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준비 안 된 듯... 실무협상, 빨라도 8월 말이나 9월 초"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613] 안정식 SBS 북한 전문기자

등록 2019.08.02 16:11수정 2019.08.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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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갑작스럽게 성사된 남북미 정상 간 만남으로 곧 북미 핵 협상이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왔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과 대화 후 2~3주 이내 북미 실무 협상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2일 현재까지도 북미는 실무 협상을 열지 않고 있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러시아는 우리 영공에 들어왔고, 일본은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한국을 둘러싼 외교전쟁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지난 7월 31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서 안정식 SBS 북한 전문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안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안정식 SBS 북한 전문기자 ⓒ 이영광

-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났어요.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내에 실무회담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현재 상황 어떻게 보세요?
"6월 30일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정상 회동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7월 31일) DMZ에서 북미 접촉이 있었고, 북한 측이 곧 실무협상에 나설 거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북한이 최근 한미 군사훈련에 반발하는 걸 보면, 북미 실무 협상은 빨라도 한미 군사훈련이 끝나는 8월 말이나 9월 초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 위원장이 먼저 실무협상하자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글쎄요. 그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만났을 때 누가 먼저 얘기를 꺼냈든 '다시 협상하자'라고 하면 상대편이 거기서 거부할 리는 없었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이 여전히 협상에 나설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또, 비핵화 협상의 본질적 측면으로 들어가 보면 북미 간 이견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듯합니다. 이것이 협상이 늦어지는 핵심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 미국이 먼저 어떤 상응 조치를 내놓을 것인지 밝히면 되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내놓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상응 조치를 밝히려는 거 아닌가요? 
"지금은 누가 먼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미국이 계속 얘기하는 것은 비핵화의 개념이 무엇인지, 즉 북한이 비핵화를 어디까지 할 생각인지 개념을 확실히 밝히라는 거거든요. 그 의사가 명확해져야 미국이 A 하면 북한이 B 하고, 북한이 C 하면 미국이 D 하는 식으로 협상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맞출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여전히 영변 이외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고 있어요."

-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8월에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미국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CNI) 한국 담당 국장은 복수의 한미 당국자들로부터 '판문점 회동' 당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한 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 주장을 부인한 건데요. 만약 당시 북미 정상이 8월 한미군사훈련을 안 한다고 얘기를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회동 직후 기자들 앞에 섰을 때 당연히 그 얘기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회동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이야기는 실무협상 2~3주 내에 재개하기로 했다는 것뿐이었거든요. 따라서, 당시 북미 정상 회동에서 8월 한미군사훈련을 안 하기로 한 건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 북한의 거짓말일까요. 아니면 통역의 문제나 해석의 차이일까요?
"당시 최고의 통역사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오역으로 논란이 생겼을 거 같지는 않고요. 지금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문제 삼고 나오는 건 실무협상을 미루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아직 실무협상 나설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 있고요. 또, 그동안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거부감을 보여왔기 때문에 적어도 8월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미국과 협상 안 하겠다는 방침일 수도 있어요.
최근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 이후에 북한이 계속 군 관련 행보를 보이잖아요. 김정은 위원장은 신형 잠수함을 시찰한다든지, 미사일을 쏘는 등 군 관련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협상을 지체시킬 수 있는 한미군사훈련이라는 수단을 끄집어낸 상태에서, 군사적으로 필요한 신형무기들을 테스트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 김 위원장이 올해까지 미국과 얘기하겠다고 했으니 북한에게 시간 없는 거 아닌가요?
"북한이 '다른 길로 가면 안 된다'고 절실하게 생각한다면 협상 시간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협상이 안 될 경우 다른 길로 가지'라는 쪽에 무게를 둔다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죠. 북한 입장에서 시간이 부족한 건 미국이라고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안 돼도 아쉬울 게 없다는 건가요? 하지만 미국과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유엔 제재는 풀리지 않을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제재 영향을 받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북한이 올해 당 전원 회의에서 자력갱생 노선 다시 강조했잖아요. 제재 때문에 이대로 못 먹고 못 살더라도 계속 버텨나가겠다는 노선을 확실히 정립한 거죠.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어요."

- 자력갱생이 현재로 가능할까요?
"자력갱생하면 경제발전은 안 되죠. 자력갱생하면 힘든 건 일반 주민인데 일반 주민들의 불만은 찍어 누르고 있잖아요. 북한 고위층들은 자력갱생하더라도 먹고사는 데 큰 지장 없습니다. 그러니 못 먹고 못사는 채로 버티겠다고 하면 이대로 갈 수는 있는 거죠."

- 하지만 북한 주민이라도 언젠가는 폭발할 거고, 김 위원장도 말해왔던 게 있으니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북한이 그동안 언제까지 어떤 것들을 이루겠다고 발표했지만 하지 못한 것 많습니다. 강성대국 건설도 흐지부지 지나간 거고요. 그래도 그냥 그렇게 가는 겁니다. 야당처럼 문제제기할 세력이 없잖아요. 물론 김 위원장도 경제발전 하고 싶겠죠. 그러나 그것의 전제는 자신의 정권이 안정된 상태여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때, 정권 안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주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북한 주민들이 폭발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가능성의 경우,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문가들의 연구를 보면, 민중들은 단순히 못 먹고 못 산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키진 않아요. 민중 봉기가 이뤄지려면 사회의 불만을 폭발하게 하는 정치적으로 의도된 작용이 있다든지, 과거 소련 해체로 동구 사회주의권이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은 외부의 충격이 있다든지, 혹은 반체제 세력을 이끌 수 있는 핵심 인사가 있다든지 하는 여러 조건이 가미돼야 합니다.

또,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을 잘 먹고 잘살게는 못하지만, 최소한 굶어 죽는 건 방지하기 위해서 중국, 러시아로부터 식량 원조를 받거나 무역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상당량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거든요. WFP 같은 국제기구에도 계속 식량 지원을 요청해서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는 겁니다."

연이은 미사일 발사, 남한에 대한 불만? "군사적 수요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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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뒤 박수치는 김정은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 군사연습과 남측의 신형군사장비 도입에 반발해 지난 25일 신형전술유도무기(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 2019.7.26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끝) ⓒ 연합뉴스

- 북한은 남한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거 같아요. 지난 25일 새벽과 오늘(7월 31일)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번에 군 관련 현지 지도를 하며 '남한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얘기했죠. 남한에 대한 불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 김 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건조 현장을 가고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계속 쏘는 것은 군사적 수요에 따른 측면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신형 무기를 개발했으니 시험하고 실전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최근 무력시위의 경우, 지난 2018년부터 협상 국면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 등 각종 무기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보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즉 협상의 진행과 관계 없이 북한은 북한 표현대로 하면 '자위적 무력 증강'의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북한이 이런 무력시위를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 명분으로 최근 꺼내든 것이 한미 군사훈련이죠. 남한에 대한 비난은 어쩌면 다소 부수적인 차원에서 나오는 것인데요. 어차피 지금 남북관계를 개선해 봤자 북한이 얻어갈 게 없기 때문에 남한을 압박하면서 제재와 관계 없이 남북경협에 적극 나서라는 요구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

-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기도 해요.
"물론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러나 제가 볼 때는 북한이 그동안 개발한 무기가 어느 정도 완성돼서, 이것을 군사적으로 실험하고 실전에 배치할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미군사훈련 등을 명분 삼아 자신들의 군사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 이 와중에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왔어요. 한미일 동맹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날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동해에서 합동 작전을 했습니다.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도 처음이고,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한 것도 처음일 겁니다.

동해라는 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잖아요. 지금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끼어들기 어려운 지역이었죠. 한미일의 전적인 작전구역이었던 지역인데, 거기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작전했다는 건 한미일 3국 연합체제에 균열 내보겠다는 시도로 봐야 할 거 같고요. 최근 한일이 갈등 관계에 있는 걸 노려서 중국과 러시아가 떠보는 차원에서 행동한 것 같아요."

- 독도는 일본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죠. 이 부분도 염두에 둔 걸까요?
"그 부분도 고려한 거겠죠. 이번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최종적인 공식 입장이 어떻게 나올지는 봐야겠지만, 군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수에 의해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계획적 영공 침범이라고 봐야 할 텐데, 침범 구간을 독도 상공으로 택한 건 한일 간 갈등이 첨예한 구간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기 위해 그랬을 가능성이 있죠."

- 미, 일, 중, 러 4대 열강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지금 여러 가지로 외교·안보상 어려운 국면이죠. 우리 입장에서는 주변국과 관계를 두루두루 좋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 안보의 가장 핵심은 한미동맹일 수밖에 없고요.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어쨌든 한미일 체제로 안보를 유지해 나가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한일 갈등이 첨예한데, 한일 관계도 빨리 관리 국면으로 가서 갈등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북한이 미사일 쏘니 한국당 일각에선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하에서 우리가 핵 개발하려면 북한처럼 갖가지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고 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모든 제재를 감수하며 핵 개발을 할 수 있을까요?"
#안정식 #북핵 #김정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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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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