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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서관, 북한에 있습니다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인민대학습당 ②

등록 2019.11.08 11:14수정 2019.11.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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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대학습당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북한 국립중앙도서관은 1973년 '중앙도서관'을 거쳐 1982년 '인민대학습당'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민대학습당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1982년 4월 15일 개관한 인민대학습당은 평양 남산재 언덕, 즉 김일성광장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이라 부르며 최대 명절로 손꼽는다. 인민대학습당 앞에는 인민군을 사열하는 '주석단'이 있고, 주석단 아래에는 남한의 광화문 도로원표에 해당하는 '나라길 시작점'이 세워져 있다. 개성, 원산, 함흥, 신의주까지 거리를 인민대학습당 앞 '나라길 시작점'으로부터 계산한다. 이곳이 평양의 중심축임을 알 수 있다. 

1980년 9월부터 공사를 시작, 1년 7개월 만에 완공한 인민대학습당은 1973년부터 건립 논의를 시작했다. 인민대학습당은 1979년 전국적인 현상 모집을 통해 지금의 외관과 계획안을 확정했다.  

인민대학습당 입지의 특성
 

인민대학습당 김일성광장에서 바라본 인민대학습당 모습이다. 도서관이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로 활용되는 것은 남과 북 모두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인민대학습당도 책만 펼쳐 놓고 데이트하는 커플이 있다고 한다. ⓒ 위키백과

 
인민대학습당은 행정구역상 평양직할시 중구역 남문동에 있다. 서평양에 속하는 '중구역'은 평양의 중심부다. 대동문, 보통문, 연광정 같은 문화유적, 김정은 위원장 집무실이 있어 '1호 청사'라 불리는 조선로동당 청사, 만수대의사당, 천리마동상 같은 주요 시설과 조형물, 로동신문사 같은 언론사가 중구역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인민문화궁전, 조선혁명박물관, 평양대극장, 평양체육관, 평양학생소년궁전 같은 문화체육시설, 김책공업종학대학, 평양의학대학 같은 교육시설, 평양고려호텔 같은 숙박시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과 평양 4대 음식(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 녹두지짐이)으로 유명한 청류관 같은 대형 음식점이 모두 중구역에 모여 있다. 

서평양 중구역에 1953년 만든 김일성광장은 각종 군사 행진이나 군중 행사 때 수십만 명이 모이는 평양의 중심축이다. 7만 5천 m2 면적에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광장은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광장이다. 김일성광장 아래에는 1986년부터 2년 정도 공사를 해서 8천여 평 규모의 지하상가를 만들었다. 


김일성광장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170미터 높이 주체사상탑과 마주하고 있는데, 김일성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건물이 인민대학습당이다. 인민대학습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부 종합청사 1호와 2호가 있고, 1, 2호 청사와 나란히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과 측면에 8각 열주를 세운 두 박물관은 연면적이 9,690 m2로 같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세종대로 한복판에 국립중앙도서관을 세우고, 왼편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오른편에 국립미술관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다. 김일성광장 중심축에 자리한 인민대학습당의 입지는 도서관에 대한 북한 정권의 관심이 그만큼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남한의 국립중앙도서관은 소공동과 남산을 거쳐 한강 남쪽 반포대로로 옮겼다.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 자리를 잡았다.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지는 문화 예술에 대한 역대 정권의 '무관심'을 드러내는데, 입지만 놓고 보면 도시의 중심에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을 집중 배치한 북한과 대조를 이룬다. 

북한이 자랑하는 인민대학습당 
 

인민대학습당의 야경 야간 조명으로 불을 밝힌 인민대학습당의 모습. 인민대학습당은 북한이 자랑하는 도서관이자 대표적인 관광 코스의 하나다. 인민대학습당의 영문명은 Grand People’s Study House이다. ⓒ 위키백과

 
인민대학습당은 연면적 10만 m2, 건축면적 2만 3천 m2에, 10개 동으로 구성된 10층 규모 건축물이다. 건물 길이는 190.4m, 너비는 150.8m, 높이는 63.56m다.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의 연면적이 3만 4천772 m2니까, 연면적으로 비교하면 인민대학습당이 3배 크다. 평양의 중심축에 세운 건축물이기 때문에 건물의 쓰임보다 김일성광장 및 주변 건물과 조화, 상징성을 고려해 규모를 결정한 건물이다. 

75만 장의 푸른 기와를 얹은 '청와'(靑瓦)도서관인데, 기와 색깔은 김일성이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건물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색깔이 짙어지며, 푸른 기와는 파란 하늘과 조화를 고려했다. 건물의 기본 설계는 공훈설계사 함의연이, 실시설계는 김병옥이 담당했다. 

함의연은 평양 건설건재대학 건설과학연구소 교수로 평양체육관(1973), 만경대소년학생궁전(1988)과 동평양대극장(1989), 청년중앙회관(1989)을 설계했다. 1988년 인민과학자에 이어 1989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은 '건축가'라는 말보다 '설계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함의연은 북한을 대표하는 '설계사'다. 김병옥은 평양도시설계사업소 소속으로 인민문화궁전(1974) 실시설계를 맡았던 사람이다. 

인민대학습당은 학이 날개를 펼치고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민족의 슬기로운 기상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인민대학습당은 정면은 좌우 대칭이지만 측면은 좌우 대칭이 아니다. 1~2층 하부에 열주를 두르고, 3층 위 아래로 수평 띠 형태의 캔틸레버를 둘렀다. 건물 상부에는 높이가 다른 팔작지붕을 겹쳐 올려 조화롭게 보이도록 했다. 규모에 비해 육중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면과 측면, 후면에 열주를 두르고 입면을 좌우 대칭으로 구성한 서울 국립중앙도서관과 외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민대학습당 건립에는 약 10억 달러가 소요된 걸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해방 이후 소련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신고전주의 건축물을 많이 짓다가, 한국전쟁 이후인 1954년 3월 26일 김일성이 전국 건축가 및 건설기술자대회에서 '민족적 건축예술론'을 제기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이런 변화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주체건축론'으로 발전하는데, 주체건축론이 부상하면서 동유럽풍의 건축 양식을 배격하고 건축 분야의 동구권 유학 중단과 함께 유학파를 숙청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건축을 거쳐 민족적 건축을 표방하는 북한 건축은 어떤 특성을 지닐까? 전상인 교수에 따르면 북한 건축은 시각적 균형을 중시하고, 상징성이 드러나는 기념비적 건축을 지향하며, 최단기간에 최상의 건축물을 완공하는 속도전을 강조한다.

인민대학습당은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외관만 보면 인민대학습당은 평양대극장(1960), 인민문화궁전(1974)과 비슷한데, 이들 건물이 주체건축론에 입각해 '민족주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 재료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건물을 짓되, 조선식 기와지붕을 얹고, 내부 공간은 다양화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도서관에 대해 상세한 책을 쓴 명지대 송승섭 교수에 따르면, 인민대학습당은 3천만 권의 장서를 소장할 수 있으며, 하루에 1만 2천 명이 이용할 수 있다. 5천 석 규모의 열람석과 8백 석 규모의 강의실 및 시청각 강의실을 갖췄다. 이용자를 위해 200명의 강사와 800명의 사서, 200명의 번역 집단이 근무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개방하며, 일요일에도 격주로 문을 연다.

만 17세 이상의 인민은 누구나 출입증을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 매층마다 건물 중앙에 서고를 두고 600개에 이르는 열람실과 강의실, 학습실을 서고 주변에 배치했다. 인민대학습당 열람실 옆에는 방마다 '문답실'을 두어 이용자가 질문하면 연구원이나 교수가 즉석에서 설명해준다. 대출대에서 책을 신청하면 서고에 설치된 책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책이 대출대로 이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인민대학습당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다. 대극장 네거리와 평양학생소년궁전을 연결하는 길은 '대학습당거리'라고 명명했다. 남한도 부산에 도서관 이름을 딴 '금정도서관로'가 있는데, 뉴욕공공도서관 앞의 'library way'를 연상시킨다. 

김일성 70세 생일에 맞춰 문을 연 인민대학습당 중앙홀에는 김일성의 화강암 석상이 세워져 있다. 북한의 주요 건축물 안에는 김일성동상이 있는데, 인민대학습당 역시 마찬가지다. 인민대학습당은 1994년 김일성 사망하자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광장과 함께 김일성의 관을 안치하는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일성의 관은 생전 그가 집무실로 쓰던 '금수산의사당'에 안치됐다.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한 후 의사당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2011년 사망한 김정은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 아버지와 함께 안치됐다.

북한은 인민대학습당을 5원짜리 지폐에 인쇄한 바 있다. 화폐에 인쇄되는 도안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도서관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인민대학습당은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로 북한이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2001년 중국의 장쩌민 국가 주석에 이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곳을 방문했고, 2013년에는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이 방문했다. 인민대학습당 제일 위층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고, 이곳에서 김일성광장과 대동강, 주체사상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인민대학습당은 도서관 기능뿐 아니라 교육 학습장 기능도 함께 갖추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국립중앙도서관과 방송통신대학교, 교육방송 기능까지 아우르는 공간이 바로 인민대학습당이다. 북한 당국은 이곳에 들르는 관광객에게 인민대학습당을 이렇게 소개한다. 

"온 사회 인텔리화의 중심기지, 근로자들의 통신종합대학, 전인민 학습의 대전당."

남북한 도서관의 비교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내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은 개교 이후 출범했고 장서량과 시설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김일성종합대학은 평양시 대성구역 용남동에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려명거리’는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곳이다. 평양을 방문한 워싱턴포스트 애나 핏필드 기자가 려명거리를 ‘평양의 맨해튼’이라는 뜻으로 ‘평해튼’(Pyonghattan)이라고 칭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 Comrade Anatolii

 
내침 김에 남북한 도서관을 비교해보자. 북한 도서관은 조선로동당 지휘 아래 내각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다. 내각에서 도서관을 담당하는 부서는 도서관지도국이다. 남한 도서관의 행정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일원화'되어 있다. 남한은 도서관을 문화시설과 교육시설로 바라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북한은 교육시설의 관점으로 도서관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의 공공도서관에 해당하는 것이 북한의 '군중도서관'이다. 군중도서관은 성인 대상의 군중도서관과 학생도서관으로 나뉜다. 두 도서관이 같은 건물에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학생소년궁전'은 방과 후 학교 시설인데, 여기에 도서관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평양에 있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1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도서관과 전문도서관은 '과학도서관'으로 분류된다. 대학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북한 최고 예술대학인 김원균평양음악대학의 경우 도서관과 음악도서관 외에 '교재도서관'이 별도로 있다. 교재만 비치해서 대출하는 도서관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남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대표 도서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민학습당'이 있다. 

남한에 도서관 단체로 '한국도서관협회'가 있는 것처럼 북한도 '조선도서관협회'가 있다. 남한의 한국도서관협회가 도서관의 '이익단체' 성격이라면 북한의 조선도서관협회는 '학술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남한은 출판된 책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는데, 북한은 납본을 인민대학습당이 맡지 않고 '국가서적관'이 따로 맡는다. 

1948년 8월 북조선인민위원회 결정으로 '국가서고'로 출범한 '국가서적관'은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 잡지, 책 같은 모든 출판물을 수집해서 영구 보존하는 '보존 도서관'이다. 남한에서 도서관법 제정 이후인 1965년부터 '납본 제도'가 시행되었음을 생각할 때 북한은 남한보다 출판물을 17년 빨리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해왔음을 알 수 있다. 

도서관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도서관에 대한 법령을 1998년 마련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도서관법). 1963년 제정된 남한의 도서관법도 빠르게 법제화되었다고 할 수 없는데, 북한에 비하면 35년이 빠른 셈이다. 

남한은 사서 자격을 1급 정사서, 2급 정사서, 준사서로 구분하고, 4년제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면 2급 정사서 자격을, 2년제 문헌정보학과나 사서교육원을 졸업하면 준사서 자격을 부여한다. 북한은 매년 '사서 검정시험'을 실시해서 1급부터 6급까지 사서 자격을 구분한다. 북한의 3급 사서 이상은 2개 국어 이상을 습득해야 하며, 1급 사서는 3개 국어를 습득해서 박사와 교수급 전문가에게 참고봉사할 실력을 갖춰야 한다. 

북한의 사서 자격이 더 세분화되어 있고 그 자격이 더 엄격함을 알 수 있다. 남한은 도서관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학문 명칭을 '도서관학'이라고 하다가 '문헌정보학'으로 바꿔 부르고 있고, 북한은 '도서관학'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남한의 최고 학부인 서울대학교에는 도서관학과가 없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에는 도서관학과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보다 더 많은 장서량을 자랑하는 인민대학습당
 

북한 화폐 5원 화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과 상징을 인쇄하기 마련이다. 화폐에 ‘도서관’을 인쇄하는 건 흔치 않은데, 북한은 5원 화폐에 ‘인민대학습당’을 인쇄했다. 북한이 인민대학습당을 ‘국가의 상징’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Wikimedia Commons

 
분류체계로 남한은 한국십진분류표(KDC)를 사용하는데, 북한은 십진분류표 형식을 활용하되 성인 공공도서관(도서 및 서지 분류표), 학생도서관(학생도서관 분류표), 대학도서관(도서 분류표), 전문도서관용(중앙과학기술통보사 분류표) 분류표를 각각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맑스레닌주의와 김일성 저작을 별도 항목으로 분류하는 것이 이채롭다. 

남한 도서관은 주로 '개가제'인데, 북한은 '폐가제'로 운영하는 도서관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해외 사정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에 따라 도서관 장서를 공개도서, 준공개도서, 비공개도서 3가지로 나눴다. 준공개도서는 도서관의 정해진 공간에서만 볼 수 있고, 비공개도서는 당위원회 비서의 승인을 얻어야 볼 수 있다. 남한은 '인구수'를 기준으로 도서관을 설계하는데 북한은 '장서수'를 기준으로 도서관을 설계한다. 

국가도서관의 장서를 비교하면, 남한의 국립중앙도서관이 1995년에 달성한 257만 권 장서를 북한 중앙도서관은 1971년 달성했다. 인민대학습당이 1985년 1천5백만 권, 1998년 2천7백만 권 장서를 갖췄는데, 국립중앙도서관은 2018년 현재 1천1백6십만 권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급 고서 보유도 북한 인민대학습당이 13건, 남한 국립중앙도서관이 6건으로 인민대학습당이 2배 정도 많다. 인민대학습당 소장 자료는 20일 정도 '대출'이 가능한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자료는 대출할 수 없고 '열람'만 가능하다.

장서량이나 규모 면에서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은 눈길을 끌지만 이들 도서관과 다른 도서관의 격차는 큰 것으로 보인다. 평양의 대학생들도 자신이 다니는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고 인민대학습당이나 중앙기관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인민대학습당과 각종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서전람회를 자주 연다. 남한도 도서관 수가 늘면서 도서관 중심으로 책잔치 같은 행사가 늘고 있다. 

내외통신 기사에 따르면 1992년 현재 북한은 1만 5천여 개의 각급 도서관과 도서실을 갖추고 있다. 이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북한 당국이 도서관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인민경제발전 계획에 도서관 건설 사업을 포함하고 있고,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교 및 평양 과학기술전당 전자도서관 개관 때 <로동신문> 1면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은 '강성대국'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자도서관' 구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IT와 과학기술 강국을 지향하면서 2014년부터는 '미래원'이라는 전자도서관을 각 시군에 설치하고 있다. 전자도서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술 인프라뿐 아니라 콘텐츠 저작권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다. 출판물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고 당의 정책 결정이 신속히 추진되는 북한 체제 특성상 저작권 문제 해결이 쉬울 수 있어서 전자도서관 구축 속도는 빠를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김일성종합대학과 건축종합대학 같은 중앙대학에는 '전자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북한의 카이스트로 알려진 김책공업종합대학은 북한 최대 규모의 전자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실제 올해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북한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희도 모든 책을 다 구해서 읽습네다. 전자책도 봅네다."

사회주의 국가의 도서관 
 

중국국가도서관 베이징에 있는 중국국가도서관(National Library of China) 신관 중앙홀 모습이다. 1909년 9월 9일 ‘경사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중국국가도서관은 1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 최대 도서관인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을 LC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국가도서관도 약칭으로 NLC라고 불린다. ⓒ Wikimedia Commons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상당한 수준의 국가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레닌도서관'(V. I. Lenin State Library of the USSR)이라고 불린 '러시아국가도서관'(Russian State Library)이 있고, 중국은 베이징에 '중국국가도서관'(National Library of China)이 있다. 북한은 앞서 설명한 인민대학습당을 평양에 보유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도 도서관과 인연을 자랑한다. 맑스는 대영제국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썼고,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도서관 법령을 마련해서 러시아 도서관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중국 공산화를 이끈 마오쩌뚱(毛澤東)은 베이징대학 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북한의 김일성 역시 통치 과정에서 도서관 설립과 운영에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가 '도서관'에 깊은 관심을 갖는 건 왜일까. 새로운 사상인 사회주의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책'에 담긴 지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건 아닐까. 또한 '평등'을 중요 가치로 추구하는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교육과 문화시설에서 일정 수준의 도서관 인프라를 확보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고,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학교와 연계한 핵심 시설로 도서관이 함께 발달하지 않나 싶다.  

북한에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 특히 소련은 큰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 문화 영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 막심츄크를 비롯한 소련인 교육고문과 소련 국적 한인들은 북한에 입국해서 교육과 출판, 대학에서 중요한 요직을 담당했다. 1948년 북한은 소련 고등교육부와 협정을 맺고 현금과 실험 기자재, 도서, 교수와 통역, 교통수단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받았다. 

특히 책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련뿐 아니라 여러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상당량을 기증받았다. 1957년 시점에 평양 국립중앙도서관은 레닌 명칭 국립도서관을 비롯한 5개 도서관으로부터 7만 권이 넘는 도서를 교환 형태로 제공받았다. 소련의 원조와 자문은 초기 북한의 출판과 도서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부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소련의 영향이 줄어드는 계기는 스탈린 사망 후 1956년 등장한 흐루시초프 체제가 스탈린 일인 독재를 비판하면서부터다. 

소련에서 스탈린 비판이 일어나고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통해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 숭배가 강화되자, 북한은 김일성 숭배 체제를 강화했다. 1967년 5월 25일 김일성 교시 이후부터는 인민에게 김일성 배지를 달도록 하고, 소련의 영향을 탈피하기 위해 소련에서 입수한 각종 책자를 불사르고 폐기하는 과정을 거쳤다. 북한 도서관 서가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졌던 소련 도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김일성 저작과 주체사상, 우상화에 대한 책이 메우기 시작했다. 

북한 도서관의 성장 과정에서 초기에는 소련이, 1960년대 이후에는 김일성 우상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해방 시점까지 남한과 다르지 않던 북한 도서관이 소련의 영향과 김일성 우상화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적하는 건 우리 도서관계가 관심 가질 주제 아닐까. 

'장마당' 시대 북한의 책문화
 

북한이 출시한 태블릿 PC 2014년 9월 평양 국제무역전람회에 출시된 북한의 태블릿 PC. ‘노을’(NOUL) 브랜드로 출시된 태블릿으로 흡사 아이패드 미니처럼 보인다. 각종 사전과 전자책 외에 게임 앱이 눈에 띈다. ⓒ Uri Tours by flickr

 
북한의 독서 문화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북한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한 경화는 개성에서 학교 다닐 때 겪은 '1년에 1만 페이지 책 읽기 운동'을 책으로 소개했다. 

"전국적으로 학교에서 누가 더 많은 페이지를 읽었는지에 따라 교실 뒤쪽에 경쟁 도표를 그려 놓고, 매일매일 도표를 그려가며 총화를 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보았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책 제목과 느낀 점을 꼭 쓰도록 하는 전략까지 세워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1만 페이지면 300페이지 기준으로 1년에 34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김일성은 1975년 인민학교 교원에 대한 담화를 통해 학생에게 책을 빌려준 후 읽히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 감상문' 제출을 지시하기도 했다. 강제와 통제에 의한 방식이기는 하나 독서가 일종의 '훈련'을 통해 '습관화'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눈길을 끄는 독서 정책이긴 하다. 

경화는 '책방'과 '도서카드'에 대해서도 회상을 남겼다. 

"북한에서는 학생이든 성인이든 책방에서 책을 빌릴 때 도서카드를 발급해준다. 특히 학생인 경우에는 책을 빌려가는 당사자의 이름과 날짜, 어떤 학교의 몇 학년 몇 반인지와 주소가 적혀 있고, 그리고 보증인란에 세대주인 아버지 이름이 올려져 있다. 책을 빌려갔다가 잃어버리거나 선생님에게 회수당해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 열 배의 벌금이 아버지 월급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도서관'이 아닌 '책방'에서도 책을 구입하지 않고 빌려 본다는 점이 이채롭다. 책을 빌릴 때는 무료로 볼 수 있지만 분실했을 때는 보증인 월급에서 벌금을 차감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북한에서는 만화책을 '그림책'이라고 한다. 북한 주민도 '그림책'을 즐겨 보는데 '책매대'라고 불리는 이동식 노점 책방에서 구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에 등장한 책매대는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대학가와 기차역의 책매대는 그림책과 문학뿐 아니라 USB를 활용한 '전자책'도 팔거나 대여한다. 대여할 때는 보증금 대신 신분증을 맡긴다고 한다.

북한 최대 인터넷망인 '광명'은 이메일과 메신저, 뉴스뿐 아니라 '전자책 도서관'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출시한 태블릿 PC '삼지연' SA-70은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사용하고 김일성 저작 같은 전자책을 제공한다. 2008년 '고려링크'라는 이동통신망 사업자가 출범한 이후 북한의 휴대폰 이용자는 600만 명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치폰'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에도 '전자책'이 깔려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탈북했다는 북한 주민 이야기처럼 통제됐던 외부의 책과 잡지, DVD가 북한 사회에 빠르게 퍼지는 걸로 보인다. '장마당' 시대 북한의 책문화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북한 도서관을 자유롭게 방문할 날을 기다리며 
 

대동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인민대학습당 주체사상탑 근처에서 촬영한 인민대학습당 모습이다. ‘주체사상탑’은 김정일이 1982년 아버지 김일성의 70세 생일을 맞아 세운 탑이다. 인민대학습당과 같은 날 문을 열었다. ‘천리마 속도’로 공사를 해서 35일 만에 170미터 높이의 탑을 완공했다. 화강암을 사용한 이 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2만 5천550 개의 벽돌로 지었는데, 벽돌 숫자는 김일성이 살아온 날을 의미한다. 탑 꼭대기는 붉은 횃불로 장식했고,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평양시 모습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다. ⓒ Wikimedia Commons

 
역사책을 통해 삼국시대를 공부한 사람이면 한 번쯤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주도한 통일을 생각해봤을 것이다. 신라의 통일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그것이 '온전한 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통일'이 아닌 국토의 '상실'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고구려 주도의 통일을 상상하는 것은 땅과 사람과 나라의 '온전한 하나 됨'을 바라기 때문 아닐까.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은 해방과 분단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져봤을 것이다. 전쟁은 일본이 일으켰는데 왜 우리가 '분단'되었을까.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은 일본 '본토의 분할'이 아닌 일본 '제국의 분할'을 선택했고 제국의 일부였던 조선이 분할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나뉘어 싸우는 동안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전범국가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누리며 부활했다. 이 대목에서 해방 직후 유행했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련 놈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마라, 일본 놈 돌아온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더라도 해방 후 한반도의 '분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까.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모았다면 '분단국가'가 아닌 온전한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1945년 해방 전후를 산 우리 선조에게 물음을 던지듯, 훗날 우리 후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우리 시대에 통일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과제였는지, '우리의 소원'이라고 노래 부르는 것 말고 그 소원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분단 체제'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는데, 통일이 절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통일의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그 출발은 서로 알려고 애쓰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남북한의 책문화와 도서관은 서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서로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서로 교류하고 왕래하는 과정에서 통일의 징검다리는 하나씩 놓일 것이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시대, 육로로 금강산과 백두산으로 떠나는 휴가, 평양에서 평양냉면과 남한 맥주보다 맛있다는 대동강맥주를 자유롭게 맛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인민대학습당을 비롯한 북한 도서관을 자유롭게 '구경'하고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인민대학습당]

- 주소 : 평양시 중구역 남문동
- 이용시간 : 봉사시간 09:00 - 18:00 / 강의 강습시간 09:00 - 19:30
- 이용자격 : 이용 자격 제한 없음. 무료. 
- 운영기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덧붙이는 글 ‘인민대학습당’를 다룬 이 기사는 ①편과 ②편 2개의 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글은 ②편입니다.
#인민대학습당 #도서관 #북한도서관 #평양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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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에 이어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을 쓰고 있습니다. bookhunter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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