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 기온이 크게 오른 2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매화 너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또 며칠을 보냈다.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몸에서도 사인이 왔다. 집에만 있으니 식욕이 없어 시리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을 뿐인데 종일 소화가 되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일었다. 한없이 꺼지는 기분에 슬프다가도 사소한 일들에 화가 났고, 집에만 갇혀 세 끼 밥을 모두 해 먹는 일상이 지긋지긋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우울의 증상들이었다. 정신분석에서는 분노가 갈 곳을 잃었을 때 내면을 향하는데 자기 자신을 침범한 분노들이 우울을 유발한다고 했다. 이렇게 다같이 고생하고 있는데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퍼져가기만 했고, 정상적인 생활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통제할 수 없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 화가 났고, 그럼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하지만, 화낼 대상이 없었다. 바이러스를 누군가 일부러 퍼뜨린 것도 아니고,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닐테니 누구에게 화를 내겠는가. 결국 그 분노는 무기력에 빠져드는 내게로 향했고, 이는 나를 점점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들이 우울임을 알아챘던 날 오랜만에 이웃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다들 무탈한가요? 진짜 너무 처지고 전 우울해 죽겠어요. 이러다 집단우울증 빠지는 건 아닌지.'
나만 우울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이웃이 메시지를 남겼다.
'저 오늘 수성못 나왔어요. 이러다가 우울증 걸릴 거 같아서. 마스크 쓰고 장갑도 끼고 나와 봤는데 사람들 꽤 있어요. 움직이니까 좀 나아요. 밖에서는 감염위험 별로 없다니까 간단한 산책이라도 해 봐요. '
이 이웃의 말이 맞았다. 우울할 때,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만사 귀찮아 집에만 있다가도 잠깐 용기를 내 밖에 나가 햇살을 맞고 움직이다 보면 우울은 한층 엷어지기 마련이다. 상담소에서 내가 내담자들에게 해 주었던 그 조언들을 우울에 빠져들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3월의 첫 월요일. 난 이 이웃 덕분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땀이 나게 걸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산책로에서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져 왔다. 아마 이들도 놀라고,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이겨내고 밖으로 나왔을 터였다.
대구의 차도는 여전히 한산하고, 사람으로 북적대던 극장, 식당, 매장들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다시금 일상을 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등산로, 산책로, 야외 공원 등 비교적 안전하다는 열린 공간에 나가 햇살을 쪼이고, 몸을 움직이면서 움츠러든 마음을 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새삼 소중해진 일상을 되찾을 날이 곧 오지 않겠는가. 대구 시민들의 마음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54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공유하기
놀람, 분노, 무기력 속에서도 대구는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