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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뒤집어쓴 아이들의 대결로 지옥 같은 멕시코 현실 담다

[리뷰]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기름도둑>

19.06.29 17:31최종업데이트19.06.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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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도둑>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기름도둑>이 선정된 이유는 영화제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번 영화제를 한국영화사 100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닌, 앞으로의 100년을 만들어 가는 첫 걸음이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에는 앞으로 영화계를 이끌어 나갈 신인들을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포부는 대한민국 내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영화인들과 좋은 영화를 발굴해 내겠다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자세는 에드가 니토 감독의 첫 장편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영화 <기름도둑>을 구성했다는 에드가 니토 감독의 발언은 개인의 사건을 통해 사회 전체를 조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현실을 담아낸 이 영화는 두 남자가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역에서 기름을 훔치는 두 남자를 발견하고 그 중 한 명을 사살한다. 시체는 들판에 널브러지고 기름도둑들과 결탁한 경찰서장은 대충 시체를 치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유가 폭등, 공권력의 부패... 멕시코가 처한 상황 보여주는 <기름도둑>
 

<기름도둑>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 장면은 멕시코가 처한 현재의 상황이다. 유가 폭등과 정치권과 공권력의 부패, 갱단이 지역을 지배하고 폭력이 법을 대신하는 이 무법지에 한 순진한 소년이 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고등학생 랄로는 아나나는 동급생을 짝사랑한다. 랄로는 아나에게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 말하지만 아나는 그런 랄로를 비웃는다. 오토바이를 탄 룰로 일당과 어울리는 아나의 모습에 랄로는 자신을 놀리기 위해 아나가 말한 스마트폰을 사주기 위해 몰래 기름을 빼돌려 돈을 모은다.
 
기름을 배달하는 노인의 기름통을 몰래 빼돌려 돈을 모은 랄로는 스마트폰을 사주면 아나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랄로의 어머니는 아픈 친척을 위해 랄로가 모은 돈을 사용해 버린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랄로는 차마 슬픈 티를 내지 못하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속은 슬픔에 타들어 간다. 돈을 잃은 랄로는 아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모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어둠의 길로 빠진다.
  

<기름도둑>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름도둑>은 순진하기에 더 빠르게 악에 빠져들고 그 악에 허우적대는 랄로의 잔혹한 성장담을 통해 멕시코가 처한 슬프고 암담한 현실을 담아낸다. 랄로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악몽이 투영된 존재다. 사랑마저 돈이 최우선이라 여기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든 해도 상관이 없으며 돈이 있어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는 랄로가 지닌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 처한 현실이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현실은 랄로를 부추긴다. 돈이 있어야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사랑을 획득할 수 있다는 부채질을 반복한다. 랄로가 이런 암흑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어린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에게 있다. 작품 속 경찰서장은 기름도둑들과 편을 먹고 살인을 눈감아 준다. 기름을 빼돌린 돈을 나누어 가지는 그들의 모습은 법과 공권력이 무너진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공권력의 부패를 등에 업은 이들은 살인과 폭력을 반복한다. 오직 돈을 얻기 위해 스스로의 인간됨을 버린다. 이는 석유를 무기로 만들어 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동일성을 지닌다. 석유는 국가경쟁력을 의미하게 되었고 석유 때문에 국가 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석유를 보유한 수출국은 수입국에 석유를 무기로 무역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기름도둑>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건 아나를 사이에 둔 랄로와 룰로의 대결인데, 이 장면이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파이프라인을 배경으로 나온다. 석유가 지닌 가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일종의 무기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두 소년은 석유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이 어둠에 점점 동화되어 간다. 그들은 다시는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어둠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에드가 니토 감독은 개인의 경험이나 체험 또는 관찰을 바탕으로 한 사건을 토대로 사회 전체를 바라본다. 극 중 멕시코 사회가 지닌 문제를 표현하는 소재는 석유다. 석유 때문에 순수함을 잃어버린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속성에 지나치게 타락해 버린 멕시코의 현재를 조명한다. 강렬한 폭발력과 진한 여운을 품은 <기름도둑>은 새로운 발견을 꿈꾸는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포부에 어울리는 개막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기름도둑 제23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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