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악령에서 벗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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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용(jingi88)등록 2020.04.17 16:20
이번 21대 총선에서 통합당의 참패한 원인은 코로나 사태와 막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구시대와의 단절이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놓는 냉정한 대중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총선 몇 주 전, 박근혜의 마지막 충신 유영하는 자신의 군주가 썼다는 편지를 언론에 발표했었다. 마치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비장의 무기처럼. 불쌍한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국가를 위해 보수 세력이 결집하라는 비장한 옥중 메시지였다. 친북좌파 세력으로부터 억울하게 탄압 받는 옛 군주의 눈물겨운 애국심이 편지의 행간 사이를 넘쳐흐르고 있었다. 국모답게 감정을 절제하려는 흔적도 역력했다. 오직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애국 국민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백성 걱정하는 마음'은 이번 총선에서 어느 곳 하나에도 스며들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반응이었다. 그 편지를 앞세우고 미통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유영하의 꿈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친박신당, 우리공화당, 대한애국당 등의 정치세력들은 전체 비례대표 합이 3%가 안 될 정도로 미미한 지지를 받은 결과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색할 정도로 전몰하고 말았다. 박근혜에 열광했던 그 많은 애국국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 세력의 국회 진입을 냉혹하게 막았다. 한마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정치 행위는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애석하지만 시대는 완전히 그를 버렸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 불가해성에 정신세계의 혼란을 겪었었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독재의 향기가 아직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리게 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현실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박정희가 갈망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의 그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이 시대의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 현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었다. 바로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였다.
 
그리고 박근혜에 열광한 국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박근혜를... 민주주의에서의 집단이성은 대한민국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이상학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냉소와 분노와 허무함이 대중을 지배했었다. 이 꼴을 보려고 그토록 피를 흘렸던가. 민주주의의 배신이었다.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박정희란 어떠한 존재인지를 역사의 주체로서 직접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위해보지만 그래도 그 댓가는 너무나 비쌌다.
 
촛불혁명으로 대중은 박근혜로 상징되는 독재의 실체를 내쫒았다. 그리고 이번 총선은 그 악령을 내쫒는 엑소시즘을 마무리하는 제식이며 또한 상처받은 대중의 싯김굿이었다고 평가해본다. 이제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악령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도 될 만 하지 않을까. 이 시대정신을 이끌어갈 정치세력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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