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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 난입 논란 휩싸인 에릭 다이어, 우리라면 어땠을까

[주장] 관중석 난입한 토트넘 다이어, 비판만 할 수 없다

20.03.06 14:08최종업데이트20.03.0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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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16강전에서 충격의 탈락을 당한 토트넘 홋스퍼가 이번엔 에릭 다이어의 관중석 난입 사건으로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토트넘은 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리치시티와 2019-2020시즌 FA컵 16강 홈경기에 출전해 1-1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3-4로 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이날 수비수로 출전했던 다이어는 경기를 마친 후 돌연 관중석에 난입하여 팬과 몸싸움을 벌였다. 다이어는 격앙된 모습이었고 일부 팬들과 거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 경기 요원들이 만류하며 겨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일촉즉발의 현장 상황은 트위터와 팬들이 올린 동영상 등을 통하여 그대로 중계됐다.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왜 다이어가 그런 행동을 저질렀는지 해명했다. 모리뉴 감독은 "팬이 다이어와 그 가족을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다이어의 남동생 등 가족들도 와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다이어는 자신의 가족들이 극성팬으로부터 모욕과 위협을 듣는 상황을 목격하고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뉴 감독은 "다이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구단이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나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수를 감쌌다.

프로축구계는 극성 팬들도 워낙 많다보니 선수와 팬의 충돌에 대해 엄격한 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지난 1995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에릭 칸토나가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원정 경기중 자신을 비난하는 한 팬을 향해 플라잉 킥을 날려 영국축구협회(FA)로부터 무려 8개월 출장정지, 벌금 3만 달러, 사회봉사 120시간 등의 중징계를 받은바 있다. 당시 칸토나에게 내려진 FA의 징계는 프리미어리그 사상 가장 강력한 조치였다.

다이어는 관중을 폭행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관중석으로 올라가서 설전을 벌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행동이었다. 흥분한 선수와 극성 팬들이 정면에서 마주친 상황이었고 주변에서 그나마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큰 사고(폭행, 관중 소요)로 이어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FA이 다이어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다.

만일 다이어마저 징계로 전열에서 이탈한다면 토트넘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미 토트넘은 해리 케인, 손흥민, 휴고 요리스 등 주축 선수들 다수가 부상에 시달리며 스쿼드가 급격히 얇아졌고 그 여파로 최근 4경기 연속 무승의 수렁에 빠져있다. 다이어는 비록 올시즌 부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 수비수까지 소화할수 있는 귀중한 멀티 자원이기에 그마저 빠지면 모리뉴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선수가 관중석에 난입하거나 팬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못한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다이어가 그런 행동을 저지른 이유가 밝혀지면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다이어를 동정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07년 안정환은 관중석 난입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에도 상대팀 축구 팬이 안정환의 사생활에 대한 막말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고 안정환에게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지만 이 사건은 국내 축구계의 인신공격적인 응원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계기가 됐다.

축구를 비롯한 모든 프로 스포츠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고, 또 비판하는 것은 팬들의 권리다. 하지만 축구팬 이전에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선이란 것은 존재한다. 축구를 떠나 선수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것,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것 등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과연 다이어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태연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다이어의 행동이 축구선수로서는 잘못된 일이지만, 자연인의 한 사람이자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형으로서는 당연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이유야 어쨌든 다이어가 징계를 받아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애초에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며 사태의 원인제공을 한 팬도 축구장에서 영원히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 공정하다.

다이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선수들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의 나라, 다른 선수의 이야기라고 여길 게 아니라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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