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또 하나의 가족 제작 위원회
올해로 교직 22년 차인 여태껏 보충수업을 해본 적 없다는 것도 '남다르다'고 조롱받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지방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입시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보충수업은 필수적인 학사일정이자, 오랜 관행이다. 역사 교사이니 대학입시와 관련이 없는 교과도 아니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나선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루 7시간의 정규수업만으로도 아이들이 버거워한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정규수업만으로 진도를 맞출 수 없다면 학습 분량을 줄이는 게 옳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른바, '0교시' 보충수업까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루 서너 시간의 보충수업이 '기댈 언덕'이 되어 되레 정규수업이 느슨해지는 경우도 숱하게 봤다. 보충수업이 없다면 정규수업에 '올인'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동료 교사를 설득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역시나 교과서 진도와 대학입시를 핑계로 댔다.
이구동성 취지야 좋지만 보충수업을 없애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습 분량을 줄이자면, 교과서의 내용과 대학입시의 출제 범위를 문제 삼아야 하는데, 일개 교사로서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거다. 차라리 교육부 장관이 되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결국, 아무도 하지 않겠다면, 나라도 한다는 식으로 20년 넘게 버텨왔다. 고군분투한 만큼 학교가 달라졌느냐면, 그건 물론 아닐 거다. '0교시' 따위의 황당한 수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과에서 행해지고 있고, 아이들의 살인적인 학습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또, 삼성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조롱거리가 됐다. 지난 2014년 초에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한 뒤 시작한 것이니, 햇수로 7년째다. 당시 불매운동을 시작하며, 아이들 앞에서 그때까지 사용하던 낡은 삼성 휴대전화를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휴대전화의 '노예 계약' 기간이 끝났던 터라 괘념치 않아도 됐다. 덩달아 가전제품은 물론, 컴퓨터, 시계, 의류 할 것 없이 삼성 계열사의 제품은 집에서 모두 치워버렸다. 계열사가 아니어도, 지금껏 삼성이라는 이름을 내건 제품과 서비스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면서 내내 울컥했다. 자본의 매정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윤을 위해 사람을 헌신짝 취급을 하고, 부모 앞에서 자식의 목숨값을 흥정하는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영화관을 나오며, 하다못해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별명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로라하는 백화점과 마트에 발을 끊은 것도, 나아가 TV를 아예 보지 않는 것도 삼성 덕분이다. 과거 즐겨보던 종편과 오락 채널이 죄다 이른바 '범삼성 계열사'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긴 1정 연수를 받았던 한 지방 국립대의 급식위탁업체조차 삼성 계열사였으니,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즈음 아이들에게 반농반진으로 내기를 걸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삼성 제품을 쓰지도, 먹지도, 보지도, 타지도 않았다면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화상품권조차도 '범 삼성 계열사'의 제품이라며 키득거렸다.
다행히 문화상품권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 다만, 내기에 이겨서 더 씁쓸했다. 내기를 통해 삼성 제품을 만나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아이들조차도 삼성이 대한민국 정부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여줘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되레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저들의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사건 파기 환송심이 예정돼 있지만, 관심조차 없다. 결과가 뻔해 궁금하지 않다는 거다.
동료 교사도, 아이들도, 채식을 실천한다고 지구의 환경이 좋아지느냐고, 보충수업을 거부한다고 우리 교육이 변하겠느냐고, 삼성 불매운동을 한다고 삼성이 착해질 것 같으냐고, 대놓고 되묻는다. 함께하면 가능하다고, 나부터 실천하면 이룰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그때마다 튕겨 나오는 느낌이다. 역시나 '딸깍발이' 같은 답변이라는 조롱과 함께.
하도 많이 들어온 터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남다른' 모습에 동료 교사와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공감하고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완벽하게 채식을 실천하는 한 사람보다 채식에 공감하는 열 사람이 훨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뚱맞게 별명 이야기를 꺼낸 건, 이태 전 졸업한 한 아이가 보내준 선물과 그 안에 담긴 편지 때문이다. 낼모레 군대에 간다면서, 갑자기 선생님이 생각나서 보냈다고 했다. 편지의 맨 위엔 '딸깍발이 선생님께'라고 적혀있었다. 그 별명을 어떻게 알았을까, 순간 치부를 들킨 듯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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