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집에서
최종규
돼지 (숲노래 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보들보들한 털에, 곧은 등줄기에, 폭신한 몸에, 똑부러지고 다부진 눈빛에, 씩씩하며 날렵한 몸짓인 돼지는, 해바라기랑 숲놀이랑 흙씻기랑 풀잎 먹기를 즐겨요. 구정물이나 찌꺼기를 즐기는 돼지가 아니라, 더없이 깔끔하면서 정갈한 돼지인데, 사람들이 잘못 길들여요.
다시 말해서 '고깃감'으로 태어난 돼지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이웃이에요. 저는 이런 돼지, 고깃감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이 있기에, 이를 동시로 그려 보았습니다. 마을책집 책먹는 돼지에 이 글자락을 드리려고요.

▲ 책먹는돼지..에 동시 한 자락하고 수수께끼 한 자락을 드렸습니다.
책먹는돼지
이야기책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에머 스탬프/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를 살펴봅니다. 줄거리가 살짝 엉성하고, 돼지를 놓고서 한켠으로 치우친 생각이 내내 드러나서 아쉽지만, 돼지가 '농장 주인 아저씨'가 어떤 속내인가를 뒤늦게 깨우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책집 보임칸에 곱게 놓은 <용기를 내! 할 수 있어>(다카바타케 준코 글·다카바타케 준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9)는 돼지 어린이가 동무들 곁에서 늘 쭈뼛질을 하던 모습이었지만, 어머니 사랑을 새삼스레 받고서 씩씩하게 바람을 가르는 길을 따사로이 보여줍니다. 참으로 좋군요. 어머니는 사랑으로 가르치고, 아이는 사랑을 받아 기운을 냅니다.

▲ 책시렁
최종규

▲ 책시렁
최종규

▲ 책먹는돼지에서 내놓는 커피를 맛보다. 돼지 이야기가 흐르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최종규
구석구석 꼼꼼한 손길로 책꽂이를 가다듬은 책쉼터인 책먹는 돼지라고 느낍니다. 허술히 놓은 책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이렇게 꾸리기까지 쏟은 사랑어린 손길을 물씬 느낍니다.
오늘은 책을 석 자락 장만하자고 생각하며 그림책 <자전거 도시>(앨리슨 파랠/엄혜숙 옮김, 딸기책방, 2019)까지 집습니다. 온갖 자전거가 두루 길을 누비는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온갖 자동차 아닌 온갖 자동차가 길을 가득 누빈다니, 얼마나 멋스러울까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 책집에서
최종규

▲ 책시렁
최종규
찻길 아닌 자전거길이 된다면, 또 자전거길보다는 '사람길'이 되어서, 아기도 아장아장 걸음질을 할 수 있고, 어린이는 길바닥에 돌멩이로 죽죽 금을 긋고서 놀이판을 꾸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빨리 달려야 하는 찻길이 아닌, 누구나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살림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만화책을 좋아하신다고 해요. 다달이 만화수다를 나눈다고 하시는군요. 만화수다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기에 책을 더욱 깊고 넓게 즐기며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일본만화가 아닌 그저 아름다운 만화를 짓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분들 만화가 제대로 읽히면 좋겠어요.
▲ 책집지기 손
최종규
▲ 책집에서
최종규
<불새>나 <블랙 잭>이나 <우주소년 아톰>도, <경계의 린네>나 <이누야샤>나 <루미코 걸작 단편집>도, <이치고다 씨 이야기>나 <은빛 숟가락>도, <우리 마을 이야기>나 <나츠코의 술>도, 착한 마음을 참하게 그리면서 사랑으로 곱게 펴는 숱한 이야기에 깃든 씨앗이 온누리에 퍼지면 좋겠습니다. 미움이나 시샘이 아닌, 꿈하고 사랑이 씨앗이 되면 좋겠어요.
책집지기님하고 신나게 수다꽃을 펴느라 많이 늦는 바람에 택시를 불러서 인천으로 씽 하고 달리기로 합니다. 다음에는 한결 느긋이 찾아오자고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에 가득한 돼지 책이여, 돼지 인형이여, 다음에 다시 만나자.
▲ 책집에서
최종규
▲ 책집에서 창밖을 보며
최종규
▲ 해가 기울면서 책집 안쪽이 새롭게 보인다
최종규
▲ 이곳을 드나들 적에는 "밀면 돼지"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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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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