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선집 돌베개출판사에서 나온 이덕무선집, 한사의 겨울나기 글이 실려 있다.
배남효
조선시대에 가장 책을 많이 읽어, 간서치(看書癡,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명이 붙은 이덕무(李德懋, 1741~1793)도 가난하게 겨울추위를 버틴 사연을 해학적인 글로 썼다. 이덕무는 서자로 태어나 신분 차별의 벽에 갇혀 좋은 벼슬은 하지 못하고, 주로 책에 파묻혀 가난하게 일생을 보내야 했다.
이덕무의 '한사(寒士)의 겨울나기'라는 글을 읽으면, 한서 책을 이불삼고, 논어 책을 병풍삼아 추위를 이겨낸 사연이 나온다. 힘들지만 가난과 추위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조선 선비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몇 해 전 겨울, 띠풀로 엮은 조그마한 집이 너무 추운 나머지 입김이 서려 성에가 되어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내 비록 게으른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고서는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 보려 하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필시 진사도처럼 얼어 죽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집 뒤편으로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논어'한권을 뽑아 바람막이로 삼고선 변통하는 수단이 남달랐다고 나 혼자 뇌까려 보았다.
이덕무가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너무나 추운 겨울을 지내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겨울밤의 지독한 추위를 직접 겪어본 사람이기에, 아주 실감나는 표현으로 웃음과 측은함이 동시에 우러나게 만든다.
조선 최고의 학식을 갖춘 선비가 한서 책을 이불삼고 논어 책을 병풍삼아 겨울나기를 했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잊게 한다. 물론 책밖에 모르는 고지식함이 가난을 면치 못하게도 했겠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신분을 차별하는 조선사회의 폐악이 매우 지독했던 것이다.
이덕무가 이 글을 쓴 것이 1765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741년생이니 불과 나이 25세의 새파랗게 젊은 시절이었다. 책에 빠진 젊은 선비가 일찍부터 세상의 고초를 겪고 있지만, 주눅이 들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선비는 얼어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이덕무도 선비의 자존심으로 겨울 추위를 힘겹지만 자기 식대로 헤쳐나간 것이다. 요즈음을 살아가는 25세의 젊은이들이 이 글을 읽고 느끼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잡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두보는 시성(詩聖)이라고 추앙받을 만큼 일관되게 성심(誠心)을 다해, 줄기차게 우국애민(憂國愛民)을 시로 노래했다. 헐벗고 굶주림이 없는 세상을 갈망하며 노래했던 대시인이, 자신의 시 '공낭'처럼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갔으니 슬픔이 느껴진다.
이덕무는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라는 해학적인 말을 남기면서까지, 가난과 추위를 이겨가며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렇게 힘들게 쌓은 실력으로 정조의 부름을 받고 출사하여, 조선을 개혁하는데 열성을 쏟았던 것이다.
두보의 '공낭'과 이덕무의 ''한사의 겨울나기'를 읽으면, 슬픔 속에서도 마음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더욱 겨울 강추위가 닥쳐와도, 두 사람의 글을 통해 위로받으며 이겨나가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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