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 아이, 어린이집서 '배고픔 참는' 경우 생깁니다

일 때문에 어린이집 하원 늦어져도... 아이의 영양공백 메우는 '제도'가 없다

등록 2019.10.06 13:22수정 2019.10.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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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 기사에 언급된 사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이다. ⓒ 이민선


아이를 어린이집 만 3세반에 보내고 있는 저희 부부는 최근 '멘붕'에 빠졌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100인 이상 원아가 있는 법인·단체형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냅니다.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오후 4시에 하원하고 있는데, 장모님 사정으로 오후 6시 이후까지 어린이집에 맡겨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아이를 늦은 시각까지 맡길 경우 저희 어린이집은 ①밤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시간연장형'(오후 7시 반~오후 9시 반)이나 ②오후 7시 반까지 운영하는 종일반을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는 종일반(②)를 선택할 경우 저녁을 제공받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오전 9시 등원~오후 4시 하원 기준으로 어린이집에서는 오전·오후 간식, 점심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오후 7시 반까지 종일반에 남을 경우는 오후 3시께 간식을 먹고 하원할 때까지는 어떤 음식도 제공받지 못합니다. 어린이집에 문의한 결과 시간연장형(①)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엔 저녁은 물론 간식도 제공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간식을 미리 준비해 먹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외부음식 반입금지라는 어린이집 규정상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엄마 아빠 올 때까지 배고픔 참는 아이들

결국 종일반(②)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오후 3시께 간식을 먹은 뒤에 배고픈 상태로 엄마, 아빠를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시간연장형 아이들과 종일반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놀다가 시간연장형 아이들만 저녁을 먹으러 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어린이집에 물어보니, 종일반 아이들에게도 저녁을 제공하면 조리원·식사지도 선생님 인건비 등 예산이 증가하고 식자재 주문·관리도 어려워진다더군요. 설령 학부모에게 식비를 받는다고 가정해도 운영상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석식 제공은 사실상 어렵다고 합니다.


늦게 하원하는 아이들의 석식 제공 문제는 신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불거지는,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나마 저희 어린이집은 상급 법인이 어린이집 운영 적자를 보존해줘서 민간 어린이집처럼 규모가 작은 곳보다 사정이 좀 낫다고 합니다.

종일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 반 사이에 남는 아이들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입니다. 만약 원에서 저녁 시간대에 급식·간식을 운영하지 않으면 '영양 공백'이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관련 업무 담당자는 "학부모가 아동의 석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막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저녁식사는 어린이집 보육서비스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거죠.

보건복지부 '보육사업 지침'엔 저녁식사 개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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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 반 사이에 남는 아이들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인데, 이 아이들의 상당수는 보통 오후 3시께 나오는 오후 간식 이후엔 뭔가 먹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 Flickr


저는 이 문제로 어린이집 관계자와 상담을 하다가 '그럼 뭐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재차 토로하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도적으로 보면...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하는 <보육사업안내>에 석식 제공에 대한 내용을 넣는 거죠. 그러면 정부, 지자체, 어린이집이 대책을 세우지 않겠어요?"

<보육사업안내>는 매년 보건복지부가 발행하는 일종의 지침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유아보육법,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해 '어린이집 운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죠.

'어린이집은 보육아동의 건강과 영양을 고려해 사정에 따라 혹은 신청자에 한해 저녁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같은 서술은 <보육사업안내>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석식을 운영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보육사업안내>를 보면, '아침·저녁식사를 위해 필요한 경비를 따로 부모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석식 운영이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규모나 여건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입니다. 온라인 '맘카페'에 올라오는 사례를 보면, 추가 운영비를 받고 저녁이나 간식을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석식을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 집 사례처럼 오후 6시 이후에 하원하는 아이는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어린이집 전체 영유아 141만 3532명 중 9만 3293명(6.6%)에 이른다고 합니다(육아정책연구소,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 정부와 어린이집이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이상, 이 아이들 중에서 상당수는 오후 간식 이후 최대 3시간가량 공복인 상태로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신청자에 한해 저녁 먹을 수 있게 규정하고 재정지원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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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5월 2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243개 광역, 기초자치단체 어린이집 급간식비(오전간식+점심+오후간식) 지원금을 전수 조사해 발표했다. 지자체별 지원금 액수가 최대 1190원에서 0원으로 천차만별인 가운데, 지원금이 전혀 없는 지자체도 75곳으로 전체 1/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김시연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현행 제도는 아이들에게 배고픔을 참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며 "보건복지부가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이나 <보육사업안내> 등에 '신청자에 한해서 원아에게 저녁을 제공해야 한다' 같은 규정을 넣고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당장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린이집이라도 운영의 묘를 발휘해 남는 아이들의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2020년 3월부터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이 개정된다고 합니다. 개정의 핵심은 현행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되던 '종일반'을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기본교육'으로, 오후 4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연장보육'으로 나눈다는 겁니다.

정부는 신설되는 '연장보육'에 교사 인건비, 연장보육료 등을 지원한다고 하네요. 여기서 발생하는 연장보육료 수입(오후 5시 이후 시간당 단가 정해 지원, 12개월 미만은 시간당 3000원, 영아반 2000원, 유아반은 1000원)을 어린이집이 활용해 최소 간식이라도 제공하는 방법 역시 고려될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8일 "어린이집 온종일 활기차게"라는 제목의 시행규칙 개정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양 공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이를 맡긴 부모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겠죠.

맞벌이 가정의 어린이집 등원 풍경은 비슷합니다. 아침에 부랴부랴 등원시키고 출근한 뒤, 오후 6시 이후 퇴근해 부리나케 달려와 아이를 찾지요. 친구들이 떠난 어린이집에서 배고픈 상태로 보호자를 기다릴 아이의 허기를 채워줄 방법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보건복지부에 보낸 제언을 주목할 만합니다.

"향후 어린이집은 취업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관 보육서비스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과 지원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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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부터 개정되는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을 홍보하는 보건복지부 카드뉴스. ⓒ 보건복지부

#어린이집 #저녁식사 #급간식비 #보건복지부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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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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