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중증환자가 서울 양천구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남병원에 후송되어 음압 바이오백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이희훈
그런데 "영웅주의"를 이야기했던 랑베르도, "하느님의 재앙"을 설파했던 파늘루도 결국 마음을 돌린다. 랑베르는 오랜 노력 끝에 경비대를 매수해 도시를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긴 시간 리외와 타루의 싸움을 목도한 그는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다"라며 보건대에 합류한다. 일종의 수오지심이 발동한 것이다.
파늘루의 상황은 좀 더 극적이다. 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그는 "주님, 이 아이를 구해주소서!"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의 기도도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치료에 온 힘을 쏟았던 리외는 평소와 달리 격앙된 목소리로 "적어도 이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죠!"라며 파늘루에게 따졌다. "악한 사람이 (페스트에) 떠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던 그의 설교 내용을 지적한 것이다.
파늘루는 두 번째 설교를 통해 여전히 하나님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 대신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보건대에 합류해 리외와 타루의 싸움을 지원하다 이름 모를 병으로 죽는다(페스트로 추정). 더불어 항상 꼿꼿한 자세로 "하느님의 뜻은 측량할 길이 없으니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던 오통도 아들의 죽음 후 자원봉사에 합류했다가 목숨을 잃는다.
리외, 타루, 랑베르, 파늘루, 오통은 영웅이 아니었다. 초기에 랑베르가 말했던 "영웅주의"가 발동돼 행동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페스트가 너무 강해 (노력을 기울여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란 누군가의 자조에, 타루는 "우리가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알게 되겠죠"라고 답한다. 타루의 말처럼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외에 보건대의 사무 업무를 맡은 시청 비정규직 그랑과 혈청 개발에 매진한 노련한 의사 카스텔도 있었다. 또 보건대에 합류한 수많은 사람들과 도시 곳곳을 지킨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있었다. 리외와 타루가 처음부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랑베르·파늘루·오통이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도시의 구성원들을 잇는 보이지 않는 끈 때문이었다.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페스트가 잠잠해진 이후의 상황을 카뮈는 이렇게 묘사한다.
"리외는 무엇을 얻었는가? 페스트를 겪었고 페스트에 대한 추억을 가졌다는 것, 우정을 경험했고 우정에 대한 추억을 가졌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고 언젠가는 애정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그가 얻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페스트 그리고 삶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인식과 기억뿐이었다. 타루가 싸움에서 이긴다고 말한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이걸 연대라고 표현한다. <페스트>의 사람들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공직자, 그리고 곳곳에서 성금과 목소리로 어려운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까닭 없이 죽을 수도 있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그들은 회피 대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외가 페스트를 "끝없는 패배"로 인식하면서도 "그렇다고 투쟁을 멈출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듯, 그들 역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두 사람 : 타루와 코타르

▲ 지난 3월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역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역사 방역을 하고 있다.
이희훈
카뮈는 <페스트>에 두 가지 장치를 심어놓았다. 먼저 페스트가 종식돼 도시가 축제 분위기일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타루가 페스트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카뮈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낸다. 감염병에 국한해서 봐도, 부조리는 항상 존재한다는 은유적 관점에서 봐도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장치는 코타르라는 인물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했던 코타르는 페스트 창궐 후 수사기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가 봉쇄된 틈을 타 밀거래로 돈을 많이 벌면서 부조리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앞서 소개한 "페스트가 너무 강해 (노력을 기울여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란 말도 코타르가 한 것이었다. 페스트의 기세가 주춤한 탓에 불안해 하던 그는, 리외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라고 말하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도시 봉쇄를 해제한다는 도청의 공식 성명이 발표된 후, 코타르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결국 검거된다. 이 도시에서 소수였던 그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지만, 2020년 대한민국에선 그런 부류가 꽤 눈에 띈다. 코로나19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은 지금 이 부조리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에 기생하는 2020년판 코타르는 누구인가.
페스트 (무선)
알베르 카뮈 (지은이), 유호식 (옮긴이),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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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균은 소멸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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