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있었던 김복동장학금 전달식
정의기억연대
1. 길 위에서 30년, 결국에는 희망이더라
어느덧 내년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남북, 아시아, 세계의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이 연대하여 가해자 일본정부에게 범죄인정과 사죄 배상 등을 요구하며 거리에 선 지도 벌써 28년이 지났다. 1992년 1월 8일 시작한 수요시위는 지난 8월 14일 1400차 수요시위를 지나 또 한 번의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살며,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운동의 주체였던 생존자들은 240여 명의 신고자 중에서 20명,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분들이 뿌린 노력이 우리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되어 자라고 있다. 생존자들과 소수의 여성들이 시작했던 활동이 청소년 세대로 계승되어 "우리가 김학순이다" "우리가 김복동이다"고 외치며 길 위에서 싸우고 있고, 피해자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미래세대들의 투쟁으로 이어 가고 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확산되어 우간다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김복동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고, 코소보 내전의 성폭력 생존자가, 콩고 내전에서의 성폭력 생존자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28년 동안의 삶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인권·평화운동에 바쳤던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김복동이 그들의 엄마로, 영웅으로 이야기되며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미군'위안부' 생존자들 역시 '김복동' 언니의 용기에 힘입어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힘을 내고 있다. 결국 지난 30년은 희망이었다.
2. 성폭력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정대협 운동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가해자의 범죄인정과 사죄, 배상을 통해서 뿐 아니라 한국사회와 국제사회를 평화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즉 구조적 변화를 통해 해결을 만드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곧 우리사회에 희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대협 운동이 해방 후 50년이 지난 1990년대에 와서야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한국사회와 일본의 전범자들을 불처벌하고 면죄부를 주었던 전후 국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정권 때 경제산업의 일환으로 정책화되어 시행되고 있었던 '기생관광'에 대한 반대운동(한국교회여성연합회 중심으로 진행)이 1988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만나게 되면서 정대협 운동은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운동의 출발이 결국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여성폭력을 조장하고,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 문화에 대한 저항이고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었음을 의미한다.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인권침해에 저항하며 싸웠던 여성들의 투쟁이 시간과 시간을 연결시켜 망각되고 억압되고 있었던 과거의 일본군성노예제의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한국사회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연대를 통해 생존자와 여성운동이 연대하고 때로는 '남북연대'로 또 때로는 '아시아연대'로 또 때로는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로 일본정부를 향해 범죄인정과 공식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의 피해자들은 정대협과 함께 UN과 ILO 등 국제인권기구 회의에서,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지원금이 아니라, 법적인 배상이라 외치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도 법적인 책임으로 배상받을 권리가 있음을 목소리로, 활동으로 확인시켰다.
그러한 노력은 세계 수많은 결의, 권고들을 채택하게 만들었으며, 세계가 일본정부를 향해 범죄인정과 공식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게 하였다. 피해자들은 연대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주체였다.
그렇게 한국여성들의 운동은 김학순 할머니의 #me_too를 만들어내는 #with_you가 되었고, 김학순 할머니의 #me_too는 수백, 수천의 미투를 이끌어 내는 위드유가 되었다. 또한 2012년 3월 8일, 정대협과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해 선언한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시작한 나비기금' 활동을 통해 결국 우리의 운동은 세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With_you가 되고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이면서 인권운동가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나비기금 활동으로 시작한 나비운동은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콩고로, 우간다로, 나이지리아와 이라크, 코소보로, 베트남으로 확산되어 날갯짓하며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아내기 위한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시간의 벽을 허물고, 나라의 벽을 허물고, 목소리의 연대를, 인권운동의 연대를 펼치며 희망을 일궈내는 힘을 가졌다.
김복동 할머니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김복동평화상'은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며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있고, 길원옥 할머니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길원옥 여성평화상'은 국내 여성인권 평화 활동가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송신도 할머니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송신도희망씨앗기금'은 일본의 청년대학생들의 인권 평화 활동을 지원, 양성하고 있다.
나아가 내년, 정대협 30주년을 맞이하며 정의기억연대는 우간다에 김복동센터를 건립하고, 그 안에 김복동학교 등을 세울 계획이다. 우간다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 그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김복동의 역사를 통해 희망을 갖게 하고, 제2, 제3의 김복동으로 자라는 것, 김복동이 겪은 역사와 우간다 내전에서 여성들이 겪은 역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세계의 전시 성폭력 추방에 기여하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선도해 나가려 한다.
4. 희망을 잡고 살자
물론 가해의 벽은 여전히 두껍고 높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세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책임인정과 사죄, 배상 등을 통해 이루어질 정의실현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무력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아베정부는 막대한 금권력과 외교력을 동원하여 과거 전쟁범죄 역사의 부정을 통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한 군국주의 시스템을 구축, 강화시켜 가고 있다.
그러나 김복동은 지난 1월 28일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직전 "누가 뭐래도 우리가 이겼어. 아베가 졌어"라고 말하며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하셨다. 정의와 민주사회로 진보, 변화하지 않고 거꾸로 가고 있는 일본정부가 진 것이고, 지난 30년 동안 평화와 인권의 가치에 가까이 다가온 우리사회의 변화, 우리가 이긴 것이라는 것, 그 참된 이치를 알고 있었기에 김복동 할머니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하며 더 큰 희망을 남기고 떠났다. 결국 희망이었다. 희망을 잡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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