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나는 간첩이 아니다> 중 김태룡 전시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사진작가 정택용
고 김태룡은 부인 이정선의 사진을 유독 공들여 여러 장 찍었다. 자신이 잡혀가고 20년 세월 간첩의 아내로 눈총 받으면서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홀로 아이를 키워준 데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컸다. 전시 오프닝에 참가한 이정선은 고 김태룡의 인물 사진 옆에 서서 소감을 말했다.
"사람들이 다 나보고 어떻게 기다렸냐고 하는데 이 사람이 잘생겼으니까 기다렸죠. 이렇게 잘생겼는데 어떻게 안 기다려요."
다같이 울다가 웃었다. 저 웃음, 저 밝음, 저 긍정이 삶의 에너지다. 인간 존엄의 근간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하고 감동하는 능력은 누구도 망가뜨리지 못한다. 고문으로 일그러진 마음도 어루만지고 살려낸다.
독재정권 시절 '흑역사'인 간첩이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일까. 내가 스스로 던졌던 질문을 <폭력과 존엄 사이>를 읽은 한 독자는 이렇게 물었다.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책을 쓰고나서 작가님의 생각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나는 답했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고.
이전까지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음식, 좋은 집 등 내가 좋은 선택을 하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들 뵙고나니 그게 아니었다. 삶은 그렇게 간단치 않아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도 일어난다. 아무리 안전운행을 해도 끼어드는 차 때문에 사고가 나듯이 간첩 누명 같은 일이 덮친다.
그 불행과 고통에서도 나를 지키는 것,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결국 내가 택하지 않은 일을 삶으로 의연하게 수용하는 게 삶의 능력임을 알았다. 30~40년 동안 진실을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사진을 배워 아픈 기억을 대면하는 시도는 얼마나 멋진가.
'전직 간첩' 선생님들은 작은 억울함과 속상함에도 뒤척이는 나 같은 소인배를 삶의 통을 키워주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말하는 주체로서 자기 아픔을 당당히 터놓는 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통의 기억을 직면하고 삶으로 통합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발휘했다.
아직도 비명이 들릴 것 같은 깊고 어두운 사진은 말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진 상처의 크기이자 고통의 깊이가 곧 인간의 깊이이자 삶의 폭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는데 사람들이 옆에 있어줘서 좋다"는 김순자의 말대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는 일임을.
▲ <나는 간첩이 아니다> 전시장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사진작가 정택용
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은유 지음, 지금여기에 기획,
오월의봄, 201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법인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료 수집과 관리, 민주주의 교육과 학술연구 사업을 추진합니다.
공유하기
37년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남영동에 다시 올 줄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