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완수하지 못한 친일청산은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걸림돌이 되어왔다. 196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 장성이었던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박정희는 취약한 정권의 정당성을 강력한 국가통제력으로 덮으려 했다.
이승만이 경찰 세력을 이용했다면 박정희는 경찰 보다는 검찰을 이용하려 했다. 1963년 개헌을 통해 영장청구권을 검찰에게 독점시켜버렸다. 이를 기점으로 검찰의 힘이 경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위하며 박정희의 공안통치를 수행해 나갔다. 군과 검찰 그리고 경찰을 장악한 박정희에게 이제 남은 것은 법원이 유일했다. 검찰은 법원을 공격했다. 1971년 7월 28일 서울지검 공안부가 서울형사지방법원의 이범렬 부장판사, 배석 최공웅 판사, 이남영 입회 서기관 등 3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반공법 위반 항소심 사건에서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시국사건과 공안사건 관련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라는 의혹이 일었다. 법원에서는 구속영장을 두 번에 걸쳐 기각하고 담당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곧이어 현직 판사들이 사법권의 독립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을 포함해 전국 지방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제1차 사법파동이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에서 검찰은 법원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였다.
이렇게 권력에 충성한 검찰은 나날이 비대해져갔다. 법무부 요직을 장악한 것을 비롯해 정부 각처에 검사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장악하고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한 검찰의 힘은 무소불위에 가까워져 갔다. 어느덧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권력을 틀어쥔 대통령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권위주의 정부의 비민주적 통치수단은 하나 둘 청산되어갔다. 대통령은 권한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권위주의 정부시절 권력의 기대에 몸짓을 불려나갔던 검찰 역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권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검찰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새 검찰은 대통령도 통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의 시기를 걸어야 했던 것과 같이 만약 지금 검찰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법무부장관이라도 아니 대통령이라도 위법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검찰이 수사해야 할 대상이 오직 조국 법무부장관 하나뿐인 것처럼 엄청난 인적자원, 특히 특수부 대부분을 검찰 개혁을 외치는 현직 법무부장관 수사에 투입하고 있는 검찰의 현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반민특위의 와해로 친일청산의 기회를 잃은 대한민국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 만약 지금 검찰개혁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 후유증 역시 70년 이상 지속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지금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조국에 대한 지지가 아닌 적폐청산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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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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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기회 놓친다면, 70년 후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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