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출세주의 교육으로 병든 교육 현실을 폭로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이오덕 선생은 입신 출세주의 교육으로 병든 교육을 거짓 교육, 살인 교육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여기에 교사와 부모도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 바로 아이들 살리는 교육은 입신 출세주의 교육을 부숴버리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사진 출처 : JTBC 스카이 캐슬 누리집
이오덕 선생은 이제껏 한국교육은 아이들을 병들게 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책임의 한 부분을 교사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데 아이들 삶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보다 아이들을 입신출세주의교육으로, 그리고 점수 따기 경쟁교육으로 내몰아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병든 교육의 주범은 행정 하는 사람이지만 교육자도 공범이라는 생각입니다. 제2 공범은 부모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참교육, 바로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은 이 뼈아픈 사실을 깊이 반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자신이 쓴 일기에 '이 나라 학교교육보다 더 나쁜 교육은 없다'고 일갈합니다. 도대체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비참한 훈련이자 '살인교육', '식인교육'이라며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이오덕 선생에게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은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입니다. 점수를 잘 따서 출세하려는 허위의식을 주입하는 거짓교육을 철저히 거부하고 부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교육운동은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내용으로 전진해야 하고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과거의 오랜 관행처럼 지시와 명령을 따르는 존재에서 벗어나 교사 스스로 자기무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그리하여 전교조 운동은 사회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하고 교육민주화 없이 사회민주화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특별히 교육운동에서 촌지거부를 집중적으로 거론했습니다. 당시 활동가들 사이에 촌지 문제에 대해 인간적인 것이자 한국사회 아름다운 관행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해 이오덕 선생은 단호하게 "교육운동의 출발은 촌지거부를 선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일기에 다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전교조 창립 당시 내건 '촌지거부운동'은 전국의 부모들에게 크나큰 호응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교육운동가로서 원칙에 충실했던 선생의 엄격함과 한국교육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면모에 일견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오덕 선생의 대쪽 같은 단호한 기질과 엄격한 문학은 이육사의 문학 정신과 상통합니다. 육사의 문학 정신은 독립! 민족 해방이라는 겨레의 자존을 지키고 글쓰기를 행동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오덕 선생 역시 선비의 꼿꼿함과 살아있는 자주적인 민족교육의 자존심, 그리고 이를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는 문학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이제까지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교육이었다고 성찰합니다. 아이들 자발성과 자율성을 억압한 채 두발단속, 복장검사 따위로 교육인 체 했습니다.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고 어른들 고정관념에 따라 지도하는 것을 교육활동인 양 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을 삶의 주체로 내세운 최초의 교육자입니다.
글쓰기, 말하기 그리기들 표현교육을 중시하여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 되게 가르쳤습니다. 이오덕 선생에게 표현교육은 생명해방교육이었습니다. 이오덕 선생 스스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결국 아이들 생명을 거짓교육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교육은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이자 민주주의로 가는 교육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이들 삶을 중심에 두지 않고 아이들을 이용해 실적을 쌓고 겉치레에 치중하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 반대했습니다. 아이들 삶이 살아 있는 교육, 바로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교육을 참교육이라 단언했습니다. 이러한 이오덕의 교육사상은 참교육 이념으로 정립되고 전교협(1987) - 전교조(1989)의 기본 정신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교사가 건강한 교육 철학을 갖지 못하면 아이들을 반교육적인 상황, 바로 비인간으로 몰아가는 일을 교육의 이름으로 저지르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과 관계 맺기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되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교육모순 사회모순에도 깊이 천착하여 교육의 주요모순과 근본 모순을 해체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할 때 교사의 가시밭길 험난함 속에서 교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42년 교직생활 동안 평생 아이들을 걱정했습니다. 아이들 글을 소중히 생각했고 두고두고 귀하게 여겨 책으로 엮어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80년대 '글쓰기교육연구회'를 근간으로 교육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평생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교육을 한 것 같지가 않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을 뿐"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퇴임할 때 권력의 미움으로 그 흔한 석류장, 목련장 훈장조차 받질 못했습니다. 다른 교육자들이 퇴임할 때 평생을 교육계에 헌신했다고 자화자찬할 때 이오덕 선생은 권력에 밀리고 쫓겨나다시피 반강제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이오덕 선생을 따르는 수천수만의 교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모두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과 삶이 상처 받지 않고 "그 순수함이 훼손되는 사태를 막으려는 교육자적 책임감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시대 누가 진정한 교육자인지 누가 페스탈로치의 삶을 따라갔는지 우리는 이오덕 선생의 삶을 공부하면서 알 수 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찾아간 유은혜 교육부총리(2019. 2. 20) <참교육>을 최초로 주장한 이오덕의 교육사상은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 교육>을 표방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교육정신으로 오늘날 살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오늘날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 바로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은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을 추구했던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 정신은 전교조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유서가 된 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6)에 너무나 크나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시 교육운동을 하던 이 땅의 교사들에게 H양의 편지는 1970년 전태일이 노동현실을 죽음으로 고발한 것에 버금갈 충격이자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교사인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따위의 숱한 물음들이 내면에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교육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H양의 편지에는 당대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어른들의 비정한 정신상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에게 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중략)...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뭐해? 나만 편하면 뭐해? 매일 경쟁!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장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도 없는 물건도 아니다. (이하 생략)"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순간 이 땅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점수를 몇 점을 받아오는지, 반에서 몇 등인지에 온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 때부터 아이들 불행은 시작된다고 이오덕 선생은 말합니다. 이오덕 선생은 교육이 아니라 '야만의 발작'이라고 탄식했습니다. 80년대 매년 아이들이 100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엔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이오덕은 힘주어 강조합니다.
이젠 '미친 교육', '거짓 교육', '병든 교육'을 멈추고 아이들 살리는 교육을 하자고 간절히 호소하지요. 이오덕의 유고시 가운데 야만의 시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갔던 아픈 마음을 드러낸 작품이 있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교육자로서 이오덕의 아픔을 느낄 수 있지만 제목이 없는 시입니다.
"시를 가르치면서/시를 믿고/시에 기대어 살아가도록/나는 가르쳤다/그러나 내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모두가 한 포기 풀같이 한 그루 나무같이/꽃같이/순하고 순한 짐승같이/자라나기를 빌었다/
그들과 헤어진 30년 뒤, 40년 뒤,/들려온 슬픈 소식들.../지금 내가 들어야 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내가 알게 된 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이른 봄 담 밑에 돋아나는 새파란 풀싹 같고/가을날 눈 부시게 고운/하늘빛으로 하늘 해 쳐다보던 달개비 꽃 같던/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시도 말도 죽어버린 이 쓸쓸한 땅에/
오늘도 얼어붙은 이 겨울/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덮인 빙판길을/쫓기는 짐승처럼 엄금엄금 기어가듯 한다/
이제는 우리말 우리 목숨 살펴야 하는/이 기막힌 일을 하자고 가는/나는 멀미가 나는구나/아, 땅이 흔들려 멀미가 난다."
이오덕 선생이 시작한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 바로, 참교육은 그렇게 절망 속에서 절망을 딛고 싹을 틔웠습니다. 이오덕 선생이 전 생애에 걸쳐 온 몸으로 보여준 치열함은 이 땅의 숱한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크나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교사들이 이오덕 선생을 교사의 길을 가르쳐준 '시대의 스승'이라 일컫습니다.
시대의 낡은 질서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아이들 삶을 보듬으며 사람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데 자신의 전 생애을 바친 이오덕 선생을 우리가 '한국의 페스탈로치'라고 자랑스럽게 이름 부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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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처음엔 교육문제로, 그 다음엔 근현대사 속 거짓 신화를 벗겨내고 왜곡된 인물 연구로, 그러다가 퇴직 후엔 다시 시민교육의 절실함 속에 시민교육을 국가수준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하여 성숙한 시민을 길러낼 정치교육, 노동인권교육, 환경생태교육, 정보문해력 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을 북서유럽처럼 공식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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