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담회-김혜정,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여성을 단일한 목소리로 드러내려는 힘이 강해지기도 했지만, 페미니즘이 넓혀온 힘 안에서 서로가 다양한 조건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복잡하고 섬세한 운동의 언어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맞서는 움직임은 한편으로 '여성의 안전'이라는 지향과 목표를 강화해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이라는 디지털 성범죄 역시 여성의 안전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한다. 사회가 분노하는 지점에서 한 발 더 들어가서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양지혜 : "무엇이 위험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인데, 청소년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네모 칸 안에 있어야만 안전할 수 있다'는 말에는 네모 칸 안에 있을 수 없고 네모 칸 영역 바깥으로 나가야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긴다. 특정한 공간이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 자원이 없는 이들에게 그 공간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공간이었을까.
5만원 기프티콘을 주고 성착취 영상물을 찍었다는 말이 현실성 없게 들리지만 그 얄팍한 제안들이 왜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성폭력을 경험하면서도 왜 계속 가해자의 집에 머물러야 하는지, 안전 담론에서 네모 칸을 벗어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네모 칸 안에 있어야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네모 칸 밖에 위치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담길 수 있는 네모 칸일까 생각해봐야 한다."
이진희 :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국가의 대안이 정신장애인 행정입원과 성별분리화장실로 대표되어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수준이 그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여성폭력이 더 가시화된 이후에도 대부분 어떤 구조와 환경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가 벌어지는지를 살피기보다, 장애여성이 혹은 10대 여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피해의 경험을 소수자의 정체성만으로 간편하게 설명하는데, 이런 계속되는 시도들에 대항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노서영 : "유니브페미에서 트랜스젠더 숙대 입학 건에 대한 입장문을 준비하면서 구성원들끼리 우리가 언제 안전한다는 감각을 가지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났을 때', '내가 뭘 입었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에 있을 때'와 같은 순간에서 안전함을 느꼈다는 대답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처음부터 편한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사회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넘어서자고 함께 약속하거나 신뢰관계를 쌓아가면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무언가를 일단 떨어뜨려놓는 것이 쉽고 빠른 방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분노와 무력감이 실제로 그 위협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하는 것 같다.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트랜스젠더였는가?' 질문한다면 답은 아니지 않나. 배제가 아닌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안전에 대한 감각을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서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입장으로 차별금지 원칙을 세우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혜정 :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정치적 요구로 조직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치적 요구라면 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교육당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산은 어디에 써야 하고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른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와 같이 구조를 호명하면서 그 요구를 구성하게 되지 않나. 그런데 지금 정치적 요청으로 보이는 청와대 청원들도 정치적인 요구보다 경제적인 인식이 바탕에 있는 듯 하다.
대안의 양이 정해져 있고 우선순위가 경쟁이라는 식이다. 안전은 타인의 권리나 몫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차별을 줄여나가는 것이 서로의 안전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을 더 키워가야 한다. 그런데도 타자들의 권리가 내 권리를 위협한다거나 빼앗아갔다고 인식하거나,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인식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여성 문제도 이렇게 시급한데 무슨 난민까지 받아?' 하는 식으로 소수자 집단 사이에 우선순위를 경쟁하게 만드는 지형은 안전을 정치적인 요구로 만들어가기 어렵게 한다. 사회적으로 차별금지법과 같은 기반을 만드는 일에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개개인이 경쟁력을 가진 경제적인 주체가 되어서 안전을 확보할 것인지는 페미니즘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가 된 듯하다."
-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것은 동시에 집단을 조직하는 것이기도 할 텐데, 페미니즘 운동과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어떻게 집단적인 요구를 모아내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야 할 공동의 과제는 무엇일까?
이진희 : "아무래도 장애여성공감이 발달장애여성들과 같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주체성이나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내가 위험하지는 않은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역량 혹은 자원을 가진 사람들만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안전 담론이 흐르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발달장애여성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 난민이나 이주민도 마찬가지일 텐데, 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차별금지법 제정과 페미니즘 운동 모두에서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김혜정 : "최근에 동의 없는 성적 침해가 성폭력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강간죄 개정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동의를 하는 주체가 꼭 신자유주의 능력 담론에서의 개인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행복과 삶의 질을 위해서 자신의 요구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은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문제의 원인도 개인에게 있고, 결과도 개인이 혼자서 다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모든 것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사회를 바꿔나려는 공동의 정치적 요구와 결합될 필요가 있고, 정치적 개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과 자원을 어떻게 확보해나갈 것인지는 더 폭넓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노서영 : "얼마 전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았다. 재판관이 여성혐오 표현을 한 남성에게는 약한 처벌을 내리는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한남충'이라고 말한 여성이 잡혀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이자 왜곡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했다. 수많은 '○○녀'처럼 여성혐오적인 명칭은 오랫동안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남성집단을 미러링하는 '멸칭'에 대해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SNS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차별금지법 자체를 적대시 하거나 여성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법으로 오해하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이러한 오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차별금지법이 누구라도 차별받았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모두가 평등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장치라는 것, 그래서 여성운동에서도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더 열심히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 좌담회_노서영,양지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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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살피면서 정치적 요구를 함께 조직하는 경험을 페미니즘 운동과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더 많이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서로의 운동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이진희 : "페이스북에 '누구누구 찾아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탈시설 한 발달장애인들이 늘어나면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발달장애인 등록을 할 때 DNA 채취를 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탈시설 지원을 열심히 하는 대구 지역의 한 활동가가 DNA 채취는 답이 아니라는 글을 썼다. 발달장애인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매일 다니던 장소만 다니기 때문에 잠깐 한 눈을 팔고 다른 곳에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전할 권리,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운동이 지도 위에서 좀 헤매더라도 잘 헤매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노서영 : "대학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오랜 과제가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혐오 대응이다. 그런데 혐오의 지형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녀공학에서는 여성혐오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의 표현의 자유가 많이 제약을 받고 위축되어 있고, 여대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뚜렷하다. 이러한 혐오 문제를 풀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직장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절차의 도입, 페미니즘 교육과 운동, 상담 등을 지원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 자체가 우리 자신을 피해자로서만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요구를 더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과 공적인 자리에서 만나서 대화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가려고 한다."
김혜정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처벌에 매달리게 되고, 그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쉽지 않다. 형사처벌은 해당 죄에 대해서 형사법에 따라 책임을 지는 정도지, 모든 행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없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사건이 놓인 조건을 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의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는지, 내가 어떤 정보나 교육 기회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경제적인 위기 상황에서 긴급한 도움을 받을 때 차별은 없었는지 등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혹은 발생한 이후의 일들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이런 사안이 발생하는 차별적인 요소들을 짚을 수 있고,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함께 복구해 나가야 하는 일인지 책임도 더 입체적으로 두텁게 그려볼 수 있었을 듯하다."
성폭력을 주로 특정 행위로 생각하지만,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특정 행위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기 전과 후로 대략 10년 이상의 시간을 짚어보게 된다. 지금도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들의 주거 및 경제적 문제들이 있지만, 어떤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이러한 조건이 안 바뀌고 있는지보다 '피해자니까 위급하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다른 방식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형사처벌이 정의를 대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양지혜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성이라서 경험하는 착취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빈곤이라는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단일하지 않은 여성들의 경험을 발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어도 지금 이 사회에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경험하는 모순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부조리를 돌파해나가는 건 언제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티에서 평등문화 토론을 시작하면서 첫 주제로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당사자 정체성 담론을 넘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공통의 장벽에 대한 운동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차별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복잡한 논의를 시작하는 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진행 :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참석 :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노서영(유니브페미), 양지혜(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이진희(장애여성공감)
녹취 : 예정, 지오(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리 : 몽 (인권운동사랑방,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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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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