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기억 잃은 여자, 잊지 못하는 남자... 설정 활용이 아쉬웠다

[리뷰] MBC 수목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신선한 시도, 아쉬운 뒷심

20.05.14 10:11최종업데이트20.05.14 10:11
원고료로 응원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 MBC

 
과거의 아픈 상처를 잊지못하는 남자, 과거의 상처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여자, 누가 더 행복하거나 불행할까. 13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 MBC 수목극 <그 남자의 기억법>(아래 <그남기>)은 인생의 모든 시간을 기억해야하는 앵커 이정훈(김동욱)과 아픈 상처로 과거의 기억을 잊었지만 현재의 매순간 열정을 다해 살아는 여배우 여하진(문가영)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기억이라는 소재는 이미 여러 드라마나 영화 작품들을 통해 수도 없이 다뤄져 자칫 식상할수도 있다. <그남기>는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증상으로 오히려 인생의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내세운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어 기억상실에 걸린 여자 주인공의 '상처 극복 로맨스'라는 색다른 접근법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유명 앵커와 인기 여배우의 사랑이라는, 어찌보면 비현실적이거나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각각 옛 연인이자 절친인 정서연(이주빈)의 죽음이라는 '같은 상처의 무게'를 공유하고 있었고 조금씩 서로의 비밀에 접근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워진다.

과거의 기억 하나하나를 새겨두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이정훈, 아픈 기억을 지워버린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여하진은 삶의 방식에서 각자 정반대에 서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결국 과거의 '죄책감'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문제점에서는 동일하다. 과거의 기억을 매개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조금씩 각자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과거도 직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남기>는 이정훈과 여하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그들의 과거를 둘러싼 비밀을 하나둘씩 풀어나가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덧입히며 긴장감을 높인 촘촘한 서사와 예측불허의 전개로 호평을 얻었다. 시청률만 높고 보면 그리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어 빈약한 구성과 공감대 부족으로 1~2%대 시청률에 허덕이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다른 멜로물에 비하면 나름의 마니아 팬층까지 형성할 만큼 선전한 편이다. <그남기>의 팬들은 동시간대 좋지 않았던 대진운이나 홍보 효과만 개선됐다면 더 좋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한다.

남녀 주인공을 맡은 김동욱과 문가영은 인상적인 멜로 호흡을 선보였다. 주로 능글맞고 유쾌한 캐릭터로 익숙한 김동욱은 진중하고 냉철한 듯하면서도 애절한 감성이 묻어나는 앵커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며 연기폭이 넓은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 MBC

 
문가영은 엉뚱하지만 순수하고 발랄한 4차원 매력이 넘쳐나는 여배우 역할을 몸에 맞는 옷처럼 소화해냈다. 정통 멜로나 절절한 감성을 진지하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표정 연기가 항상 비슷해보인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로 전개된 드라마에서 문가영의 밝은 캐릭터가 살려낸 '로코'(로맨틱코미디) 감성마저 없었다면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은 이야기의 뒷심이다. 초반부 기억을 매개로 이정훈-여하진의 밀당 로맨스와 과거의 미스터리를 하나둘씩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두 사람간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된 중반 이후로는 이러한 설정들이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가져다놓고도 정작 극 중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옛 연인이 살해 당하거나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충격은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굳이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설정이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는 이정훈이라는 캐릭터가 기존의 멜로주인공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서연의 기억을 극복하고 여하진과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의 설득력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 MBC


극 전개상 남녀주인공과 밀접한 관계로 엮이게 되는 스토커 문성호(주석태)나 유성혁 교수(김창완)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게 묘사가 되어 있어서 오히려 극의 전반적인 멜로 감성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주인공들의 엇갈리는 만남을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클리셰도 자주 반복되어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주인공들의 사연이 어느 정도 파악된 중반 이후에는 극의 흐름이 예상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거나, 비슷한 장면의 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상반기 멜로물 중에서는 확실히 수작이라고 할 만하지만, 독특하고 차별화된 설정과 매력있는 배우들의 캐릭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서사의 개연성과 뒷심은 옥에 티로 남았다. 최근 젊은 시청층을 타깃으로 한 정통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는 데 연이어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장르와 이색적인 소재를 결합한 <그남기>의 '실험'은 앞으로 멜로드라마 장르가 어떻게 변주해나갈 것인지 이해하는데 의미있는 전환점이 될 듯하다.
그남자의기억법 과잉기억증후군 김동욱 문가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