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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귀화혼혈선수' 문태영의 엔딩이 궁금하다

FA시장에서 외면받은 문태영... 선수에게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한 이유

20.05.19 10:47최종업데이트20.05.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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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영은 올해 프로농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어느 구단의 제의도 받지 못했다. 지난 1일 문을 연 FA 시장은 현재까지 FA 자격을 얻은 51명의 선수 중 4명이 은퇴를 선택했고, 29명(재계약 14명, 타구단 이적 15명)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문태영을 포함해 총 18명의 선수들은 아직 어느 구단의 영입제의도 받지 못하고 시장에 남았다. 특히 문태영은 이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격세지감까지 느껴진다.

문태영은 친형인 문태종을 비롯하여 이승준-이동준-전태풍 등과 함께 한국농구에 '귀화혼혈선수'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중 한 명이다. 지난 2009년 귀화 혼혈 드래프트를 통하여 KBL 무대를 밟은 문태영은 창원 LG-울산 현대모비스-서울 삼성 등을 거쳤다. 문태영은 데뷔 당시만 해도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다른 귀화혼혈선수들에 비하여 정보가 부족하고 해외 커리어도 떨어지는 편이라 오히려 저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문태영은 KBL에서 정규리그 11시즌을 활약하며 무려 553경기를 소화했으며 통산 8,147점(역대 7위)-평균 15.2점-5.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데뷔 첫해인 2009-10시즌부터 평균 21.9점을 기록하며 국내-외국인 선수를 합쳐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한국 국적의 선수가 득점왕에 오른 것은 지금까지 문태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또한 국내 선수로만 한정하면 무려 6번이나 득점 1위를 차지하며 '문코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태영은 우승도 3번이나 차지했다. 2012~13시즌부터 2014~15시즌까지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또다른 귀화선수가 되는 라건아와 함께 KBL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친형인 문태종이나 전태풍(이상 2회)보다 우승횟수가 더 많다. 2014년에는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했다.

명실상부하게 2010년대 KBL을 대표하는 최고의 스코어러이자, 한국에서 활약한 귀화혼혈선수중 가장 성공적인 프로 커리어를 이룩한 선수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지난해 문태종에 이어 올해 전태풍마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 문태영은 농구계에서 현역으로 남은 마지막 귀화혼혈선수가 됐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태영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삼성 이적 이후 2017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문태영은 지난 시즌 40경기에서 평균 12분 32초밖에 뛰지 못하며 3.6점 2.8리바운드라는 KBL 진출 이후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78년생으로 어느덧 만 42세, 문태영은 올시즌 은퇴를 선언한 양동근, 전태풍, 박상오, 신명호보다도 나이가 더 많다. 어느덧 프로농구 최고령 선수가 된 문태영에게도 노쇠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친정팀 삼성은 고심 끝에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문태영은 여전히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FA시장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팀이 나오지 않으며 은퇴의 기로에 몰리게 됐다.

다소 안타까운 부분은 그동안 KBL에서 보여준 눈부신 업적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팬들 사이에서는 문태영의 이미지에 대한 존중이나 호감도가 다른 귀화혼혈선수 출신들에 비하여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만한 커리어를 쌓은 '레전드급' 선수가 사실상 반강제로 은퇴 위기에 몰렸음에도 여론은 아쉬움보다 무관심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 문태영 본인이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이승준-이동준 형제나 전태풍 같은 귀화선수들은 본인이 자력으로 귀화 시험을 거쳐 한국인 자격을 얻었다. 서툴러도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등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팬들에게 깊은 호감을 남겼다. 

그에 비하면 문태영은 친형 문태종과 함께 법무부의 해외 우수인재 기용에 따른 '특별귀화' 형식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식석상에서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미디어-팬들과 소통 친화적인 행보와는 시종일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농구 선수로서의 거듭된 경기 매너 문제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문태영은 다혈질에 과도한 승부욕으로 거친 플레이를 남발, 상대 선수와 충돌하거나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경기에서 여러 차례 격돌해야 했던 양희종-김주성과는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

친형인 문태종의 경우 문태영과 함께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방식은 비슷했지만, 점잖고 신중한 성격으로 코트 위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당연히 상대 선수와 마찰을 빚는다거나 불필요한 언행으로 '어그로'를 끄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기에 유럽 등 해외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압도적인 커리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고비마다 대표팀을 구원해낸 인상적인 활약상 등을 인정받아 2018-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국내 팬들의 '리스펙트'를 받았다.

문태영의 초라한 현 주소는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미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택한 양동근, 전태풍, 박상오, 신명호 등은 저마다 자신들의 스토리와 캐릭터로 농구계에 한 획을 그으며 많은 팬들의 박수와 존중을 받았다. 문태영이 KBL 무대에서 선수로서 남긴 업적이 이들보다 부족할 것은 전혀 없다.

KBL에서 득점왕과 팀우승, MVP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가 정작 팬들의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프로의 세계에서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수가 걸어 온 행보 자체이며 팬들에게 어떤 감동과 여운으로 기억되는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문태영은 과연 농구팬들에게 아름다운 작별인사를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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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영 귀화혼혈선수 프로농구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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