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잃지 마라 나는 7가지 은사 중 용기를 뽑았다.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어쩜 이리 나를 잘 아시는지.
이상구
대신 가톨릭 평화 방송(CPBC)은 '나의 성령칠은 뽑기'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다. 본당에서 하던 걸 모바일로 옮긴 거다. 해당 앱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이나 세례명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카드를 한 장씩 주었다. 이른바 언텍트(untact) 카드 뽑기였다. 교리 선생님께서 그 앱을 우리 반 단톡방에 올려 주셨다. 나도 해 봤다. 대번에 '용기'를 뽑았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용기 - 하느님을 열렬히 섬기게 하며, 죄와 유혹을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이며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은혜. 유혹이나 장애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씀이었다. 하나하나가 지금 내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들이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찌 그리도 지금의 내 심경을 잘 알고 계시는 건지 신기했다.
게다가 예수님은 '유혹'이란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뜨끔했다. 내가 유난히 유혹에 약하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 거였다. 그랬다. 고백하건대 나는 조금 더 편한 길, 한 방에 어찌 되길 바랐다. 그런 거 이젠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 기회에 그것까지 싹 뜯어 고치라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유혹을 이겨내고 순교의 길로
달포쯤 됐다. 공들여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돼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지난 '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5월 24일)'에서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약속을 믿고 다시 꿈을 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다. 자그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 끝 날'이라셨다. 이 보다 더 든든한 말씀이 또 어디 있을까(2020년 6월2일 자,
"50세 넘은 지가 언제인데 '꿈이 뭐냐'는 질문" 기사 참조).
막상 그러기로 결심까진 했는데, 솔직히 막막했다. 이 판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공연히 섣불리 나섰다가 또 실패할까 두렵기도 했다. 자꾸 실패만 거듭하면 무뎌진다. 그러려니 하게 된다. 점점 더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주저하기만 했다. 그런 속내를 어찌 아셨는지 주님께서 이번엔 덜커덕 용기까지 선물로 주신 거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정말 놀랍도록 크신 은혜였다.
불끈 힘을 받았다. 과감하게 칼을 빼 들었다. 오래도록 속으로만 품어왔던 계획 중 하나였다. 그토록 긴 시간 고민하고 검토했으니 이제 충분하다. 게다가 주님께서 저리 든든하게 뒤를 봐 주시는데 뭐가 무서우랴.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야말로 배신, 배반이다. 대역무도에 다름 아니다. 일단 시작하고 볼 일이다. 스스로 발등 불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움직인다. 더 볼 거 없다. 하자, 해 보자.
다시 한 번 카드를 꺼내 읽었다. 마지막으로 용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처음엔 무심코 넘겼던 한 마디가 눈에 걸렸다.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은혜'
'순, 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순교라 하셨다. 솔직히, 정말 솔직하게 그것까지는 자신이 없다. 그 약속만은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맞다, 난 이토록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지금까지 계속, 쭉, 지겹도록, 지지리도 이리 살아 왔다. 정말 구제불능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참에 그것도 확 어찌 해 봐야겠다. 그게 용기를 주신 주님의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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