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아베' 촛불 광화문광장으로 진출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2차 촛불문화제가 7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596개 시민단체가 모인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를 의무를 위반해서 "추가적인 협정 위반"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3조의 절차에 따르는 것이 의무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2011년 8월 30일에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선고한 직후, 한국 정부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협의를 요청했을 때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무엇에 대한 협의이고 중재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협의든 중재든 주제가 명확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국제법 위반',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중재하자고만 한다. 막연하다. 이걸 가지고 협의를 하자고 하는 것이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해달라고 하자는 것은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요구이다.
'강제동원 문제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인가?'에 대해 따지자고 한다면 주제가 조금 더 구체화된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그렇게 주제를 잡을 수 없다.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징용 문제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인가?'라고 해도 주제가 조금 더 구체화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징용' 문제의 「청구권협정」 대상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이 아니므로, 이 또한 주제가 될 수 없다.
설혹 어떻게든 중재에 맡겨서 일정한 결론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군'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 등의 문제도 있다. 이 문제들도 모두 중재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국제사법재판소?
아베 정부가 내비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본 정부가 ICJ에 제소를 하려면 분쟁의 주제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중재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ICJ에 제소하려면 관할권 성립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재판진행에 동의하지 않으면 ICJ의 관할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ICJ 카드'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ICJ 제소가 대단한 카드인 양 떠들던 아베 정부는 '중재 카드'가 불발로 끝난 7월 19일 이후 'ICJ 카드'도 슬그머니 접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중재에 응하자라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무엇'에 대해 중재에 맡길 것이며 ICJ에 부탁할 것인가? 중재나 ICJ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이에 대한 대답부터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터이다.
「
청구권협정」
의 운명 재촉하는 아베
아베 정부의 주장이 대법원 판결의 그것과 맞물리지 못하는 이유, 아베 정부의 공격이 공허한 이유는 사안의 본질이 「청구권협정」의 틀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이 제기한 문제가 단순히 「청구권협정」의 기술적인 해석과 실시라는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본조약」 제2조에 직결되는, '일본에 의한 한반도 지배의 성격'이라는 한일관계의 근원적 대립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차적으로는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이지만, 동시에 그 해석을 통해 「청구권협정」이라는 틀 바깥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청구권협정」이라는 틀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대법원 판결을 탄핵할 수 없다. 아베 정부의 '영토의 분리에 따른 문제 해결'이라는 '틀 안'의 논리로는, 대법원 판결의 '불법강점에 따른 반인도적 불법행위 문제 미해결'이라는 '틀 밖'의 논리에 대항할 수 없다. 싸우려면 「청구권협정」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합법지배였으니 애당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맞서야 한다.
아베 정부도 내심으로는 그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제동원'의 심각한 피해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그에 대한 규탄이 차곡차곡 쌓여온 지금, '합법지배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주장은 너무 뻔뻔한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니 차마 입에 올리기가 어렵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언급한 「무라야마담화」 이래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과도 충돌한다. 그래서 그저 「청구권협정」 안에 눌러 앉아 농성을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국이 해결해라'라고 억지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구권협정」은 지금 파탄 직전이다. 나름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수명이 다해간다'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청구권협정」은 21세기의 한일 간 대립을 덮어 가리기에는 이미 너무 낡았다. 1965년에는 그럭저럭 문제를 덮어 가린 듯이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피해자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 '자료와 논리'를 거듭 쌓으며 따지고 들어간 결과, 그것이 매우 낡고 헤진 그물 조각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그런 「청구권협정」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 '운명의 순간'은 더 앞당겨질 뿐이다. 그래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며 덮으려 했던 본질적인 문제가 더욱 더 선명하게 부각될 뿐이다. 지금 아베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9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