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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뭉친 허정무-황선홍, 레전드의 명예회복은 가능할까

대전 시티즌 인수한 하나금융축구단에서 이사장-감독으로 재회

19.12.30 13:56최종업데이트19.12.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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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한국축구의 레전드' 허정무와 황선홍이 다시 의기투합했다. 프로축구팀 대전시티즌을 인수해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금융축구단이 내년 1월 4일 창단식을 열고 새로운 출발선에 나서는 가운데,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이사장을 황선홍이 초대 감독으로 각각 선임되며 구단 운영진과 사령탑으로 한솥밥을 먹게 됐다.

허정무와 황선홍은 나란히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특별한 인물들이다. 허정무는 70~8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 만의 본선진출에 기여했고 네덜란드 명문 PSV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황선홍은 1990년대 한국축구의 간판 공격수로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핵심 멤버로도 활약했다.

두 사람은 개인적 인연도 깊다. 1990년대 포항에서 허정무가 감독으로, 황선홍이 선수로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2005년부터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감독 허정무와 코치 황선홍으로 재회하기도 했다. 대전까지 포함하면 각기 다른 구단에서 다른 역할(감독-선수, 감독-코치, 이사장-감독)로 세 번이나 만나는 것도 보기 드문 인연이다.

한국축구의 레전드로 화려한 축구인생을 걸어온 것 같지만 의외로 굴곡이 많았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허정무 이사장은 현역 시절부터 축구인생 내내 선배인 차범근 감독과의 비교에 시달렸고, 지도자로서도 이룬 업적에 비하여 이상하리만큼 저평가와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황선홍은 19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 '똥볼' 사건을 비롯하여 2002 한일월드컵 이전까지는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쓴소리를 들었다. 

허정무와 황선홍

2010년대는 허정무와 황선홍에게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모두 경험하게 해준 시대였다. 허정무는 생애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의 수장을 맡아 국내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16강진출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2002년의 히딩크와 달리, 박지성-이영표같은 스타 선수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면서 허정무 감독의 역량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대표팀을 물러난 이후에는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사령탑을 맡았으나 성적부진과 시민구단에 맞지 않는 선수단 운영으로 비난을 듣다가 결국 불명예스럽게 자진사임했다. 인천을 끝으로 현장을 떠나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등을 역임했지만 행정가로서도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황선홍 감독은 2007년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친정팀 포항의 지휘봉을 잡아 2013년에는 정규리그와 FA컵 '2관왕'이란 위업을 달성하며 스타 출신 지도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당시 포항은 외국인 선수를 한명도 기용하지 않고도 뛰어난 성적을 거둬 황선홍 감독은 '황선대원군'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FC서울 시절은 흑역사였다. 2016년 부임 첫해 심판 매수 파문으로 승점이 삭감된 전북을 상대로 행운이 따른 역전 우승을 거뒀으나, 2017년부터는 세대교체와 리빌딩에 실패하며 성적이 급격한 하락세를 걸었다. 특히 2018년에는 주축 선수들과의 잇단 불화설까지 맞물리며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고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올해 초에는 중국 연변 푸더의 지휘봉을 잡아 해외무대에 도전했으나, 시즌을 앞두고 구단이 전격 해체되면서 졸지에 직장을 잃는 황당한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허정무와 황선홍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2017년 5월 1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6차전 FC서울과 우라와 레즈의 경기. 서울 황선홍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나란히 축구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대전행은 어쩌면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대전은 시민구단 시절부터 잦은 사령탑 교체와 수뇌부의 방만한 팀운영으로 구설수가 많았던 팀이었다. 기업구단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고, 허정무나 황선홍같이 지명도 높은 축구인들까지 영입한만큼 이제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성있는 모습으로 거듭나야할 필요가 있다.

허정무 이사장에게 좋은 비교 대상은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일 것이다. 조 대표는 2011년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것을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나 프런트로 전격 변신했다. 초창기에는 감독 위의 감독 역할을 한다는 '상왕' 의혹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대구의 구단운영과 축구철학을 정립한 인물은 조 대표라고 평가받는다. 흔한 비인기 지방구단에 불과하던 대구FC가 1부 승격에 이어 어느덧 인기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K리그1의 신흥 강호로 부상하는데 조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도 대구의 운영을 논할 때 사령탑인 안드레 감독보다 항상 조광래 대표의 입장이 더 주목받을 만큼 그의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허정무 이사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지도자 시절부터 '허카우터'(허정무+스카우터)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기성용, 이청용, 곽태휘 등 2010년대 한국축구를 빛낸 대부분의 핵심 인재들을 처음 발굴해내고 중용한 것은 모두 허정무 이사장이었다. 감독 시절 허 이사장의 전술이나 리더십을 비난하던 안티팬들도 선수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안목'만큼은 인정했다. 대전은 사실상 신생구단으로. 젊은 선수 발굴-육성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허 이사장의 장점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황선홍 감독은 지도자로서 추락과 비상의 갈림길에 서 있다. 김남일, 설기현 등 2002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하나둘씩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황 감독도 이제는 베테랑 감독이 되었다. 포항에서 한정된 투자와 가용자원으로도 팀을 만들어나가는 전술적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서울에서는 자존심 강한 베테랑과 외국인 선수들을 다루는 포용력과 대인관계 등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스타 출신 지도자들의 흔한 단점'을 되풀이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황 감독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고 자신의 색깔을 차근차근 입힐 수 있는 대전에서는 서울 시절보다는 팀을 장악하기 수월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황 감독 역시 선수와 팬, 미디어를 대하는 방식이 좀더 유연해져야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실패의 경험은 비록 뼈아프지만 때로는 사람을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허정무와 황선홍 모두 한때의 처절한 실패를 딛고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재기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실패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허정무와 황선홍은 다시 한 번 성공한 축구인으로 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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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황선홍 대전시티즌 하나금융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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