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앞둔 5월31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극비리에 방한해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사진이 공개됐다. 박 대통령 왼편이 박 부수상, 오른편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통일부 제공
남북 양측은 상호방문을 통한 회담에서, "쌍방은 남북간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조국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1. 통일원칙으로서 ①외세의존과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해결 ②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③사상과 이념ㆍ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동단결 도모 등에 합의했다.
2.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고 무력도발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3.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4. 남북적십자회담의 성사를 위해 적극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5. 군사사고 방지와 남북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가설에 합의했다.
6.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7. 이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
이후락 부장은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 유엔은 외세가 아니므로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② 전쟁을 방지하는 데 의도가 있으므로 법적 제도면에서 바꿀 것은 바꾸고 보완할 것은 보완해서 새 시대에 알맞게 갖춰나가야 할 것이며
③ 과거의 반목으로 일관된 남북대결은 대화의 대결로 전환된만큼 과거 체제의 보완 및 법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며
④ 새로 설치될 조절위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을 지원할 것이며
⑤ 상호교류에는 인적ㆍ물적ㆍ통신은 물론, 사회적ㆍ정치적 교류가 포함된다고 밝히고, 군사정전위의 역할이 휴전협정 문제에 국한되지만 여기서는 군사적ㆍ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방지를 위한 모든 방법이 거론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남북한은 72년 11월 30일 7ㆍ4남북공동성명의 규정에 따라 남북한 쌍방간의 합의사항을 추진하고, 남북한 간에 발생하는 제반 문제들을 개선ㆍ해결하며, 조국의 통일문제를 협의ㆍ해결할 목적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했다. 이것은〈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양측이 합의,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72년 10월 12일 판문점에서 제1차 남북조절위원장 회의가 열렸다. 서울측에서 이후락 중정부장과 김치열 차장, 정홍진 협의조정 국장이, 평양측에서 김성철 제2부수상과 유장식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덕현 노동당 책임지도위원이 대표로 참석했다.
이날 회담은 7ㆍ4공동성명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상호불신을 해소하는 문제가 논의됐으며, 제2차회의는 평양, 제3차회의는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남북조절위원회는 제1차 회의를 시발로 구체적인 활동을 위한 토의에 들어갔다. 서울측은 남북조절위원회 운영세칙 및 감사위원회 운영세칙, 공동사무국 설치규정 등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제의하고, 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분과위원회를 우선 설치하며, 체육ㆍ학술ㆍ통신 등 실현가능한 분야부터 교류를 시작하여 점차 확대 해 갈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평양측은 쌍방 군비축소, 주한미군 철수, 군비경쟁 지양, 무기 및 군수물자 반입중지, 평화협정체결 등 5개 항목과 남북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의 개최를 제안하는 등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끝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남북은 73년 6월의 제3차 회의를 끝으로 조절위원회 본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평양측이 한국정부의 6ㆍ23선언과 김대중 납치사건을 이유로 들어 남북대화의 중단을 선언했다.
7ㆍ4남북공동성명과 남북조절위원회는 결국 남북이 국민들 몰래 정부 당국자들 간의 밀담을 통해 통일문제를 처리하려 한 한계성과, 자신들의 권력기반 강화에 이를 이용하고 폐기시킴으로써 남북간의 불신과 대치를 더욱 심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7ㆍ4공동성명은 진정어린 통일의 방법이 아닌 권력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이후의 사태는 박정희는 유신체제로, 김일성은 유일체제로 달리는 고빗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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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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