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테러로 엄마 잃은 소녀가 끝내 울음 터트리며 한 말

[리뷰] 파리의 테러를 통해 본 인간의 강한 본성, 영화 <쁘띠 아만다>

20.04.16 15:29최종업데이트20.04.17 10:41
원고료로 응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쁘띠 아만다> 포스터 ⓒ 알토미디어

 
<쁘띠 아만다>는 누나를 잃은 다비드와 엄마를 잃은 아만다가 상실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가족이 되는 따뜻한 이야기다. 2015년 11월 13일 발생한 파리 테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같은 관광명소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는 유유자적 흘러가는 센 강의 물줄기처럼 파리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여름 배경을 담았다. 차를 타고서는 볼 수 없는 거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전거를 타고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여름의 맑음과 녹색 질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지만 유난히 마음이 따스해지는 이유기도 하다.

파리에서 공원 관리사 겸 민박집을 운영하는 스물넷 다비드(뱅상 라코스테)는 갑자기 집안의 가장이 된다. 평온하고 평범했던 그날, 사고의 전조증상은 전혀 없었다. 산책하고 소풍 온 공원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 사람들만 있었다. 평화롭던 일상에 다비드의 누나이자 아만다의 엄마 상드린(오필리아 콜브)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어 운 좋게 살아남은 다비드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보고 얼어붙었다.
       

영화 <쁘띠 아만다> 스틸컷 ⓒ 알토미디어

 
상실을 견디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본능

영화 <쁘띠 아만다>는 파리 테러를 다룬 첫 영화다. 미카엘 감독은 프랑스 테러 이후 상실을 견뎌내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본능을 따뜻한 이야기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나의 일상을 멈춘 4월 16일, 그날이 떠올랐다.

다비드는 일곱 살 조카 아만다(이조르 뮐트리에)에게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른다. 결혼, 사회, 자신에게도 서툰 이십 대 다비드가 느닷없이 조카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 무게를 짊어진 것이다.

그날 이후 둘은 서로에게 아픔을 털어놓지 않은 채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마음의 상처가 먼저 치유되어야 할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돌볼 사이 없이 살아가야만 한다. 삶은 잔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배가 고팠고, 잠이 쏟아졌으며, 일어나면 직장과 학교로 출근해야 했다. 누구도 치유받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가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 또한 같은 상실을 겪었기에 그저 위로하고 공감하며 함께 무너질 뿐이다.

다비드와 아만다는 서로를 의지하며 서서히 회복하는 듯 보인다. 다비드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레나(스테이시 마틴)와 사랑을 이루고, 20년간 연락을 끊고 지낸 엄마와도 조우한다. 갑자기 겪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인간 본능이 선한 의지로 표출된다. 그날의 참상은 계획된 미래를 앗아갔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영화 <쁘띠 아만다> 스틸컷 ⓒ 알토미디어

 
끝내 울음 터트리고 만 아만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중 가장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삼촌 다비드는 조카와 자신이 어릴 적 떠난 엄마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가자고 약속한다. 사실은 기억에도 없는 엄마지만, 아만다의 할머니이기도 하기에 계획한 여행이었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 작은 일상을 즐기며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갔다. 하지만 아만다는 경기가 고조될수록 불편한 구석을 숨길 수 없다. 응원하는 선수가 너무 큰 점수 차로 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며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어"라고 포기하듯 말한다. 아만다의 이 말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을까?

그동안 일곱 살 아만다는 애써 태연한 척 엄마를 찾지 않았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이집 저집 떠돌던 불안함 때문인지 아이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던 참이었다. 하지만 테니스 경기를 보다가 그동안 꾹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왜 우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영화의 초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엄마 상드린은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어((Elvis has left the building)'라는 표현을 재치있게 가르쳐 준다. 공연 후 여운을 잊지 못하는 팬들이 혹시라도 엘비스 프레슬리가 다시 나올까 기대하며 기다렸으나, 이내 관계자가 나와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으니 포기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 이 때문에 '포기하라'는 일종의 숙어가 된 까닭을 설명한다.

아만다는 그동안 엄마가 혹시라도 돌아올까 기다렸을 테지만 비로소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게 된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영문을 알 리 없는 다비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것에 대한 미덕을 알려줌과 동시에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 준다. 선수는 극적으로 점수 차를 좁히기 시작했고 아만다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실감한다.
   

영화 <쁘띠 아만다> 스틸컷 ⓒ 알토미디어

   
오늘은 세월호 6주기다. 우리는 그날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여섯 해를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 사람들의 일상이 멈추었던 그날의 이야기, <쁘띠 아만다>를 통해 6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본다. 두 사건에서 느껴지는 묘한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미래는 섣불리 장담할 수 없고 삶이 장애물에 부딪혔다고 해서 그대로 멈출 수 없다. 누군가의 일상이 끝났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긍정의 메시지 말이다.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마음이 있는 한 엘비스는 아직 건물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쁘띠 아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