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장수마을 지붕에 수백개의 야생화가 있는 집
김수종
"국립수목원에도 없는 것이 이곳에 있지만, 분양하면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줄 수 없는 것이 자식 같은 이곳 야생화"라고 하신다. 엄청난 무게로 지붕이 주저앉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들기는 하지만 수년 째 작은 집은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다시 골목을 따라 마을 안쪽을 둘러보니, 작은 카페가 있다는 표지판에 보인다. '예전에 망했던 카페를 다시 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가 보았지만, 표지판만 남은 카페는 아직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더 내려가니, 골목 사이에 미용실도 있고, 방수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며, 작은 슈퍼도 보인다.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도 없고, 도성길 순례를 하는 사람들만 간간히 보인다.
물도 좀 마시고 잠시 쉬기 위해 벤치에 앉아 있으니 고추를 말리기 위해 분주한 할머니부터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버리는 할머님들이 간간히 보이기는 한다. 고양이가 생각보다 많다. 자꾸 나를 따라 다니는 놈까지.
그 아래에 개인이 하는 작은 카페인 '성곽마루'로 가 보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마당에 있는 감나무며 해바라기만 멋지게 대문을 지키고 있다. 입구에 있는 피아노와 옆에 있는 텅 빈 개 집이 카페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나는 주변의 야생화며 가을꽃을 구경하면서 조금 더 거닐었다. 지붕 위에 있는 화분이며, 호박넝쿨, 가지 화분 등이 멋지게 보인다. 낡아서 비가 스며들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성북구 장수마을 한양도성이 멋진 곳이다
김수종
고향처럼 정겨운 곳이지만, 이제는 너무 낡고 허물어져가는 풍경이 안타까운 곳이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 부수고 다시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곳이고, 수리하거나 개조하는 것도 어렵고 불가능(?)한 환경을 가진 마을이다.
한때는 젊은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벽화도 왕창 그리고, 카페를 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지워버리고 폐쇄하여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생겼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이런 풍경이 먹히지!
나는 어느 건축가의 '도시재생은 잘 모르고 대책이 없을 때는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말을 가슴 속에 다시 새기면서 마을 속을 거닐 뿐이다. 오전 햇살이 너무 좋은 날이다.
▲성북구 장수마을 가을에는 해바라기
김수종
적당한 바람과 시원한 공기가 행복감에 빠져들게 하는 시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건강한 두 발로 천천히 느리게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장수마을 산책은 나에게 '너도 열심히 걷다보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어'라고 가르쳐주는 배움과 사색의 길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어르신들은 매일같이 해발125m 낙산을 오르내리면서 산책을 즐기는 관계로 장수하시는 듯 보인다. 나는 오늘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햇살을 가르며 새처럼 바람을 타고 낙산 아래 장수마을과 성곽 길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웃한 창신동과 동대문 지역을 살펴보기 위해 정상에 올라 잠시 "야호"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 본 다음 다시 길을 나섰다. 인생길은 참 멀고도 긴 나그네 길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골목이 있고, 사람이 있고, 튼튼한 두 다리가 있기에 편히 걸을 수 있어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