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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전신 만든 남자, 동성애자란 이유로 화학적 거세까지

[리뷰] '과학의 날' 맞아 추천하는 <이미테이션 게임>, <밤쉘>

20.04.21 17:53최종업데이트20.04.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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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자 과학의 달이다. 1973년 과학 기술의 진흥을 위해 제정된 과학의 날의 맞아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연장된 요즘 전자기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언택트 소비(Untact), 재택근무, 온라인 개학, 스트리밍 라이프 등. 집에 있으면서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 와이파이로 연결된 스마트폰과 태블릿, 블루투스로 연결된 AI 스피커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우울감에 빠질지 모를 우리 시대 집콕족들에게 ICT 기계는 생명과도 같다. 이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은 21세기 현대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자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모아봤다. 먼 옛날,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과학의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 현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시작

천재 역할 전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천재 수학자 겸 과학자 앨런 튜링을 연기했다. 튜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다.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미국의 에니악(ENIAC)보다 앞서 1943년 암호해독 기기이자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콜로서스(Colossus)가 있었다. 콜로서스의 모태인 봄브(Bombe)가 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라는 암호 해독 기계로 설정되었다. 마흔하나의 짧은 삶을 살다간 그는 현대인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컴퓨터의 전신을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 4차 산업혁명 이후 가장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AI 초석이 튜링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튜링 테스트(Turing Test)란 앨런 튜링의 논문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에서 고안해 낸 인공지능 첫걸음이다. 영화 제목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은 튜링 테스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도 등장한 인공지능과 사람의 대화 시스템을 뜻한다.

이는 기계가 지능이나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대화다. 재미있는 점은 튜링 테스트 정립 후 단 한 대의 컴퓨터도 통과하지 못했으나, 튜링 사망 60주기를 맞아 개최된 2014년 튜링 테스트 행사에서 러시아의 유진 구스트만이란 인공지능 챗봇이 테스트를 통과해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에니그마(Enigma)의 대항마 크리스토퍼를 개발하는 과정이 주요 줄거리다. 암호해독의 탁월한 공을 세운 업적과 개인적인 부분을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튜링의 혁혁한 공헌 대신 동성애자란 이유를 들어 추락하게 만들었다. 엄연한 전쟁영웅임에도 생의 말년에는 화학적 거세 요법으로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살아야 했던 비극은 유명하다.

훗날 동성애자 인권 의식이 개선된 이후 영국은 2009년 그의 부당한 죽음을 정식 사과했다. 2012년, 탄생 100주년에 영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 기여한 바를 높이 사 재평가를 시작했다. 2019년에는 50파운드 지폐 초상 인물로 선정, 여왕의 특별 사면령으로 공식 복권됐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세상에 전혀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내놓은 개인의 삶을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규정하고 속박하며 철저하게 망가트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계인가 사람인가를 따지는 테스트와 정상과 비정상을 따지는 영국 사회의 차별은 다름이 틀림이 되는 시대의 희생양을 양산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뿐만 아닌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구드까지 탄탄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암호 해독 팀의 긴장감 넘치는 사랑과 우정을 그려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 조안 클라크도 실존 인물이다. 튜링은 조안과 파혼했지만 훗날 우정 이상의 소울메이트로 지적 유희를 나누었다.

<밤쉘>, 아름다움이 오히려 독이 된 발명왕
 

영화 <밤쉘> 스틸컷 ⓒ (주)영화사 그램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이 나인지. 나에 대한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말한 1940년대 할리우드 스타 헤디 라머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녀의 육성 파일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헤디 라머는 미(美아)의 아이콘이었지만 그 프레임에 갇혀 지적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불우한 삶을 살았다. 제목 밤쉘(Bombshell)은 폭탄선언이란 뜻 보다 섹시한 여성이란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과학자 겸 발명가, 자상하고 완벽한 어머니의 삶이 지워진 헤디 라머를 은유하는 표현이다.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똑똑해서는 안 됐던 헤디 라머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란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할리우드에 데뷔해 <엑스타시>, <붐 타운>, <삼손과 데릴라>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디즈니의 백설공주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자 캣우먼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외모 탓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6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나 오직 한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영화 <밤쉘> 스틸컷 ⓒ (주)영화사 그램

 
영화는 파란만장했던 무대 뒤의 진짜 삶을 조망했다. 당시 속도가 중요했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배우들을 혹독한 스케줄로 내몰기로 유명했다. 헤디 라머는 녹초가 되어 귀가한 후에도 발명을 이어갔다. 항공기 설계자인 하워드 휴즈에게 비행기 모양(유선형 날개)에 아이디어를 내는 등 재능을 발휘한다.

가장 큰 업적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쏟아진다. 민간인이 탄 잠수함이 어뢰 공격을 당하자 보안을 강화한 무선통신체계를 발명한다. 연합군에 도움이 되고자 작곡가 조지 앤테일과 함께 보안 기술인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을 창안한 것. 이는 훗날 무선통신 산업, 군사 기술의 근간을 이룬다. 만약 헤디 라머가 없었다면 GPS, 와이파이, 블루투스, 인공위성의 편리함을 누릴 수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40대 싱글맘이 된 후 경제적 자립과 원하는 캐릭터의 열망을 디딤돌 삼아 제작에도 관여했으나 배급사를 찾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남성들이 즐비한 할리우드 산업에서 여성으로서 직접 영화제작을 감행한 패기였다. 거기에 유대인이자 전쟁 피해자, 이민자, 여성이란 이유로 미국에서 특허권이 박탈당하며 큰 위기를 겪는다. 당시 영화계는 그녀를 발명가로서의 성장보다 자극적인 스캔들로 소비하길 원했고, 대필 작가가 썼다는 자전서 <엑스터시와 나>조차도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로 남았다.
 

영화 <밤쉘> 스틸컷 ⓒ (주)영화사 그램

 
다행히 1990년 대 포보스 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으며 인류에 기여한 인물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5년 구글은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 기념 헌정 영상(NO HEDY LAMAR, NO GOOGLE!)을 발표했다. 그녀는 현재까지도 여성 후배들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2017년 수잔 서랜든이 제작한 영화가 바로 <밤쉘>이다.

<밤쉘>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 아름다움의 상업화로 가려진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디 라머가 지금 세상에 살았다면 미모와 재능을 발휘하며 더 많은 곳에 기여했을 것이다. 과연 아름다움은 저주였을까. 세상의 모든 여성과 남성의 사랑을 한 번에 받았던 헤디 라머,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란 수식어를 떼어내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기여한 발명가와 과학자,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페미니스트 헤디 라머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미테이션 게임 밤쉘 과학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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