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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개신교의 기습 기자회견, 고맙다

[주장] 의회 과반 민주당,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등록 2020.04.23 18:16수정 2020.04.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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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단체의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 지유석

   
모처럼 보수 개신교 단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오직예수사랑선교회', '올바른인권세우기' 등 보수 개신교 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규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NCCK가 선거 다음 날인 16일 내놓은 입장문 중 차별금지법 관련 대목을 문제 삼았다.

입장문 중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이자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필수 요건이다. 제21대 국회는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섬으로써 소수라는 이유로 그 존재를 무시하는 혐오와 차별을 넘어 환대와 평등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면서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 시행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보수 개신교 단체는 이를 집중 성토했다.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혐오 선동이나 차별금지법 무력화 시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실제 22일 NCCK 규탄 기자회견을 주도한 이는 최근 적극적으로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주아무개 목사였다. 그러나 어제 있었던 기자회견은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다. 

벌써 일부 개신교계 언론 매체에선 차별금지법 반대 여론몰이가 진행 중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21일 자에 이명진 의사평론가(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의 칼럼을 실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에 저항하자'란 제하의 칼럼에서 이명진 의사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거대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기독교와 정면충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첫 충돌에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낙타의 콧잔등을 세게 때려야 한다. 점잖은 성명서 발표와 적당한 타협안은 있을 수 없다. 초기에 강하게 나가야 한다. 여러 가지 핍박과 피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편을 들어 주지 않고 비난의 날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각 교단 교단장들과 신학교 학장은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 한다."

바뀐 의회권력, 보수 개신교 불안 자극했나 

4.15 총선 결과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회 의석 180석(지역구163, 비례정당 17)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개헌 빼곤 다할 수 있는 의석수다. 마침 총선 다음 날 NCCK는 입장문을 내고 차별금지법 제정, 시행을 주문했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시점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라는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법은 이제껏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 선동과 보수 야권의 발목잡기로 인해 차별금지법은 공론화 단계에서 좌절되기 일쑤였다. 

보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취지는 동성애 조장과 거리가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권기본법"이라고 설명한다.

보수 개신교계로부터 성토당한 NCCK도 반박 입장문을 통해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처벌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차별인지를 밝히는 기준이며, 그 차별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더 크다"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후 각론을 재정비해 나가는 기초를 제공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개신교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느냐를 두고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공론의 장으로 나올 때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번번이 무력화시켰다. 
 

보수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악법이라며 극력 반대해왔다.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도 보수 개신교계의 발목잡기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 지유석

   
이들의 집단행동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이들은 2017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표결 과정에 개입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문자폭탄을 보내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당시 표결에 참여했던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견딜 수 없을 만큼 문자를 받았다"고 토로했다(관련기사: 보수 개신교계 성소수자 배제·혐오 법제화, 노림수는? http://omn.kr/o8hj).
  
언론도 이들의 중요한 타깃이다. 차별금지법, 혹은 성소수자 관련 의제에 우호적인 보도가 나오면 비판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작성한 기자를 원색적으로 성토하고, SNS를 통해 비판 여론을 퍼뜨렸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간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 선동에 편승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채익 당시 한국당 의원은 2017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게 동성애 관련 입장을 물으면서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성애, 수간까지 비화될 것"이라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9년 5월 황교안 전 대표는 세종시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12월 안상수 의원 등 국회의원 44명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채익 의원은 울산 수암성결교회 장로이고, 황 전 대표는 전도사 시무경력을 가졌으며, 안상수 의원은 한국당 기독인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보수 개신교와 보수 야당은 그야말로 '초록은 동색'이었던 셈이다. 보수 개신교의 집단행동과 보수 야당의 발목잡기는 차별금지법의 국회통과를 막은 으뜸 요인이었다(관련기사: 되살아난 안상수표 '혐오조장법'... 누가 빠지고 누가 추가됐나 http://omn.kr/1lou5).

이제 4.15 총선 결과 의회 권력은 민주당에 넘어왔다. 만약 민주당이 인권단체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여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로 방향을 정하면 보수 개신교로선 막을 방법이 없다. 보수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 NCCK 성명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바뀐 의회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모호한 태도 일관했던 민주당, 이번엔? 
  

지난 해 6월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단체의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 지유석

   
보수 개신교계의 기습 기자회견이 고맙다. 잊고 있었던 '차별금지법'이란 의제를 환기할 수 있도록 해줬으니 말이다. 

국민들이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별금지법은 이번만큼은 꼭 통과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마침 오는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을 다시 발의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에 강력히 촉구한다. 민주당은 성소수자 의제가 불거질 때마다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지난 총선 격전지였던 서울 광진을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미래통합당 후보는 '동성애'를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당시 오 후보는 반대 의사를 밝히며 고 후보에게 동성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때 고 후보는 "동성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성적 지향이 찬반의 대상도 아니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점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정의당도 "성소수자는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성애자들의 사랑과 달리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혐오 발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성이라거나, 피부색이 어둡다거나, 성적 지향이 남들과 다르다거나 하는 이유로 차별이 횡행한다. 이 같은 현실에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 

민주당에 바란다. 민주당이 눈치 볼 대상은 없다. 민주당이 180석 의석을 확보하고도 보수 개신교계의 눈치 보다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룰 경우 더 큰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이 민주당에 의회 과반 의석을 준 건, 소신 있게 입법 활동을 하라는 주문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 선동을 볼 때마다 부끄러웠고, 그 누구보다 성소수자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디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되기 바란다. 그리고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통과에 얼마 만큼 의지를 보이는지 눈 부릅뜨고 감시하려 한다. 
덧붙이는 글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합니다.
#차별금지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보수 개신교 #혐오선동 #성적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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