나와 완전히 끝났다.
세월이 갈라면 저 혼자나 가지
알뜰한 청춘은 왜 데리고 가나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백발머리 되는 일이 잠깐일세
세월아 봄철아 오고가지 말아라
알뜰한 청춘이 다 늙어간다
월미봉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되면
오던 새 그 나비도 되돌아간다
국화매화 곱기도 고와도 춘추단절이 아니냐
여자일색이 아무리 고와도 삼십 미만이로다
백발이 오지 말라고 가시성을 쌓았더니
어언 순간 백발이 왔구나
정선군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판매하는 카세트테이프를 큰 기대를 걸고 구입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노래 20곡 남짓 담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에 구구절절 정선아리랑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몇 종류 나눠 담아냈으니 "200여 수가 전해오고 있다"는 설명엔 턱 없이 미치지 못했다. 기껏해야 40여 수나 될까싶은 카세트테이프는 한 번 듣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관심도 두질 않았다.
▲강변의 봄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온다. 탄광촌 마을이 대부분 사라진 정선군은 유난히 많은 바위산과 그 사이를 휘감아 도는 강을 따라 발달한 특유의 정선아라리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번 동강할미꽃 촬영에서 정선에 있는 정선아라리 이수자를 만나 촬영하고 싶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뤘다.
정덕수
이 여섯 수의 정선아라리 엮음은 부르는 이마다 엇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표현으로 불러 혼란스러웠다. 같은 노래도 부르는 이에 따라 노랫말이 바뀌는 정선아라리의 특성 탓에 정리하기 가장 어려웠다. "월미봉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되면 오던 새 그 나비도 되돌아간다" 같은 경우엔 마지막 부분이 "어느새 그 나비도 뒤돌아간다"로 부르는 노인도 있고, "오던 새 그 나비도 뒤돌아간다"로 부르는 이도 있다. 되돌아가나 뒤돌아가나 어차피 바라보지 않는단 의미는 분명하다.
세월이 속절없이 오고 가는 걸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이 나이 되고 보니 알겠다. 대를 밀지 못할 정도로 노는데 정신 팔려도 좋으니 다시 스무 살 시절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엔 정말 실수 하나 없이 잘 살아볼 거 같기도 하고.
이제 4월이다. 3월을 봄이라 하지만 그건 예전 음력을 사용할 때 한 말들이니 4월이 진정한 봄이다. 연모의 마음 깊어 그 집 앞 되돌아간 적 한 번 없으나 어찌 봄 되면 더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조차 없었겠는가. 정선아라리에서 가장 많이 노래되어지는 주제 또한 이성 간의 그리움이다. 다음 얘길 그 애틋하면서도 참으로 구구절절 봄바람 살랑거리는 꽃비 속에 불렀음직한 사랑편만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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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지위 나풀거리는 눈송이 / 가지를 부러뜨리네. //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 저 눈송이인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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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청춘 덧없이 지나고 백발에 듣는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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