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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스타로 거듭난 허훈... 더 성장해야 하는 이유

3년만에 급성장... 경쟁자 부재-국제무대 활약에선 아쉬워

20.04.18 15:27최종업데이트20.04.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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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부산 KT의 가드 허훈은 올 시즌 가장 괄목 성장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프로 데뷔전부터 친형 허웅과 함께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의 친아들로 주목을 받았던 허훈은, 지난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데뷔 첫해도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의 상황과 허훈 본인의 부담감, 부상 문제 등이 겹치면서 신인상은 안영준(SK)에게 내줘야 했다. 2018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허웅과 함께 국가대표 승선 자격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허훈이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거나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허훈에게는 이러한 아픈 경험들도 성장을 위한 더 큰 동기부여가 됐다. 3년 차를 맞이한 허훈은 2019∼2020시즌에 기량이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당히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올스타 선정은 물론 인기투표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곱상한 외모로 코트에선 폭발적인 플레이를 펼친다거나, 공식석 상에서 웃는 표정으로 거침없이 할 말은 다 하는 등의 반전 매력도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로 꼽힌다.

허훈의 활약상

무엇보다 허훈은 이번 시즌 KBL 역사에 남을만한 진기록을 잇달아 만들어냈다. 2019년 10월20일 DB와의 경기에는 역대 최초로 한 경기 9회 연속 3점슛을 성공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12월14일 창원 LG와의 경기에서는 18득점 3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올리며 주희정에 이어 정규경기 통산 국내 선수 2번째로 '5경기 연속 15점-7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했다. 올해 2월9일 안양 KGC인삼공사전에서는 24득점 21어시스트를 올려 KBL 최초 '20득점-20어시스트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슈팅 가드에 가까운 형 허웅이 침착한 경기운영과 안정감 있는 슈팅력이 돋보인다면, 허훈은 오히려 아버지 허재의 큰 경기를 즐기는 배짱과 승부사 기질을 더 닮았다는 평가다.  

허훈은 이번 시즌 35경기에서 평균 14.9득점, 2.6리바운드, 7.2어시스트의 눈부신 성적을 기록했고, 어시스트 부분은 당당히 생애 첫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팀 성적이 8위에 그쳤고 아쉽게 리그가 코로나 사태로 조기 종료되면서 더 활약할 기회를 잃은 게 아쉽지만 허훈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시즌을 보냈다고 할만하다. 올 시즌 원주 DB를 공동 1위로 이끈 국가대표 선배 김종규와 함께 나란히 MVP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허훈의 높아진 위상을 증명한다.

물론 올 시즌 MVP는 김종규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허훈이 부상으로 7경기 결장한 데 비하여 김종규는 43경기 전 경기에 나서며 13.3점, 6.1리바운드(국내 1위), 2.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성적에서 1위 프리미엄도 있다. 

하지만 허훈의 최근 성장세를 감안하면 지금부터가 전성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MVP에 도전할 기회는 충분하다. 정말 주목해야 할 부분은 허훈이라는 선수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다. 한국농구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위대한 가드'들을 배출해왔다. 프로화 시대부터 논하더라도 60년대생에는 허재, 강동희가 있었고, 70년대생에는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주희정 등이, 80년대생에는 양동근과 김선형, 김태술, 박찬희, 김시래 등이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가드 계보를 이어왔다.

1990년대생으로 넘어오면서는 인재풀이 다소 위축됐다. 이 세대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가드는 이제 30대에 접어드는 이대성(90년생) 정도고, 20대 선수로는 사실상 허훈이 유일하다. 두경민은 슈팅가드에 가깝고 김민구는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전성기가 일찍 끝났다. 김낙현-유현준-김진영 등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기대되는 유망주들은 몇몇 더 있지만 모두 아직은 경험과 검증이 더 필요하다. 역대 한국농구의 전설적인 가드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소속팀과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경쟁력을 증명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경쟁자 많이 나와야

2010년대 양동근이 10년 가까이 한국농구를 외롭게 지켜온 대들보였다면, 2020년대 한국 가드진은 '허훈의 시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허훈은 대학생 시절부터 또래 세대의 선수들에 비하여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일찍 승선했고 경험치에서 유독 많은 기회를 몰아받은 측면이 있다. 그러한 측면이 허훈의 빠른 성장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허훈 이외에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다양하게 발굴하지 못한 것은 한국농구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슷한 세대에 자극과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경쟁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허훈에게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허훈의 부친인 허재에게는 한때 이충희라는 큰 산이 있었고, 프로무대에서 독보적이었던 서장훈에게도 현주엽과 김주성이라는 대항마가 존재했다. '가드 춘추전국시대'로 불리던 1990-2000년대에는 강동희-이상민-김승현-양동근 등이 4~5년의 간극을 두고 꾸준히 배출되며 동시대에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다.

반면 허훈의 경우, 양동근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김선형과 박찬희도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작게는 7~8년에서 길게는 10여 년 이상 차이가 나는, 사실상 허훈과는 '세대가 다른' 선수들이다. 허훈은 별다른 경쟁도 없이 자연스럽게 대표팀 주전가드까지 '무혈입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KBL에서 보여준 성장에 비하여 허훈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활약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 무대에서는 신장 대비 탄탄한 체격과 운동능력으로 사이즈의 약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국제무대에서 2류 수준에 가까운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의 가드진을 상대로도 공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허훈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허재, 강동희, 이상민. 양동근 등의 역대 대표팀 1인자를 차지했던 선배 가드들의 활약상을 지켜 봐왔던 농구팬들의 눈높이에는 아직 못 미치는 활약이었다. 국제무대에서는 KBL과 달리 지나치게 단조로운 공격기술이나 운동능력에만 의존하는 플레이는 통하지 않는다. 2대2 수비 상황에서의 스크린 대처 능력 등도 허훈이 보완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허훈이 KBL에서만 통하는 선수를 넘어 진정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가드로 인정받으려면 지금의 성적에만 도취되어  안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긍정적인 부분은 허훈이 매년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면서 성장세가 빠르다는 것이다. 프로 데뷔 초기와 비교해도 스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동료들의 스크린을 활용해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기술이 유연해지면서 더 많은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주희정이나 양동근같이 프로농구에서 오랫동안 장수한 선수들일수록, 운동능력에 의존하던 20대보다 오히려 30대에 접어들며 기량이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허훈이 과연 아버지 허재의 후광을 넘어서 얼마나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지 앞으로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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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프로농구MVP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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