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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아버지, 돌변한 어머니, 혼란스런 아들의 성장담

[리뷰] 모두가 성장한 순간, 그 아름다운 찰나를 담았다 <와일드라이프>

19.12.19 16:25최종업데이트19.12.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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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라이프>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와일드 라이프>는 배우로 알려진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이다. 동료 배우이자 연인 '조 카잔'과 공동 각본을 썼으며, 퓰리처상 수상 작가 '리처드 포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폴 다노는 배우로서 연기를 펼칠 때도 잃지 않던 순수함과 세심함을 감독이 되어서도 유감없이 펼친다. 감독 데뷔작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 캐릭터 하나하나를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국가와 가정의 불안을 포착한 셈세함

1960년 몬태나로 이사 온 가족은 아직 적응 중이다. 어느 날, 인근 골프클럽에서 일하던 아버지 제리(제이크 질렌할)가 실직하면서 어두운 그림자는 커진다. 아버지의 실직은 그 전에도 몇 번 있었다. 엄마 자넷(캐리 멀리건)은 남편의 잦은 실직에 이미 지쳤고 몬태나도 그렇게 온 도시 중 하나다.

자넷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 없어 제리 대신 수영 강사 자리를 얻는다. 혼자서라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발버둥친다. 아들 '조(에드 옥슨볼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시내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영화 <와일드라이프>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제리는 "시시한 마트 직원 자리보다 대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며 '첫눈이 내리면 온다'는 약속을 남긴 채 화재 진화원에 자원한다. 제리의 결정에 자넷은 단단히 화가 났다.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집에는 조와 자넷 둘만 남았다.

몬태나의 산림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불로 며칠째 무섭게 타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무척 힘든 시기였다. 전쟁을 치른 후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정으로 가지고 온 남성과 그 남성들을 기다리던 여성과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아팠고 순간 차오르는 분노와 상실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한 전후 시대의 혼란은 고장 난 TV나 라디오를 통해 반복된다. 밖으로는 국가가 흔들리고 있으며 몬태나의 화마는 언제 어떻게 가족을 잠식할지 몰랐다. 평범하던 가족은 커지는 공포로 분열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어른을 보는 소년의 눈
   

영화 <와일드라이프>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리가 떠난 후 자넷은 180도 변한다. 자넷은 스무 살에 제리를 만나 조를 갖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 후 간간이 보조 교사로 일해 왔지만 가족을 위해 여러 해를 집에서만 보냈다. 자넷의 꿈과 욕망, 청춘은 그렇게 사라졌다.

영화는 과감한 생략과 여백으로 과거 상황을 설명한다. 회상하는 장면이 없고 화자 조의 시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의문스럽고 불안하며 파괴적인 캐릭터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조는 사춘기지만 또래 아이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 집 나간 아버지와 갑자기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는 아마도 감독 폴 다노의 의도로 보인다. 소년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 말이다.
   

영화 <와일드라이프>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와일드라이프>는 배우 폴 다노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작이다. 원작을 잘 살리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현했다. 세 배우의 앙상블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한다. 키만 작은 성인 배우 같은 어른스러움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조는 '에드 옥슨볼드'가 맡았다. 공허함을 품은 자넷은 '캐리 멀리건'이 연기했다. 언제나 영화 속에서 크고 작은 역할도 빛나게 만드는 '제이크 질렌할이' 아버지 제리를 맡아 폭넓은 감정선을 보여준다.

세 사람은 걷잡을 수없이 번지는 산불처럼 각자의 성장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몬태나의 아름다운 산세와 이곳 저곳으로 번지는 산불은 차분한 모습 속에 감춰진 조의 내면을 대변하고 있다. 따뜻하면서도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는 상실을 경험한 시대,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심심한 위로다.
      

영화 <와일드라이프>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과감히 생략해 버리는 감정선은 복잡한 관계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소통법이다. 영화의 넓고 큰 여백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상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 행위처럼 말이다. 사진은 훗날 고통을 이겨낸 가족에게 깊은 위안이 될 것이다. 개봉은 오는 12월 2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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