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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영화화 소식에 들뜬 나... 실망하고 말았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다>, 장르와 원작의 힘을 지워버리다

19.06.30 12:22최종업데이트19.06.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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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인 <보기왕이 온다>의 영화화를 결정하였을 때 수많은 영화팬들은 기대감을 표하였다. CF 감독 출신으로 신선하고 세련된 영상과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 그는 'CF 감독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약하다'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만드는 작품마다 화제를 몰았다. 특히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건 물론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공포의 가능성을 보이며 장르가 공포인 영화를 만들었을 시 더욱 무섭고 숨떨리는 장면들을 연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리고 2019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온다>를 선보였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주제의식을 깊게 파고 드는 스토리, 여기에 세련된 편집이 공포의 맛을 살리면서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고백>과 <갈증>을 통해 스릴러 장르에서도 기이함과 미스터리로 공포의 가능성을 보였던 그는 공포를 장르로 영화를 만들었으나 그 가능성을 전혀 꽃피우지 못하였다.
 
영화는 원작의 취한 세 명의 서술자를 통한 이야기 구성방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1부는 히데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소녀가 사라진 기억을 갖고 있는 히데키는 아내 가나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딸을 돌보는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며 육아아빠로 인기를 끌던 히데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집에서 만났던 악령 '보기왕'이 다시 나타나 그와 가족을 위협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민속학 대학교수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다.
 

<온다>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친구의 도움으로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영매 마코토를 만난 히데키는 그들의 도움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2부는 히데키의 아내 가나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가나가 내면에 품었던 히데키의 이중성에 대한 염증과 증오를 보여주며 그 감정은 다시 보기왕을 부르는 열쇠가 된다. 3부는 노자키의 시점을 택한다.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임신중절을 강요한 과거와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는 마코토와의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면의 갈등과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와 함께 보기왕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런 구성을 차용했다는 건 원작이 지닌 드라마적인 측면에 더욱 힘을 넣겠다는 점을 증명한다. 세 명의 인물을 각 파트별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건 이들 각자의 캐릭터를 확립하고 관객이 감정을 이입시킬 만큼 분량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원작의 경우 공포 장르가 주는 미스터리와 스릴감을 전면에 배치하고 그 이후에 드라마를 통해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선보인다.
 
때문에 장르적인 측면에서는 재미를 주지만 캐릭터가 지닌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세 명의 서술자를 설정하였고 그들의 입을 통해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설명하기에 세련되지는 않지만 효율적으로 서사를 써 내려간다. 반면 영화에서는 드라마를 전반에 두고 공포를 삽입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원작과는 다르게 히데키와 가나의 결혼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를 통해 히데키가 지닌 이중성과 가나가 지닌 우울함과 패배감을 조명한다.
 

<온다>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문제는 이런 드라마적인 측면에 집중한 나머지 장르가 지닌 맛을 전혀 살려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원작에 드라마적인 살을 붙이면서 세 가지 실수를 하고 만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긴 시간을 차지한 히데키와 가나의 러브 스토리이다. 이는 히데키와 가나가 지닌 인물의 특성이 책의 경우 서술자의 입을 빌린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반면 영화는 장면과 대사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를 길게 설정함으로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강화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나친 코믹함과 곁가지가 많은 이야기, 또 원작과 달리 히데키의 이중성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원작에서 이 지점이 주었던 충격을 살려내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두 번째는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보기왕 캐릭터를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공포장르의 핵심 중 하나는 공포를 주는 존재가 호기심과 공포를 유발해야 된다는 점이다.
 
원작은 히데키와 친구, 그리고 노자키가 보기왕이 지닌 미스터리에 대해 깊이 파고들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반면 영화에서는 보기왕의 존재를 인간 내면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존재로 정의 내린다. 자신이 내면에 감춘 공포와 나약함을 유발하는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기왕의 모습은 그가 지닌 파괴력을 생각할 때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악령이 왜 모습을 바꿔가면서 사람을 공격해야 되는지, 왜 교활한 수법을 사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온다>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세 번째는 불명확한 주제의식과 지나친 규모 확장만을 담아낸 후반부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실수와 연관되어 있는데 보기왕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다 보니 보기왕과의 최후의 결전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갈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보는 관객도 이야기하는 영화도 어색할 만큼 아쉬운 전개를 선보인다. 여기에 정부에서 나서고 대규모 굿까지 벌이는 영화의 규모는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 더 공감이 가기에 효과적인 공포 장르를 생각할 때 무리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한 과잉된 자의식과 분위기에 안 맞는 음악의 남용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특유의 세련된 영상미와 독특한 표현방식, 신선한 편집점으로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스타일이 공포라는 장르에 맞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스릴감과 미스터리 강화가 아닌 생뚱맞은 장면들이나 지나치게 격화되는 장면들을 선보이며 공포와 드라마 사이의 밸런스를 조절하지 못한다.
 

<온다>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는 단순히 공포영화가 무섭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생뚱맞게 웃기려고 하고 생뚱맞게 분위기를 진지하게 유도하려고 한다. 장면과 장면이 맞물려 흐름을 유지해야 되는데 그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스타일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독특함을 보여주려고 애쓰지만 그 독특함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못한다.
 
<온다>는 이번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었다. 온라인 예매가 매진이 될 만큼 화제를 모았으며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낸 <온다>는 스릴러 장르에서 선보였던 번뜩이는 재능을 실상 공포 장르에서는 전혀 발휘하지 못한,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 어설픈 시도만 반복하며 감정적인 재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영화로 남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온다 제23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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