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월, 아직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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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십 중반을 넘고 있으니, 가끔씩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떤 때는 살아서 파닥거리는 생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왜 나는 그런 젊은 날 그런 말과 행동을 하였던가? 왜 그리 지혜롭지 못하고 혈기만 믿고 가벼이 살았을까? 왜 그렇게 젊은 날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사색하지 않고 멋대로 시간을 죽였을까?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파도 내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므로 버릴 수 없고, 그 아픈 기억들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거름이 되었을 것을. 내 모습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어여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그 숱한 시간의 주검들이 썩어서 피워낸 것임을 압니다.
다행이 우리들은 연속된 시간을 끊어서 이해하는 재주를 지녔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없고, 2019년과 2020년의 경계가 없지만, 우리는 말로서는 뚜렷이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디 해와 날 뿐이겠습니까? 일 년은 열 두 달로 구분하고, 한 달은 상, 중, 하로 구분하지요. 또는 첫 주 둘째 주, 셋째 주 등으로 구분하고, 30일 31일로 끊어서 표현하지요. 하루는 또 어떻습니까? 오전 오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24시간으로 구분하고 그 시간을 다시 60등분합니다.
시간을 작게 쪼갤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피곤하지만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1년 단위로 헤아리게 되면 하루의 잘못된 삶이 1년의 흠결로 남게 됩니다. 우리가 한 달을 단위로 살게 되면 하루의 즐거운 삶이 한 달을 즐겁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끊어서 표현하기 때문에 1월을 부끄럽게 살게 되면 1월 31일에 아쉬운 날을 비우고 2월 1일부터 더 곱게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저의 생각으로 지은 말이 아닙니다. 폴란드의 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12월 31일과 1월 1일을 '마법과 같은 순간'이라 하면서 '전혀 다른 시간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한 해는 아쉬움과 부끄럼으로 채워진 한 해였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므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 봅니다.
'새해에는 좀 내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시작하자. 좀 잘난 체 말고 잘난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술 사주는 사람이 되자. 책 좀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돈이 좀 생기면 이웃들에게 기부를 하자. 일하는 시간을 좀 줄여서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서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 말은 좀 줄이고 사색과 글쓰기로 마음살을 살찌우자.'
좀 많은가요?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다보면, 그렇게 죽어간 나의 시간들이 쌓일 테고 작년에 죽은 시간보다 더 윤택한 주검들이 쌓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난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직은 새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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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책을 읽는 일을 버릇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돕도록 애써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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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과 1월 1일이 '마법 같은 순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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