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케포이북스
에비슨 가족은 건강 안식년을 얻어 캐나다로 돌아갔다. 에비슨은 서울 선교부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에는 한국에 현대식 병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1만 달러의 모금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에비슨은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현대식 병원이 없습니다. 반드시 제대로 된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라는 대답으로 한국에서의 병원 건립 타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루이스 에지 세브란스, 1839년생으로 클리브랜드 최초의 의사였던 데이비드 롱 박사의 손자였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장로교회의 장로로 평생토록 기부를 했다.
1900년 가을 에비슨 가족은 서울로 돌아왔다. 병원을 지으려면 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병원 부지를 고종 임금이 제공하고 싶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그러나 일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병원 건립 작업은 계속됐다.
1904년 9월 23일 오후 5시, 경성역 맞은 편에 멋진 건물이 완성됐다. 병원 건물을 바라보는 에비슨은 감격스러웠다. 병들고 연약한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의 문이 세상을 향해 열린 것이다. 아내 제니의 눈에서도 에비슨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 땅에서 40년 이상 헌신하고 에비슨과 제니는 캐나다로 돌아갔다. 제니의 형제도 10명이나 됐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형제들과 자식이나 친지 집을 방문하며 마지막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에비슨이 초등학교 선생을 하던 학교도 방문한다. 그런데 제니가 언더우드 집에서 갑자기 병들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한국을 떠나면서 제니 한 사람을 의지했는데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그는 절망과 고독 속에서 다시 일어나 한국에서의 42년을 글로 남기기 위해 기록한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다. 이러한 에비슨의 기록이 없었다면 세브란스와 연희 전문학교의 기록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96세의 일기로 사랑하는 아내 제니의 옆에 안장됐다.
세브란스가 없었다면 한국 최초의 종합병원은 더 늦게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자 했던 세브란스의 마음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세브란스 병원 이야기 - 올리버 알 에비슨과 세브란스
민혜숙 (지은이),
케포이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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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병원 세운 세브란스, 진짜 일등공신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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